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38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0

by 재쵸

<탈출까지 D-61~D-33:시간 삭제를 위한 크로스핏 체험기 1>



<저장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눈뜨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요정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그들은 마감에 쫓기는 만화가나 시험 기간인 학생들로부터 시간을 훔쳐 수업 중인 교실에 선물한다. 수업 시간은 길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늘어난 거라는 만화 속 음모론이 이제와 생각난 건 내가 두보에 있기 때문이리라. 쓰러지듯 침대에 눕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키는 영화 속 연출처럼, 기절하듯 잠들자마자 알람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는 날의 연속. 매일 아침마다 시간을 삭제당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양공장에 몽땅 털어 넣어 1분을 10년처럼 늘려놓은 건 아닐까?

입사 초기에 헤드셋을 사지 않은 죄, 그 형벌은 적막이 가득한 곱창방에서 12분마다 쏟아져 나오는 곱창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쉬엄쉬엄 할 수도 없었다. 곱창이 쌓이면 현장관리자 얼에게 찍혀 좌천될 테니까. 그렇다고 빠르다고 능사도 아니었다. 곱창(양의 위)에 박혀있는 철사를 놓치지 않고 제거해야 했다. 포장을 마쳐 올려 보낸 상자에서 작은 철사 조각이라도 발견되면 품질팀에서 쪼르르 내려와 핀잔을 줬으니까. 마치 중국집 배달처럼 '신속, 정확'이 요구되었다.

자꾸만 슬픔에 잠겼다. 기억을 헤짚으며 과거로 흘러가 무수한 억울한 순간들을 발굴했다. 그러다 보면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비록 곱창즙과 찌꺼기로 범벅된 손으로 닦을 수는 없었지만. 감상에 젖은 와중에도 자꾸만 시계로 눈길이 갔다. 10분은 지났겠지? 싶어 시계를 보면 1분도 채 지나있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여기서 왜 곱창이나 주무르고 있는 거지? 왜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거지? 갑갑해서 터져버릴 것만 같은데 노역장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는 인지부조화를 불러왔다. 방구석 개똥 철학가처럼 자꾸만 인생이란 무엇인지, 이런 것도 인생이라 할 수 있는지를 고뇌했다. 결론은 항상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기에 삶의 의미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두보에는 삶도 없고 의미도 없었으니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수험생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퇴사를 앞둔 회사 생활이 그럴 것이다. 내게는 두보에서의 모든 순간이 그랬다. 매일 출근길에 어둠을 가르며 'd-nn일 남았다. 주로 환산하면 n주..'를 되뇌었다. 손톱을 깎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주 정도면 이만큼 자라니까 이제 n 번만 더 깎으면 탈출이다...' 생리를 할 때도 그랬다. '앞으로 생리 n 번만 더 하면 탈출이다..' 하지만 두보를 견딘다는 건 단순히 숫자로 함축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임을 저장하지 않고 종료하면 다시 실행했을 때 이전에 저장한 지점에서 시작되듯이, 지금이라도 저장하지 않는다면 두보행 열차를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 절대 흐르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마 두보에서의 시간이리라. 빌어먹을 탈출날은 통일만큼이나 아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인생을 바꾸는 미라클 모닝과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두보살이의 대결>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미라클 모닝.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았기에 한 번도 시도한 적 없었다. 하지만 두보가 어디인가. 호주라기보다는 사실상 플레처 속국이 아니던가. 두보민의 대부분이 빠르면 5시, 늦어도 6시에는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지독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두보민이 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강제 미라클모닝으로 하루를 열었지만, 그 하루에 기적 따위 없었다. 과로사행 최단경로를 밟고 있다는 생각만 들뿐.

KakaoTalk_20240918_202611487.jpg 쓰레기 같은 화투용 담요, 1시간 지나면 저절로 꺼지는 미니 매트

노역이 끝나면 헐레벌떡 뛰쳐나오면서도 그렇게 뛰쳐나와 가는 곳이 인도집이라는 현실이 괴로웠다. 이불 한 장 제공되지 않는 곳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모든 세간살이를 구매해야 했다. 아니면 인도가족보다 더 지독해지기를 택하거나. 기존 하우스메이트들은 전자를 택했지만 내 선택은 후자였다. 두보 지역경제 활성화에 조금도 보탬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불 없이 패딩을 입고 잤다. 그러다 K마트에서 4불짜리 화투 모포를 발견했고, 신문지를 찾은 노숙자처럼 덥석 집어 들었다. 신체가 정확히 머리, 가슴, 배로 구분되는 개미처럼 모포로는 하체를, 패딩으로 상체를, 1시간마다 꺼지는 미니매트로 등을 보온했다. 물론 구색에 가까운 노숙자 세트는 외풍을 전혀 막지 못했다.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런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저 '춥다'는 감각만 계속 상기됐다. 어느 순간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면 성냥팔이 소녀의 최후를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렵게 잠들었지만 장판이 꺼지면 귀신같이 잠에서 깼다. 그러면 자느라 잊고 있던 온몸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춥고 아프고 불행하고. 그래서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곧 노역장으로 끌려간다는 현실과 추위로부터의 도피처는 잠뿐이었음에도.

KakaoTalk_20240918_203132582.jpg 인도집에 살 당시 재쵸의 척추

잠이 보약이란 말이 무색하게 나날이 병색이 완연해졌다. 추위나 변변치 않은 침구류보다 침대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물침대도 아닌데 손으로 짚기만 해도 푹푹 꺼지는 침대는 모래늪을 연상시켰다. 앉아있을 때면 엉덩이가 푹 들어간 만큼 허리가 숙여져서 '척추를 접어버린다'를 실사화한 것 같았다. 차라리 눕는 편이 무게가 균일하게 분배돼서 나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해먹처럼 허리와 엉덩이 부분만 꺼져서 강철 코어도 하루 만에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자면 잘 수록 피곤해서 차라리 바닥에서 자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몸보다 더 불편한 건 마음이었다. 내 돈을 주고 정당하게 살고 있음에도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순전히 인도가족에 대한 하우스메이트의 경고가 강렬해서였다. 괜히 마주쳐봤자 꼬투리만 잡히지 마주치지 말라, 인도 남편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금수라고 생각해라, 네 명의 하우스메이트 중 인도 남편에게 '너 나가!'를 시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살 수록 경고에 걸맞은 상황이 자꾸만 펼쳐졌고, 그럴 때면 인도가족 위로 '사람이라기보다는 금수에 가깝다'는 자막이 겹쳐졌다. 인도 가족과 마주칠라 치면 머릿속에서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warning, warning!'이 재생됐다. 그래서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도 일단은 나왔다. 몸도 마음도 불편한 곳에서 몸만 불편한 바깥으로. 집이 족쇄 같아 자발적으로 노숙인이 된 사람들의 심정을 십분 공감하며. 출근해서는 퇴근만을 바라고, 퇴근하고는 출근까지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음에 괴로워했다.


<너구나, 콜드룸 이쁜이가?>

주말이지만 귀신같이 일찍 눈이 떠졌다. 누군가 화장실을 썼는지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내가 변기 옆에 쓰러져 잠들었던가' 되짚었다. 암막 기능 없는 커튼에서 햇빛이 쏟아졌고, 폴더폰처럼 반쯤 접힌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침대에서 잤구나. 비록 침대가 화장실 바닥보다 더 나은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직장인의 불행은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 이는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낮까지는 행복함을 뜻한다. 하지만 두보 노예는 주말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노역은 안 가도 그만큼 길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양공장 노동자로부터 콜드룸 친구를 소개받는 날이니까. 두보살이를 즐기는 이건, 괴로워하는 이건 무료함과 사투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파민과 단절된 작은 절간 두보에서 도파민을 충전하는 유일한 법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오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아도 된다!

양공장 노동자에게 소개받기로 한 친구는 콜드룸 이쁜이와 무간지옥언니다. 저녁에 합류하기로 한 무간지옥 언니는 양공장 노동자가 '내 친구들 뽑아달라'라고 인사과에 찾아갔을 때 통역사로 대동됐었다.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기에 무간지옥과 같은 두보에 n년째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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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룸 이쁜이는 sm에만 반응하는 피를 가진 (구) 동방신기 팬으로, 일전에 울월스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얼마나 갈 곳이 없으면 마트만 가도 아는 사람은 죄다 마주치는 건지. 우리는 양공장 노동자를 가운데 두고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나눴고, 혹여 말을 섞어야 할까 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급히 다른 코너로 자리를 옮겼었다. 그때 참 숨 막혔었지... 오늘 괜찮을까? 걱정도 잠시, 아무리 별로여도 인도집보다는 나을 거란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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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방향으로 오믈렛/시나몬 오트밀/풀드포크 어쩌구/버거

만남 장소는 읍내의 한 브런치집이었다. 어색함이 극에 치달았을 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버거를 시켰는데, 어딜 가도 똑같은 맛을 자랑하는 포장마차 어묵처럼 전형적인 버거맛이었다. 다른 이들의 메뉴도 비슷했다. 오직 콜드룸 이쁜이의 시나몬 오트밀만 제외하고. 한술 뜨자마자 '윽'소리를 뱉어낸 콜드룸 이쁜이의 얼굴은 마치 돌이라도 씹은 듯했다.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맛이... 실험적이야."

실험정신을 기반으로 주문하면 호주에서는 낭패를 보기가 쉽다. 먹었을 때 '이래서 영국 속국이구나' 소리만 안 나와도 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제대로 된 음식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요리라기보다는 접시에 재료를 얹기만 한 것도 20불은 가뿐히 넘어갔다. 그래서 콜드룸 이쁜이는 아직도 호주맛을 덜 본 과거의 자신을 속죄하듯 꾸역꾸역 계피 범벅 오트밀을 먹었다.


<밥집-카페-소품샵-올리브영 코스는 어찌나 식상한가>

음식이 나오고 얼마지 않아 카페는 마감 준비로 분주해졌다. 괜히 빨리 먹어야 할 것만 같고 눈치가 보였다. 현지인들은 신경 쓰지도 않는데 아직 한국물을 벗지 못한 우리만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웠다. 제법 나이스한 척 '땡큐, 해브 어 굿 데이' 인사를 하고 나오니 아직 햇볕이 쨍쨍했다. 하루가 한참 남았음에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갈 곳 없는 실직 가장의 막막함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다. 길이 있어도 갈 곳이 없고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느낌 오는 곳에 가기도 불가능했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디 가지?"

"딜 뜬 거 보고 괜찮은데로 가자."

두보의 성수동, MZ와 노년층을 동시에 사로잡은 곳, 밤에도 죽지 않는 유일한 곳, kfc, 헝그리잭, 맥도날드! 우리는 일제히 윈도우 98보다 느린 호주 패스트푸드점 앱을 켜 오늘의 딜을 확인했다. 세 곳 모두 딜이 시원치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헝그리잭 뽑기를 켰다. 하루에 두 번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로, 4불짜리 치킨버거나 2불짜리 감자튀김, 무료 아이스크림 따위가 나왔다. 뽑기를 누르자 화면에는 아이스크림이 떴다.

"헝그리잭 프리 소프트콘!"

KakaoTalk_20240918_202253633_04.jpg 그리 행복하지 않았는데 왜 웃고 있는 건지...

뽑기로 받은 상품은 30분 이내에 주문을 마쳐야 해서 자연스럽게 목적지는 헝그리잭으로 정해졌다. 헝그리잭은 노인 유아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로 버글 댔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목소리를 점점 높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세라 그들은 귀를 찢을 듯한 돌고래 소리와 익룡 울음을 방사했고,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천문학적 금액 들여 공룡 dna 복원을 왜 하나, 이미 두보에 익룡 한 무더기가 뛰어다니고 있는데. 쥬라기 공원 부활이 머지않았구나. 결국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헝그리잭을 나왔다.

KakaoTalk_20240918_201922598_01.jpg 두보 읍내 풍경

무간지옥 언니가 올 때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잠깐 집에서 쉬고 다시 만나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려면 오며 가며 우버를 타야 하는데, 우버가 없으면 광기의 걷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집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건 양공장 노동자와 콜드룸 이쁜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집주인도 인도 가족 못지않았는데, 걸핏하면 강퇴 요청을 일삼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주지 않는 두보에서 새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거주지가 바뀌면 오일 쉐어도 새로 구해야 했으니까. 출퇴근이 불확실해진다는 건 세컨/써드 비자 요건을 충족할 때까지 버티기 어려워짐을 뜻했다. 그리고 그 점을 외노자들만큼이나 집주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콜드룸 이쁜이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처럼 내 돈 주고 살면서도 불법 노점상 상인 취급을 받기가 일쑤인 곳이 두보였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자릿세 뜯는 깡패의 비위를 맞추고 손해를 최소화하느냐, 자존심을 지키고 돈, 시간, 정신 건강을 잃느냐. 전자가 훨씬 영리한 선택이란 걸 알지만 나는 번번이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깡패는 자릿세를 뜯으러 주기적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읍내로 장이나 보러 갈까?"

KakaoTalk_20240918_202253633.jpg 도적질을 일삼는 호주인으로 훌륭하게 성장

'배부르니까 소화시킬 겸 올리브영 구경할까?'는 두보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40분을 걸어 읍내에서 장보기만이 존재할 뿐. 경기도민이 마음먹고 더현대나 코엑스에 가듯이, 차가 없는 두보민에게는 마트에 가는 게 마음먹어야 하는 일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울월스와 콜스에 모두 들려 장을 봤다.(알디는 가든 여인숙 쪽에 외떨어져있어 들리지 못했다.) 호주에 막 도착했을 때는 4~5불 사이로 저렴했던 포도는 어느새 16불을 돌파했다. 회도 아니고 무슨 포도가 싯가야, 염병. 멜버른에서 만난 동년배 워홀러가 '호주에서는 시식 코너가 없어요. 알아서 판매 상품을 시식하니까요.'라고 했을 때 경악을 했었다. 하지만 포도 값이 16불이 됐을 때 나는 진정한 호주인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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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패딩)을 입고 카트를 끌고 있다 / 양공장 노동자가 찍어준 사진

서리에 가까운 시식을 마친 뒤 우리는 두보 유일 아시아마트(한인마트 x)로 장소를 옮겼다. 까르보 불닭볶음면, 불닭 소스, 각종 라면, 과자... 눈이 뒤집혔다. 하지만 조리를 할 수 없는 신세이기에 살 수 있는 건 컵라면뿐이었다. 장보기를 마쳤을 때는 모두 짐이 한가득이었다. 아시아마트에 올 때는 훔친 카트로(호주 문화) 짐을 날랐지만, 읍내와 정반대에 있는 펍까지 카트를 끌기는 무리였다. 우리는 우버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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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은 경기 외곽의 대형 카페를 연상시켰다. 언제쯤 두보를 떠날 수 있을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콜드룸 이쁜이가 뜬금없이 크로스핏을 하자고 했다. 살면서 크로스핏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본 적도, 머릿속에 떠올려본 적도 없기에 귀를 의심했다. 두보에 크로스핏이 있다고? 심지어 그걸 하자고? 농담하는 건가?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하는데 콜드룸 이쁜이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트라이얼 1회는 무료고, 한 달에 200불 밖에 안 해."

"안 사요."

"헬스장 끊는 것보다 싼데?"

"안 사요."

"운동이라도 해야 시간이 빨리 가지."

시간 삭제. 그것만큼 간절한 게 없었다. 추진력 좋은 콜드룸 이쁜이는 이미 트라이얼을 신청하고 있었고, 굿가이도 그 뒤를 따랐다. 마감 임박 자막에 홀린 듯 주문하듯 다급하게 '나도!'를 외쳤다. 졸지에 바로 다음날 양공장 노역 후 크로스핏을 가야 했다.



-시간 삭제를 위한 크로스핏 체험기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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