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4
<탈출까지 D-64~D-28:인도여 못 있거라 2>
<대물림되는 악습을 끊을 수는 있지만 없앨 수는 없다>
9n년생 어린이들의 도파민을 책임졌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아틀라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그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다. 잊고 지냈던 신화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건 인도 가족을 감당하는 스스로가 아틀라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태 노인을 피해 급하게 이사 왔을 뿐인데 신에게 대적한 것과 동일한 형벌을 치르고 있다니... 그나마 위안 삼자면 아틀라스는 혼자지만 우리는 다섯 명이라는 것.
일본인 세입자가 도망치듯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아직은 넷이니까. 정신승리를 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하지만 인도 가족을 감당하던 남은 두 축마저 떠났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린 하늘에 속절없이 깔리고 말았다.
인도 집을 떠나는 날까지 온전히 그들을 감당해야 했다. 순종적인 아시안 세입자를 구하려는 인도 가족의 노력이 족족 허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불은커녕 휴지 한 장 제공되지 않는데 방값은 시드니보다 비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이 집에는 '인도 가족'이 있지 않은가. 집 상태나 비싼 렌트비쯤은 사소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인도 가족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올바른 원인 분석이 선행되어야겠지만, 그들의 지능으로 올바른 추론을 할 수 있을 리가. 혹여 한다 해도 개선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집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 조건이기에.
남은 방법은 복지를 늘리거나 집세를 낮추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인도 가족은 그 대신에 내게 친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종놈의 마음 따위 헤아릴 필요가 없어서인 건지. 무엇하나 남 부끄럽지 않은 게 없는 여기에 누굴 끌어들이란 말인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새 희생양이 오면 인도 살이 난이도가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잡이처럼 인도 가족에게 부역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물림되는 악습을 끊으려면 그건 내 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하나 간과한 게 있다면 인도 집은 학교가 아니라 공공기관이라는 것이다. 학교는 1년 단위로 물갈이가 돼서 내 대에서 괴롭힘만 멈추면 악습을 없앨 수 있지만, 공공기관은 고인 물이 썩은 물 될 때까지 버티고 있어서 쇄신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같이 썩어 들어가거나 견디지 못해 도망 나오거나. 둘 다 내게는 먼 이야기였다. 카스트제 밑바닥인 내가 인도 카르텔에 속할 수도 없거니와, 아직 페이슬립(세컨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급여명세서. 보통 넉넉하게 16장쯤 제출한다)도 충분히 모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인도 가족의 인도짓을 견뎌야만 했다.
<리빙 포인트:새 희생양이 안 구해질 때는? 기존 노예들을 그만큼 착취하면 된다.>
연이은 희생양 구하기 실패에 인도 남편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바로 인스펙션 날에 방을 "싹!" 치우라는 것. 그 정도쯤은 요구할 수 있지 않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인간으로 태어나 금수가 된 자 아닌가. 그는 사람이 사는 흔적을 다 지워 빈집처럼 만들기를 요구했다. 하필 주말도 아닌 평일, 그것도 한 주의 피로가 정점을 찍는 목요일에. 생각만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원흉인 네들이 집을 나가면 될 것이지 애꿎은 물건은 왜 치우라는 건데. 물건 좀 치운다고 다 죽은 미감이 살아나겠냐? 거지 같은 자주색 침대 시트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깟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지만 빌어먹을 88일이 아직도 지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굴복을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가 밑바닥 생활을 좌우했기에, 그저 그러마 할 뿐이었다.
수요일. 평소라면 크로스핏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잠들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일 있을 인스펙션을 위해 방을 비워야 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노인맛을 본 교훈으로 여기서는 짐을 전부 풀지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일상을 나는데 필요한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치우는 게 간단치 않았다. 물건 하나에 욕과, 물건 하나에 분노와, 물건 하나 저주를, 인도여, 망해라...
그러고 보면 호주에서 짐을 싸고 푼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자잘한 호스텔 살이는 제하더라도 시드니 첫 번째 집에서 더보 가든 여인숙으로, 가든 여인숙에서 노인의 집으로, 노인의 집에서 인도 집으로. 원래라면 시드니로 떠날 때나 짐을 쌌을 텐데 인도 가족 때문에 불필요한 과정 하나가 늘어났다. 내일 퇴근 후에 짐 푸는 것도 내 몫이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두보를 떠나는 게 낫지. 대체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번뇌와 분노, 자괴감으로 뒤섞인 머리와 달리 몸은 착실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창고에 짐을 옮기고 나니 잘 시간이 지나있었다. 출근 전에 써야 하는 물건들은 당장 치울 수도 없어서 일단 지친 몸을 뉘었다. 칫솔, 치약, 세면도구, 이불(교회 협찬), 전기장판, 그리고 지금 입고 있는 옷까지... 내일의 숙제를 헤아렸다. 마음에 돌덩이가 앉은 것 같았다.
인도 가족 따까리짓을 마저 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흔적마저 사라지자 일렁이는 태양 같은 자주색 침대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생활감으로 간신히 강렬함을 누르고 있었는데 이제 무엇도 자주색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정말 뭐가 문제가 모르겠냐. 이 색깔! 그리고 이 색을 택한 네 안목! 그냥 너! 바로 너 때문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저 속 안에 삼켜질 뿐. 쑤셔 담은 모든 세간살이를 창고에 숨기듯이.
탈출을 위해 얼른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두 마음이 사투를 벌이느라 언제나 정신적으로 소진 상태였다. 잠이란 수렁에 몸을 내던지는 것 외에 어떤 기대감도 없는 일상의 반복. 빨리 씻고 잠이나 자고 싶은데 나를 맞이한 텅 빈 방은 '세상이 그렇게 쉬울 것 같냐' 비웃는 듯했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인생이 왜 이렇게 x발스러운 걸까? 인스펙션을 마친 시점부터 인도 가족은 속 편히 이 방에 대해 신경 껐겠지만 내 따까리짓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도 남편이 입 한 번 놀리면 치우고 군말 없이 다시 채우고. 마치 장학사 오기 전 학교를 쓸고 닦듯, 수령님께 바치는 공연 연습을 하듯, 상명하복 문화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낮은 계급이 명령에 복종하듯... 심지어 그들과 달리 나는 나는 돈을 내는 입장인데도 아랫것을 맡고 있다니.
짐을 푸는 내내 들숨에 욕을, 날숨에도 욕을 뱉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를 길게 끌고 갈 수도 없었다. 평소에도 눈 깜짝할 새 찾아온 취침 시간이 오늘은 짐을 푸르느라 더 빨리 왔기 때문이다. 인도 따까리짓만 하다가 자야 한다는 게 억울했지만 너무나도 피로했다. 그런데 전기장판이 보이지 않았다.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숨기지 못했는데, 인스펙션 때 인도 가족이 치운 듯했다. 거실에서 시끄러운 티비 소리와 시시덕대는 인도 부부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사랑에 빠져서 다른 사람은 뵈지도 않나, 치웠으면 어디에 뒀는지 알려줘야지...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상식적인 흐름을 기대하면 정신병만 얻을 뿐이다. 다시 방을 뒤졌다. 하지만 전기장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버렸나? 인도 가족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애써 불길함을 지우고 방을 나섰다.
인도 구역에 발 딛자마자 비명과 함께 눈을 찌를 뻔했다. 그들이 사랑에 단단히 빠진 건 알고 있었지만 영화는 안중에도 없이 암수 한 몸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방해하는 것조차 죄스러울 만큼 견고한 사랑은 타인으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인도 남편은 kbs1 일일 연속극 속 아버지가 입을 법한 러닝셔츠와 팬티 차림이었고, 금수는 간신히 면한 인도 부인은 다행히 옷을 입고 있었다. 인간과 짐승은 옷 한 장 차이라는 걸 입증하듯이.
"미안한데(겠냐) 전기장판이 없어졌어.."
그들만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온 불청객에 인도 부부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마지못해 인도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도 부인에 의해 가려진 곳 없이 온전히 드러난 그의 행색은 얼마나 날것인가. 아까 눈을 찔렀어야 했는데...
그가 전기장판을 꺼낸 곳은 침대 아래였다. 딛기만 해도 수심 10m 아래로 꺼지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침대도 아니면서 물컹거리는 매트리스는 바닥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을 좁은 틈으로 쓰레기 버리듯 전기장판을 쑤셔 넣는 인도 남편이 그려졌다. 나는 매일 쓰는 치약 칫솔까지 다 숨기고 갔는데... 창고에 있는 내 짐들 위에 올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
경악을 채 숨기지 못했지만 인도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어디 뒀는지 말하는 걸 잊었다던가, 숨길곳이 여기밖에 없었다던가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됐지? 하고는 인도 부인에게 돌아갔다. 매 순간순간이 인지부조화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상한가? 내가 미친 건가? 이게 말이 돼? 외눈박이 세상에는 두눈박이가 병신이라더니. 아니, 이제는 내가 외눈박이인지 두눈박이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집이 있지만 감시를 멈추지 못하니 주인이라 할 수 없고, 경비원이라기엔 음침함이 도를 넘었으니 남은 건 변태뿐이니라>
빼앗긴 들판에도 봄이 오듯 카스트 밑바닥에도 해방기가 왔다. 인도 가족이 1주일간 시드니로 떠난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금기사항들을 신신당부했지만 모두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이제 인도 가족은 내가 뭘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 해도 어쩔 건가? 시드니에서 바로 출발해도 여기까지 5시간이 걸리는데! 자고로 집을 점거한 쪽이 유리한 법이다. 전 하우스메이트들은 그러지 못했기에 인도 맛을 제대로 봤던 거고.
그들을 인도학 박사로 만들어준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압권은 시드니 여행 사건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갑작스레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인도 남편의 감정 기복은 사춘기 아이보다 널을 뛰었으니. 그간의 횡포에 지칠 대로 지친 인도학 선배님들은 받아들임을 택했다. 여행 예정일까지 불편한 동거를 감내한 끝에 그들은 도망치듯 시드니로 떠났다. 돌아와서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일단은 정신병적인 통제로의 해방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인도 가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연차날 상사에게 걸려온 전화처럼, 안 받으면 안 받는 대로 신경 쓰일 게 뻔했기에 그들은 전화를 받았다.
'인도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너네 방에서 재워도 되니?'
당시 인도학 선배님들은 총 5명으로, 쉐어용 방 3개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방 1개에 1명씩 잔다고 해도 최소 3명, 그 성질에 친구가 셋이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친구한테는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그들의 기준에는 그게 비상식적인 행동이 아닌 건지. 확실한 건 누가 봐도 쉐어생 방을 쓴다는 친구들이나 쫓아낼 땐 언제고 연락하는 인도 가족이나 결이 같다는 것. 상식 없는 자들에게 거절이 통할 리가 없기에 인도학 선배들은 그 친구들까지 품기를 택했다. 몰래 쓰는 것보다 울며 겨자 먹기라도 허락하는 게 나았기에. 그날을 계기로 인도 남편은 퇴거 명령을 철회했고, 그들은 숨죽이고 지내다 써드 조건을 달성하자마자 도망 나갔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집을 점거한 쪽은 나다. 더는 불 켜자마자 재빠르게 숨는 바퀴벌레처럼 지내지 않아도 됐다.
인도 가족만 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졌다. 크로스핏으로, 맥도날드로, 인도가족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 떠돌이처럼 나돌던 전과 달리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크로스핏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괴롭지 않았다. 새벽 노역에 이어 격한 운동까지 했는데 몸이 가뿐했다.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원래라면 룸메이트와 취침 시간을 맞춰야 해서 불가능했지만, 이제 부엌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글쓰기가 필요했던 순간들은 항상 어둠 속에서였다. 우울할 때, 힘들 때, 괴로울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무엇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말 오랜만에 도피가 아닌 창작의 즐거움 때문에 글을 써 내려갔다. 인도 가족의 유무만으로 마음가짐이 판이해질 수 있다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쌀쌀한 실내 때문인지 비염 증세가 나타났다. 비염인의 코로 말하자면 그 예민함이 마치 말티즈 성질머리 같았다. 시도 때도 개연성도 없는 말티즈의 분노처럼 비염인 또한 자잘한 환경 변화에도 콧물을 흘렸다. 세계적인 스타들의 대기실 요구 사항처럼, 내게도 글을 쓸 때 필요한 것들이 있다. 노트북, 물 잔, 그리고 휴지. 인생의 대부분을 코를 풀며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휴지는 내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였기에. 그렇게 간간히 코를 풀며 글을 써 내려가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바이러스가 묻은 더러운 휴지를 당장 식탁에서 치워라!'
읽기만 했는데 인도 영어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듯했다.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댔다. 그러다 정면에 있는 홈캠과 눈이 마주쳤다. 인도학 선배의 조언이 뇌리를 스쳤다. '홈캠 시야 각이 90도쯤 되니까 웬만하면 그 안에는 들어오지 마세요. 괜히 꼬투리 잡힐지도 모르니까.' 그때의 초탈한 목소리와 공허한 눈빛,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홈캠, 그 너머에서 관음하고 있을 인도 남편과 이를 악 물고 쓴듯한 장문의 문자... 소설 속 복선은 반드시 사건으로 이어지듯, 인도학 선배의 경고 중 복선이 되지 않은 게 없었다. 그가 남긴 무수한 조언과 경고는 앞으로 어떤 개 같은 사건으로 다가올는지...
회전을 세네 번 하고도 남는 시간이 흘렀건만 홈캠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차 블루투스 회초리질을 가하기 전에 답을 내놓으라는 듯. 차라리 문자를 보지 말 걸 그랬다. 그랬다면 겨우 맞이한 인복절(인도로부터의 해방일)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나지막이 한숨 섞인 욕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으면 울화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듬성듬성 봤던 문자를 자세히 읽었다.
'제발 위생 좀 챙겨. 식탁에 다 쓴 휴지 올려놓지 좀 말고. 가기 전에 물티슈로 싹 닦고 가라. 그리고 너 저번에 신발 신고 들락거리는 거 봤는데, 그 짓도 좀 하지 마.'
정말이지.. 그때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분노로 피가 싸하게 식어 마음은 되려 고요했다. 얼마나 오래 지켜봤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식탁에 놓인 휴지만으로 감기를 연관 짓기란 불가능했다. 물론 홈캠을 켜자 때마침 내가 코 푸는 장면을 목격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공교롭지 않은가. 이렇게 모든 문장이 우연한 발견이 아닌 집요함 관음을 가리키고 있는데.
저 쪽에서 먼저 이때다 싶어 쏟아냈으니 하는 말인데, 식사 중에 코를 풀어 식탁 위에 올린 것도 아니고, 책상에 직접적으로 내용물이 닿은 것도 아니고, 내 기준에 잘 치우기만 한다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집집마다 위생관념이 다르기에 내 기준을 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여기 사는 이상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게 맞으니까.
신발에 관해서도 인도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절대 고의로 신발을 신고 들어온 건 아니었다. 술은 마셨는데 음주 운전은 안 했다 급의 궤변처럼 들리리란 건 안다. 서양인도 아니고, 한국인이 신발 벗기를 깜빡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항변하자면 호주는 한국과 달리 신발을 벗어두는 공간이 따로 없다. 그래서 신발장이 따로 있지 않는 이상 보통 현관문 근처에 신발을 두는데, 바닥 소재가 카펫인 곳도 많거니와 공간 구분이 없으니 위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인도 집에서는 아예 바깥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기를 요구했다. 순전히 그래서였다. 3n 년 내내 신발은 집 안에서 벗었으니까! 집 밖이 아니라!
음주 단속에 걸렸다는 건 걸리기 전까지 상습적으로 음주 운전을 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몇 안 되는 찰나를 수차례 포착했다는 건 하루 종일 변태처럼 cctv를 돌려봤다고 밖에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간 어떻게 범인을 나로 특정했는가 퍼즐이 꿰어지는 순간이었다.
인도 가족이 정한 규율을 어긴 것과 훔쳐보기, 전자는 매너의 문제라면 후자는 범죄였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가 됐다지만 어떻게 사찰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이 없을 수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닐 때부터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내 상식과 인도 상식의 괴리가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노인의 집과 인도 집, 거지 같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적어도 인도 집에서는 욕망의 대상이 될 일 없다고 생각했다. 인도 부부의 사랑은 너무도 견고했기에. 하지만 성적 욕망만 배제되었을 뿐 은밀하고 노골적인 관음이 행해지고 있었다.
'현관 카메라 스위치 좀 켜 줄래? 너네 감시해야 되거든. 수고.'
그는 인도를 탈출해 타국에서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세입자들이 그들의 전 재산인 집을 훼손할 거라는 편집증에 사로잡혀 휴대폰에 고개나 처박고 있다. 남의 삶을 훔쳐보느라 제 인생은 내팽개치고서. 그렇다면 그들 인생의 주인공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집을 가졌으니 집주인이지만 감시하는 행위는 경비원과 다름이 없고, 의도가 불순하니 경비원이라기보다는 관음 변태에 가까웠다. 이 어찌나 불행한 삶인가. 아니, 그걸 삶이라고 부를 수가 있나. 주도권을 내팽개친 채 숨은 쉬어도 텅 빈 것과 다름없는 그걸, 삶이라 할 수 있나. 그런 불행한 자에게 수그려야 하는 내 처지는 말해 뭐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들을 떠나 자유가 될 것이고 그들은 계속 그 굴레에 갇혀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