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3
<탈출까지 D-64~D-28:인도여 못 있거라 1>
<시집살이보다 더하다는 인도살이>
전통적 가족상을 그린 고전극 속 며느리의 삶과 인도집 더부살이 중 어느 쪽이 더 비참할까? 전자를 택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인도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먼지 쌓인 창고에서 타임머신을 발견하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인도살이 또한 엮이는 순간 바로 60년대로 회귀하게 했다. 주인집 한편에 딸린 쪽방에서 그 집 어린 자식들의 눈치까지 보는 삶을 21세기에 체험할 수 있다니. 현대 과학 수준으로도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못했는데, 기계 없이도 시간 여행을 하게 하는 인도 살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시간을 다룬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건을 해결한 뒤 현재로 돌아온다. 간혹 그러지 않는 경우에도 돌아갈 방법을 앎에도 남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졸지에 두보라는 지옥, 그중 가장 뜨거운 곳인 인도 집에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영화 주인공들과 달리 돌아갈 길을 몰랐고, 사건에 휘말리고 운명에 떠밀려 당도한 이곳 또한 영화와는 달랐다. 머를 수도 없고 벗어날 길도 없는 굴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때'가 오기까지 견디는 것뿐.
고강도 운동보다 명상이 더 어렵듯, 기다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1세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미개하고 구식인 두보에서는 더더욱.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또래도 없고 할 일은 더더욱 없던 명절이 이랬다. 이제는 스마트폰도, 친구도 있는데 왜 지루해 못 견디겠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을까? 과거로 내던져진 것 같을 때면 현실감각은 희미해졌고, 집세 이체 내역만이 나를 현실로 되돌려줬다. 시드니보다 더 비싼 렌트비만이 내가 2023년에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어떻게 두보 집값이 시드니보다 더 비쌀 수 있는가? 그건 치외법권과 다름없는 인도 집이 호주 안의 작은 인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집에는 암묵적인 카스트(계급)가 존재했다. 그를 입증하듯 세입자와 인도가족의 구역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물론 그들은 마음껏 세입자들의 구역을 넘나들 수 있고, 세입자는 감히 그럴 수 없지만. 입주 초기에 인도 구역을 통과해 빨래를 널러 나갔다가 얼마지 않아 출입 금지령이 내려졌다. 주제도 모르고 주인나리 공간을 기웃대는 노비를 보는 듯한 그 눈빛이 아직도 선하다. 인도 익룡들이 날뛰는 거실을 통과해 안방을 거쳐야만 나오는 그 경로를 인도 구역에 눈길도 주지 않던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빨랫줄 사용을 허락받을 때 인도 남편이 손수 가르쳐줬으니 아는 거지.
치외법권에서는 세상의 상식과 논리는 통용되지 않기에 인도 부부가 곧 법이었다. 그들은 임금이라도 된 양 걸핏하면 세입자 구역으로 암행을 왔다. 쥐새끼처럼 슬그머니 엿본 뒤에는 득달같이 문자가 쏟아졌다. 머지않아 휴대폰 상단에 문자 표시가 떠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문자를 받은 건 장을 본 날이었다. 장을 보려면 매번 읍내에 가야 했던 노인의 집과 달리, 인도집에는 (비록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도보권에 마트가 있었다. 장을 본 뒤에 집까지 카트를 끌고 왔다. (호주에는 카트 수거꾼이 따로 있어서 카트 반출이 자연스럽다.) 물건을 안으로 들인 후에 카트를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댔다. 집 앞에 두면 꼬투리 잡힐 게 뻔했기에. 이쯤이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을 비웃듯 인도 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 앞에 카트 좀 두지 마. 여기까진 수거하러 안 온다고.'
수거지가 있다면 지키는 게 맞지만, 누가 뒀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막말로 안 지키면 좀 어떻단 말인가? 수거지는 핑계에 불과했다. 세상의 상식과 반대를 걷던 인도 부인이 규칙을 신경 쓸 리 없으니까. 순전히 인도 집이 속한 블럭에 카트 있는 꼴을 못 보는 것에 불과했다. 가진 건 인도 집뿐이면서 반경 몇 km 도로까지 다 제 구역인양 구는 꼴이 어찌나 우스운지. 아니, 그런데 카트를 내가 거기 뒀는지 어떻게 안 거지? 카트가 놓인 곳 앞 옆집 사람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찜찜하고 불쾌함을 삼키고 카트를 인도 집과 한참 떨어진 (인도부인발) 수거지까지 옮겼다.
한국인 세입자는 인도 부인을 금수인 인도 남편보다 낫다고 했다. 마치 그가 랩터를 길들이는 크리스 프랫이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내가 겪은 인도 부인은 유독 지랄 맞은 랩터 옆에서 반사 이익을 누리는 랩터였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인간과 교류를 할 수도, 지능이 높지도 않은 그야말로 금수. 유유상종,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인도 부부를 가리키기 위해 생긴 게 아닐까. 운동화나 크록스는 짚신의 짝이 될 수 없다. 짚신의 짝은 필연적으로 짚신이기 때문에.
<악마가 이름을 대기 전까지는 해방될 길이 없다>
두 번째 문자를 받은 건 첫 번째 문자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문 닫을 때 제발 살살 좀 닫아. 오늘 너무 시끄러웠다고.'
누구나 한 번쯤 문을 세게 닫고 아차 한 적이 있으리라. 다섯 명의 세입자 중 왜 범인을 나로 특정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게다가 인도와 세입자 구역 간의 거리, 거실을 지나쳐야 인도 방이 나오는 구조가 소음을 어느 정도 막아줬는데, 그 조건들을 뚫고 문 소리를 들었다고? 쏘머즈세요?
물론 내가 하고서 속 편하게 잊은 걸 수도 있다. 거리와 구조가 만능 방패는 아니니까. 그렇게 치면 인도 자식들은? 걔네는 오컬트 영화 속 퇴마당하는 악귀 같은데? 누가 먼저 고막을 터트리나 대결이라도 하는듯한 모습은 순수 악 그 자체였다. 구마사제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들을 보면 확신할 것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외치리라. 빨리 이름이나 말하고 지옥으로 꺼져!
세입자들은 영화 엑소시스트 속 악령과 다름없는 인도 자식들을 참아주고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도 가족과 말을 섞기 싫어서가 주 이유였지만, 공동생활은 서로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낫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수 한 번에 득달같이 문자를 보내다니. 인도 자식들로 단련된 고막이 세입자들 한정 쏘머즈가 되나 보다.
'그리고 제발 부엌 쓰레기통 꽉 차면 버려. 원래 차례대로 버리는 거라고. 수고ㅋ
부엌에 있는 쓰레기통은 인도 가족과 세입자 모두 사용해서 차는 속도가 빨랐다. 상식적으로 매 끼니를 집에서 해 먹는 인도가족과 평일에는 노역, 주말에는 인도 가족을 피해 자발적 노숙인 되는 세입자들 중 누가 더 쓰레기통을 사용할까? 물론 많이 쓰는 쪽이 매번 쓰레기통을 비우라는 법은 없다. 쓰레기통이 거의 찼을 때쯤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이 비우면 된다. 혹여 그러지 않아 쓰레기통이 가득 차있더라도, 그냥 비우면 될 일 아닌가. 이렇게 거슬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지적을 하다니. 세입자가 아니라 머슴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계급 사회 인도에서 탈출해 본인들만의 새로운 카스트를 세웠다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인도 부인과 말을 섞은 뒤면 번번이 황당함과 불쾌함, 찝찝함이 남았다. 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거야? 몰래 훔쳐보는 게 아니고서야. 카트 수거 때부터 여운으로 남은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따져 묻기에는 관음을 의심한 것만으로도 너무 큰 모욕이었다. 설사 그 대상이 정상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인도 부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늘 그래왔듯 해소할 길 없는 찜찜함을 안고 누가 한 지도 모르는 행위에 사과해야 했다.
<무균실의 유일한 균이 되어>
통제광인 인도 부인은 유독 청소에 집착했다. 틈만 나면 세입자용 욕실과 화장실을 들여보고는 지적을 일삼았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주된 이유였는데, 문제는 지적이 평일에도 행해졌다는 것이다. 세입자들은 씻고 잠들기 바빠 머리카락 신경 쓸 여유가 조금도 없는데. 정작 그 공간을 쓰지도 않는 인도 부인만이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돌아서인지 굳이 엿보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마다 득달같이 문자를 보내 스트레스를 전가시켰다. 상식적으로 여자가 다섯인데, 어떻게 머리카락 한 올 없이 깨끗할 수 있겠는가. 돌아서면 떨어져 있는 게 머리카락인데. 세입자가 아니라 입주 가정부 들인 줄 아나. 그렇게 청결과 깔끔을 중시하면 무균실에 서 살아야지. 그곳의 유일한 균이 되어.
호주에서 7 군데의 집에서 지내봤지만, 인도집을 제외하고 세입자에게 청소를 '시킨' 곳은 없었다. 심지어 근본 없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노인의 집조차. 물론 세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베트남까지 가서 사 온 입주 가정부가 있어서지만. 입주 가정부가 없는 나머지 집들은 집주인이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를 도맡아 했다. 그렇다면 입주 가정부는 없지만 카스트는 존재하는 인도 집은 어떨까? 그들에게 세입자의 또 다른 이름은 수드라, 그런고로 불가측천민인 우리를 노예처럼 부렸다. 비록 우리는 거지 같은 인도 집에 터무니없는 돈을 내고 살았지만, 카스트 제도 아래 세상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
청소는 의무지만 도구는 제공되지 않기에 기존 세입자들은 남의 집 청소를 위한 내돈내산을 해야 했다. 9개월간 오롯이 인도 가족을 감당했던 그들은 내게 입주 첫 주부터 청소 담당임을 인지시켰다. 오자마자 청소를 떠맡은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해는 갔다. 그래, 매주 청소하기 얼마나 싫었겠어. 내돈내산 청소도구 볼 때마다 천불이 터졌겠지. 뭐, 그 덕에 나야 편하게 청소하겠지만... 하지만 욕실과 변기방, 그 어디에도 청소 도구는 없었다. 마치 모르고 한 번 썼다가 영원히 부엌에서 자취를 감춘 커피 포트처럼. 결국 갖고 있는 유일한 도구인 휴지로 욕실과 변기방을 청소했다. 아무리 세입자들 공간이어도 변기솔정도는 놓아줄 수 있을 텐데, 지독한 인도 가족을 욕하며.
다시 찾아온 주말, 한시바삐 도망치려는데 문자 알림음이 발목을 잡았다.
'욕실 좀 치우고 살아. 드러워서 정말. 시간 될 때 꼭 해놔. 수고ㅋ'
이사 오자마자 한 게 청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불쑥 들어온 지적에 혈압부터 올랐다. 시집살이 체험이 가능한 인도 집에 일주일만 묵는다면 모두 다 비혼이 되리라.
'기존 세입자들이 지난주에 내 차례래서 이미 했는데, 또 해야 돼?'
'아아 난 또~ 지난주에 도망간 일본애가 하고 간 줄ㅋ'
일본인 세입자의 마지막을 회상했다. 부리나케 도망치던 그 모습은, 정신없이 우비를 찢으며 노역장을 뛰쳐나오는 똥방 노예와 어찌나 닮았던가.
'내가 했는데. 변기방이랑 욕실 다.'
'앗 미안ㅋ 원래 걔 차례였는데ㅎ 여튼 다음 주에 새로운 희생양들 오니까 청소 제대로 해야 돼. 그래서 문자 보낸 거야. 오늘 욕실 확인하니까 얼마나 드럽던지. 네가 네 방 청소기 돌린 것까지는 알았는데.. 나도 놀랐어. 왜 걔네가 너보고 욕실 청소하라고 한 건지... 수고ㅋ'
횡설수설하는 이유가 영어가 짧아서인지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인도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말 똑바로 해. 아니다, 듣는 사람 속 터지니까 그냥 말하지 마.' 두 가지 중 무엇인지 모르겠는 것처럼.
인도 부인의 문자를 읽을수록 난독증 환자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두서없는 와중에 기존 세입자들을 은근히 탓하고 이간질까지 할 수가 있구나. 전형적인 지배계급의 통치 수법인 '하층민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만들기'를 시전 하다니. 설사 그들이 지난주에 청소를 시키고서 이번 주까지 떠넘기려 했다 할지라도 그걸 굳이 나한테 왜 말하는데? 인도 부인의 문자 한 통만으로 심장이 꽉 막힌듯한데 얌체짓 따위가 뭐라고.
더는 문자가 오지 않길 바라며 일주일에 딱 두 번 허락된 사치, 카페를 가려고 나섰다. 최대 수용 인원 한 명인 변기방 문이 열려 있었다. 한 명은 쪼그려서 변기를 닦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어정쩡하게 서서 거드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앞 뒤 정황이 그려졌다. 나와의 문자 후에 청소하라고 들들 볶았겠지. 그들이 얌체짓을 한 건지, 인도 부인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들을 이용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들은 넌덜머리가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써드 조건을 달성하자마자 도망을 갔다. 자연히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청소는 내 몫이 됐다. 그리고 떠나는 그날까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