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1
초보자용 운동도 이렇게 힘든데 기존 회원들이 하는 운동은 얼마나 어려울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해맑게 소림 축구를 하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최소 중년 이상인데 광인처럼 웃으며 바벨을 들었고,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청소년이 철봉 위로 날아다녔다. 그들의 위로 B급 액션을 선보이는 주성치와 오맹달이 겹쳐 쳤다. 지독한 백인 놈들, 현실에서 소림축구를 구현하다니...! 나름대로 꾸준히 달리기를 했음에도 이렇게 죽을 맛인데 저들은 어쩜 저렇게 강한 걸까. 인종별 신체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걸까? 하나 다행인 건, 겟아웃 마을에서 이 나약한 육신을 탐낼 이 없다는 것.
박탈감과 자괴감은 육신의 고통이 밀려올 때 잠시 쓸려갔다가 물러나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체면 때문에 겉으로는 근엄함을 유지했지만, 속에서는 고통과 참회와 분노와 애원이 뒤섞여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쯤에는 육신뿐 아니라 내면의 응어리까지도 잘게 조져진 상태였다. 오래간만에 그간 뭘 해도 찌뿌둥했던 몸이 개운했다. 케이틀린이 이병헌처럼 온 이빨을 다 내놓고 환하게 물었다.
마치 당근 거지를 떨쳐내는 듯한 단호함이었다. 어차피 살 사람은 사듯이, 우리는 내일부터 정식으로 다니기로 했다. 고강도 운동을 연이어하는 게 무리라는 걸 알지만 절실하게 두보에 있음을 잊고 싶었다. 적어도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는 감각만이 존재했으니까. 무엇보다 마무리가 개운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순물이 쏵 빠져나가 그 자리를 뿌듯함이 메웠다.
돌아가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장장 40여분을 걸어 인도 집이라는 지옥에 집어삼켜져야 했으니까. 그간 누구보다 많이, 오래 걸었지만 걷기는 운동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까웠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성취감은커녕 기진맥진할 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돌아갈 방법은 걷기 뿐인 것을. 중간중간 있는 불가피한 무단횡단 구간에 치여도 모를 만큼 인적 없고 캄캄한 길을.
조는 두 번째 수업부터 우리만을 위한 한국어 커리큘럼을 줬다. 뿐만 아니라 커다란 화면을 전부 메우던 영어 커리큘럼은 구글 번역창과 2 분할이 되어 있었다. 설리번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헬렌 켈러가 존재했듯, 그가 준 따뜻함 덕에 매 순간 분노에 조종당하던 나도 감옥길을 걷지 않을 수 있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조는 두보의 몇 안 되는 좋은 기억 중 하나였다.
회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치였던 상황은 목요일에도 펼쳐졌다. 출석률 100%를 자랑하던 열혈 회원이 '얼라잇~!' 하며 수업의 포문을 열었다. 선량한 시민 행세를 하다가 밤이 깊자 고개를 든 마피아처럼, 자꾸만 튀어나오는 코치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 것 뒤에는 짠 게 당기듯, 만족도 최상 수요일 수업 다음 날에는 어떤 수업이 펼쳐질까? 결론은 1회 차 수업이 채 끝나기 전에 도출됐다. 목요일 수업은 버리자!
그가 운동을 못 하느냐, 그럴 리가. 많은 백인들 틈에서 그를 인지했던 건, 운동 능력 때문이었다. 남들은 양손으로 턱걸이를 할 때, 그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한 손으로 턱걸이를 했고, 3회만 해도 되는 동작을 혼자서 6회씩 했다. 나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몹시 취함과 동시에 주위를 의식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알이 꽉 찬 게장 같은 밀도 높은 근육은 시선이 옮겨가지 않도록 붙드는 역할을 했다. 이쯤에서 근육의 밀도를 어떻게 아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누군가 내게 투시력이라도 있냐 묻거든 고개를 들어 그의 옷을 보게 하겠다. 명치와 옆구리가 푹 패인 허벌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 심봉사도 눈을 번쩍 뜨게 할 법한 유교에 정확히 위배되는 복장이었다. 그렇게 헐벗었음에도 온몸을 채운 문신 덕에 꽁꽁 싸맨듯한 착시 효과를 냈다.
그는 호주에 몇 안 되는 비대머리인이자, 웃을 때면 달빛에 빛나는 완벽한 치아(슈퍼 울트라 화이트 티쓰)를 자랑했다. 친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빡빡이 아저씨와는 정 반대였다. 그렇다면 왜 빡빡이 아저씨가 아닌 그의 수업을 버리느냐, love myself가 과하긴 하지만 빡빡이 아저씨와 달리 머리카락도 있고 친절하기까지 한데! 답은 그가 따봉아저씨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원비 납부가 안 돼서 따봉아저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수업이 끝나고 다시 봐줄게' 라며 상황을 모면하고는 수업이 끝나자 사라졌다. 그래도 직원인데 회피를 시전 하다니. 범상치 않음에 황당함도 한 없이 작아졌다.
뿐만 아니라 역도 위주로 진행되는 그의 수업은 너무 널널했다. 세트가 진행될수록 횟수와 무게를 증량해야 하긴 했지만, 마지막 세트까지도 시간에 비해 횟수가 턱 없었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들 바벨에 원판을 주렁주렁 매달았기 때문이다. 바벨을 내려놓을 때마다 육중한 소리가 체육관 바닥을 울렸다. 나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세트를 마쳤는데, 원판을 매달 수도 없는 플라스틱 봉(4kg)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음 세트까지 남는 시간 동안 수다를 떨거나 개인 운동을 했다. 거기에는 따봉 아저씨도 포함이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어 두리번대는 회원이 있는지도 모른 채 다른 회원들과 웃음꽃을 피우느라 바빴다. 낙제생들을 두루 챙겼던 조, 병헌 건치 미소로 도태생들을 위한 수업을 따로 해주었던 케이틀린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강렬한 시선으로 그를 쫓았다. 그는 여자회원들과의 긴 담소를 마치고 나서야 다음 그룹을 찾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올 굿?"
입술을 감싼 수염과 대조돼 더욱 슈퍼 울트라 화이트인 티쓰를 빛내며 그가 물었다. 엄지를 척! 치켜세우고는. 그리고 대답도 전에 "올 굿!" 하고 떠나버렸다. 나 대답 안 했다고. 왜 대신 대답하냐고.
그 뒤로 그는 다른 (여자) 회원들과는 신나서 수다를 떨더니, 세 명의 아시안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기계적인 건치미소와 따봉을 날리고 사라졌다. 혹여 말이라도 걸까 두려운 것처럼. 가뜩이나 수업도 널널한데 철저한 외면까지 당하니 운동을 했는데도 안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따봉아저씨의 수업은 쉬는 날이 됐다. (내 돈을 떼먹으려 한 뻑킹 피자집에 간 날도 따봉아저씨의 수업날이었다.)
"얼라잇~!"
마치 sm 식 인사법처럼, 그는 두보 크로스핏식 인사로 수업의 포문을 열었다. 채용 조건이 건치인 건지 금요일 코치 역시 역시 다른 코치들처럼 반짝이는 하얀 이를 자랑했다. 지난 수업들을 회상했을 때 귀퉁이마다 그가 걸려있었다. 무게를 치면서도, 달리기를 하면서도 새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웃던 그, 다 죽어가는 내게 '힘내 재쵸!' 매번 응원을 아끼지 않던 그, 직장에서 회피를 시전 하는 따봉 아저씨와 판이하게 다른 그. 그도 다른 의미로 범상치 않았다. 휴무에 출근해 회원들을 격려하고 조언해 주는 것, 연차에 출근해 거래처에 안부 전화하는 것과 다름이 무엇인가. 직장을 다녀봤기에 더더욱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광기여야 두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정치적 입장을 좌, 우, 중도로 나누듯이 코치진 또한 세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만 안고 가는 빡빡이 아저씨, 모자란 학생을 더 챙기는 조.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서 따봉만 날리는 따봉 아저씨. 금요일 코치는 '조'에 가까웠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 못 하는 사람 두루 챙겨 마무리 스트레칭까지 끌고 갔다.
그의 몸도 신뢰를 주는 요인 중 하나였다. 보디빌더처럼 체지방이 극도로 제한된 근육질 몸. 여자 몸에는 어느 정도 지방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데, 저 몸이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 달 열심히 하면 나도 조금쯤 비슷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주 4일 꼬박 나가서 걷기 포함 약 3시간을 운동했지만,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