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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Dec 04. 2016

흩어져버린,





나는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못하고 네가 오는 그날만을 애타게 세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너와 마주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너와 같이 걷던 길 위로 무심하게 떨어지던 주홍빛 노을을 혼자 서서 보고 있노라면

그 노을 바로 아래 산 중턱에 넓게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네 어깨에 기대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황홀한 공기와 함께 잠에 취하곤 하던 내 모습도 이따금 생각이 났다.





나의 추억 속에 너는 이미 희미해져 버린 하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는 단 한 번도 너의 존재를 멀리 두어본 적이 없었다.






동그랗고 푸르던 달이 떠오를 때까지 서로의 손을 잡고 그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을 무렵

너는 뜬금없이 '달을 보면 보름달이 뜨는 날 태어났다던 네가 떠올라 저 달을 보여주고 싶어 진다'며 

약간은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지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해왔었고 나는 너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미소만 띤 채로 슬며시 눈을 감고 네 손을 더욱 가까이 감아쥐고는 했다.

 




네가 툭, 툭 내던지듯 내뱉던 유치한 사랑고백이 그때는 왜 그리도 간지럽기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순간순간의 너의 말에 일일이 답을 해가며 입을 맞췄어도 좋았을 것을 한다.







너의 여린 마음이 예쁜 입술을 넘실 넘실 넘어 밖으로 쏟아지기도 전에 네 손을 잡고 너의 눈을 올려다보며 

입을 맞췄다면 그 따뜻했던 다정한 말들을 나는 나의 온몸 깊은 곳까지 곳곳이 간직할 수 있었을까?


너의 말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서 주변에 울릴 때 나는 조금이라도 더욱 긴 호흡을 했다면 

그것들을 한데 잡아 내 것으로 조금 더 오래 묶어둘 수 있었을까?


시절 속에 열렬했던 너와 나의 따뜻한 생명력은 모두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 어디론가 흩어지고 

차가운 것만이 남아 이따금 뛰쳐나와서 서로를 향한 얼음송곳이 되어 생채기를 낸다.







별것 아닌 서로의 말에도 그저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인 듯 만족하여 전율이 일고는 했던

처럼 여리고 순수하기만 하던 우리는 어디론가 흩어져 그 향기만이 곁을 지키고,

언젠가 돌아오겠지 믿는 마음으로 이따금 기대에 부풀어 

서로를 반짝하고 돌아보는 작은 희망만이 함께 남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정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책 속의 활자처럼 우리는, 

한 시절을 비춰주는 누렇게 빛바랜 종이 위에 스며들어 간신히 손끝만 뻗은 채로 

서로를 향해 뜻 모를 격려를 보낸다.









나는 지금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 서있고 

이 길을 가다 보면 늘 그리운 네가 마중 나와 손을 흔들어 주겠지만,

나는 그 길 끝에 서있을 너를 어떤 얼굴로 만나러 가야 하며 너는 그 길을 걸어올 나의 모습에 어떤 감정이 일까.



만일 내가 그 길을 걸어가며 네가 그 길 위 어딘가에 쏟아버린 다정한 마음 조각들을 

조금이라도 주워 담아 들고 가면 너는 '애타게 찾았고, 잃어버렸던 것이다'하고 반갑게 웃어줄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등 뒤에 남겨두고는 

돌아보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처럼 너와 나는 오늘도 서로를 향해 걷는다.


이 길에 끝에는 '그것'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간절히 바라고 내가 염원하는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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