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40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2

by 재쵸

<탈출까지 D-61~D-33:시간 삭제를 위한 크로스핏 체험기 3>



<인간 혐오를 낫게 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시드니는 끔찍한 도시였다. 하지만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어도 내려가는 데는 제한이 없다는 말처럼 두보는 지옥 같았다. 시드니를 선녀로 만든 두보의 모든 게 저주스러웠다. 버스도 잘 안 다니는 시골 마을에 공항은 왜 있는지 몰라도, 표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연착과 취소가 일상이었다. 시드니행 기차는 하루에 딱 두 대 뿐이었다.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면 진작 이곳을 떠났으리라.

집이 있어도 노숙인과 다름없이 떠돌아야 했고, 직장에서는 영원히 곱창을 뒤집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가 돼야 했다. 나는 두보에 존재하기가 버거워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시작한 크로스핏. 단순히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크로스핏은 두보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시간이 됐다. 운동을 하면서 '몸'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죽은 동태 같던 몸과 마음이 살아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하루에 비해 한 시간어치 효능은 아무리 잘 분배한대도 턱 없이 부족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을 혐오하는 혐오의 절정기를 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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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핏 가는 길에 본 오리 가족

크로스핏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뭔지 아는가? 돈? 체력? 근육? 정답은 차다. 걸어서 크로스핏을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내가 차 없이 다니는 최초이자 마지막 회원이었으리라.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듯, 차가 없으면 독기를 발휘하면 된다. 노역 후에 매번 50여분을 걸어서 주 4회 꼬박 출석했다. 힘든 줄도 몰랐다. 계속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지라 은은하게 미쳐있었기에. 하지만 돌아갈 때는 얘기가 달랐다. 깨어있은지 14시간이 넘어가는 데다 노역에 이어 운동까지 마쳤으니까. 녹초가 된 몸으로 차에 치일 고비를 넘겨가며 50여분을 또 걸어야 한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취침 시간만 늦어지는 것을. 방금 전까지 같이 운동했던 백인들이 탄 차가 쌩하니 옆을 지나쳐가도, 박탈감과 원망이 들어도, 묵묵히 걷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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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출신 줄리아가 차 태워준 날, 레깅스가 흉한 관계로 청바지를 입혀주었다

돌아가는 길이 늘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이었던 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터덜터덜 걷는 내 옆에 쓱 정차하고는 멋들어지게 '야, 타!'를 시전 했다. 오렌지족을 연상시키는 박력에 홀린 듯이 차에 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는 내내 두뇌를 풀가동해야 했다. 듣기 평가하랴, 짧은 영어로 소통하랴... 내향인에게 스몰톡이란, 그것도 외국인과 영어로 하기란 고강도 노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게 기를 빨리는 와중에도 인류애가 채워졌다. 그들의 선의가 독기로 가득한 마음에 온기를 선사했다. 뉴캐슬 출신의 간호사 줄리아, 함께 하위권을 굳건히 지켰던 할머니, 부모님을 모시러 두보로 이사 온 구 시드니 주민, 비 오는 날이면 우리를 태워줄 사람을 물색해 준 병헌 건치 미소 케이틀린, 그리고 조... 그들 덕분에 인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덜 괴로웠다.


<두보의 왜놈을 발견한 서양인의 흐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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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소림축구를 즐기던 철봉(높이가 가장 낮아서 하위권 전용으로 사용되었다) / 로잉머신

두보 크로스핏에는 세 아시안만큼이나 이질적인 존재가 있다. 최연소 회원인 그들은 남매로 추정됐으며, 오빠 쪽은 중학생, 동생 쪽은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남중생은 몸 키우기에 열중인지 거의 매일 출석했다. 하지만 그의 가시처럼 뾰족한 몸은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에 반해 동생은 성장기 특유의 젖살이 통통했다. 외국에서는 어린 나이부터 생활 체육을 가까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저 코찔찔이들이 운동을 위해 학교 끝나고 먼 길을 왔단 게 신기했다. 물론 나와 달리 부모님이 태워주는 차 타고 편하게 왔겠지만. 그래도 글래디에이터 같은 회원들 틈에서 보통 몸을 가진 그들은 내적 친밀감을 유발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혼자만의 친밀감은 바스러지게 된다.

코치의 설명을 듣느라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여동생이 불쑥 말을 걸었다.

"안녕? 어디 나라에서 왔어?"

"나 한국에서 왔어."

"응, 난 일본 좋아해. 학교에서 일본어도 배워."

어쩌라고.

"내 일본어 한 번 뽐내볼게~ 와따시와 호카손데스! 요로시쿠 우끾끾끽"

여동생은 개의치 않고 전형적인 인종차별인 '동양인이기만 하면 중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한데 싸잡기'를 시전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어쩜 저럴 수가?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진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떠올려라. 나는 변두리 거지 섬 호주, 그 안에서도 갈라파고스화가 된 두보에 있음을.

"잘하네. 아무도 안 시켰는데 왜 한 건진 모르겠지만..."

"응, 그건 그렇고 학교에 일본인 교환학생들이 왔는데 말이야..."

어린것이 참 눈치가 없구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아, 오케, 오 같은 감탄사로 적당히 대꾸했다. 어색하게 대화가 종결됐고, 혹여나 여중생이 나를 다시 일어회화 쓰레기통으로 사용할까 '다시는 말 걸지 마라' 계속 되뇌었다. 얼마지 않아 철봉 수업이 시작됐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여중생과 안전 이별할 수 있었다.

철봉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은 꽤 다양했다. 턱걸이부터 허리힘을 사용해 다리를 앞 뒤로 휘두르기(그네 타듯이 움직이면 안 된다), 팔 힘만으로 철봉 위 오르기 등이 있다. 악력이 약하고 상체 힘이 없는 나는 봉에 매달리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그래서 의자를 사용했는데, 덕분에 잠시 잠깐 허공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의자에 디딘 발을 떼자마자 팔이 쭉 펴졌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몸소 체득했고, 인간은 중력을 거스르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KakaoTalk_20241115_084809367_04.jpg 넋이라도 있고 없는 회원들

남들은 턱걸이를 하는 동안 나는 '의자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다시 올라가기'를 했다. 덕분에 시간이 남아 다른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남중생이 나무 타는 원숭이처럼 팔힘만으로 철봉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잔근육이 있긴 하지만 앙상한 팔로 어떻게 몸무게를 감당하는 거지? 워낙 가벼워서 가능한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곧 그의 여동생이 철봉에 올랐고, 그가 준 충격으로 헌 충격을 돌려 막을 수 있었다. 근육 한 점 없는 통실한 여동생도 한 팔로 철봉에서 붕붕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디아나 존스야, 뭐야... 2차 성징도 안온 청소년이 기인열전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이다니. 그 순간 나는 여기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하위권에 머무르리라 직감했다. 그렇게 착실히 '못 하는 애'를 담당하던 중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옥 같은 시기에도 긴 여운으로 남을 순간은 찾아온다>

달리기는 내게 자유의 상징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각,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세울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상상만으로 박차고 나가서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박약한 정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17년 겨울, 우연한 계기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30초 뛰는 것도 힘들었다. 최종 목표인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는 영영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어차피 못 할 텐데 일찌감치 포기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냥 죽여줘...' 소리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최종 목표인 30분 연속 달리기를 완주했을 때,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30초도 뛰지 못했던 내가 30분을 완주하기까지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과 스스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나태한 관성을 이겨낸 거니까. 그 후로 꾸준히 달리기를 한 적도 있지만 몇 달을 쉰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쉬었을지라도 몸이 기억하리라는 걸 알았다. 완주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몸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포기를 종용해서임을 체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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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크로스핏으로 돌아와, 몽골 황야를 지나쳐야만 올 수 있는 위치 특성상 수업에 달리기가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통 400m 단거리 코스일 때가 많지만 그날은 장거리를 뛰어야 했다. 체육관을 빙 둘러 드넓게 펼쳐진 평야를 한참 달려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출발 신호음이 울리자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항상 설명의 80%쯤 이해 못 한 채로 수업을 들었기에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을 따라갔다. 분명 나는 중간쯤에 있었는데 이탈자가 하나둘씩 속출했다. 어느덧 내 앞에는 남중생뿐이었다. 그는 방아깨비 같은 몸짓으로 겅중겅중 격차를 벌려갔다. 꽤 오래 뛰었는데도 체육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드넓게 펼쳐진 황야의 끝이 어딘지 가늠이 불가능했다. 끝을 모르고 뛴다는 건 너무 막막해서 자칫 의욕을 잃기 쉬웠다. 그때부터 달리기는 곱절로 힘들어지는데, 내 사고도 착실히 그 수순을 따랐다. 뇌는 자꾸만 멈추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그랬다가 남중생을 놓치기라도 하면 돌아갈 길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뛰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두 자아의 싸움이 계속됐다. 멈춰! 닥쳐! 포기해! 길 잃어버리면 어쩔 건데! 그럼 계속 뛰다 죽던가!

어느 정도 페이스를 되찾았을 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타오르듯한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두보에서도 더 외곽에 위치한 크로스핏, 그 덕에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온전히 석양을 향유할 수 있었다. 두보의 저층 건물들을 볼 때마다 늘 도시의 고층 빌딩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풍경 속을 달릴 수 있는 건, 내가 두보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도 도망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뜻대로 된 건 하나도 없고, 고난과 역경만 숨 돌릴 새 없이 찾아왔다. 마치 세상이 나를 두보에서 몰아내려는 것처럼.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경이로움 뿐이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도 계속 달렸다. 변화하는 풍경 속으로 나를 던졌다. 붉은빛이 절정을 이루던 하늘은 노란 불꽃을 틔운 뒤 서서히 어둡게 물들었다. 이 순간은 꽤나 오래 기억되리라. 지옥 같은 시기와 대조되어 더 아련하고 벅차게.

KakaoTalk_20241115_084007604_01.jpg 로잉머신하는 곳이자 달리기 출발점

체육관에 들어서자 코치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남중생뿐이어야 할 체육관에는 벌써 대여섯 명의 회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거꾸로 뛰어와 나를 5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한 것이다. '저 놈들은 가짜야, 진짜 2등은 나야!' 크게 외치고 싶었다. 하위권에만 머물다가 처음으로 잘했어서 더 억울했다. 하지만 3n세가 내뱉기에는 유치하다 못해 추한 발언이기에 꾹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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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쵸(이)가 고문을 당하고 있다(좌) / 3 Asians in getout gym(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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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잔치인 크로스핏에서 완두콩 세 알 같은 우리들, 어쩐지 그날을 기념하고 싶어서 마무리로 사진을 찍었다. 달리기가 분비시킨 아드레날린의 여운 때문인지, 아까 본 풍경이 화를 누그러트린 건지 몰라도 마음이 더없이 상쾌했다. 크로스핏 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날, 나는 산업 재해로 인해 결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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