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44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6

by 재쵸

<탈출까지 D-33:내가 고자라니 2>



<의사? 야! 너도 할 수 있어!>

밤이 깊으면 두보인들은 불나방처럼 맥도날드에 모였다. 낮의 핫플이 읍내 마트와 오라나몰이라면 밤의 핫플은 단언컨대 맥도날드였다. 낮에는 오라나몰에서 한 무더기의 인부들을, 밤에는 맥도날드에서 인사과 클레어와 그 가족들을 마주칠 때면 퇴근을 했는데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플레처의 핫플은 어디일까? 바로 보건실(정확히는 응급 키트가 구비된 인사과)이다. 몸 성한 곳 없는 노예들은 참새 방앗간 들리듯 보건소에서 들렀다. 노역장에 들어서면 말짱 도루묵임을 알면서도 관절 부위에 테이핑을 하고, 파스를 발랐다. 그래서 오픈조 출근 직전인 오전 5시 15분경에 보건실이 가장 붐볐다.

두뇌풀가동.jpg

늘 북적이던 보건실에는 앳띈 얼굴의 백인 직원뿐이었다. 그가 슈퍼바이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멀뚱멀뚱 서있었다. 배려차원에서 천천히 말해줘도 알아듣기 힘든데, 애초에 나를 배제하고 하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누구는 손가락이 썰렸는데 백인들끼리 신났네... 한껏 빈정거리는데 슈퍼바이저가 나를 가리켰다. 눈치껏 다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백인 직원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그의 업무가 의료와 조금도 관련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여길 왜 데려 온 겨... 아무리 봐도 봉합을 할 환경도 아니고 인력도 없는데.

KakaoTalk_20250729_211124391.gif 양공장 vlog

하지만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되는 양공장은 상상을 초월한 몰상식으로 보답했다. 누가 봐도 사무직인 백인 직원이 수납장에서 처치 용품을 꺼냈다. 방황하던 그의 눈동자를 똑똑히 봤기에 이제는 내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소독액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내 손에 콸콸 쏟아부었다. 지금 뭐 붓는지 알고 붓는 거 맞지? 제발 너는 소독만 하는 거라고 해줄래?

야나두.jpg 야 너도 의사 할 수 있어!

바람이 통한 건지, 소독을 마친 그는 환부에 3m 테이프를 붙였다. 그리고 그 위에 거즈를 칭칭 감았다. 봉합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인간 본연의 치유 능력을 믿는 방식인가? 맹수에게 공격당하고도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된 원시인들처럼? 그야말로 안아키가 따로 없었다. 이게 끝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KakaoTalk_20250802_034927289.jpg
KakaoTalk_20250802_003226311.jpg

"나 곧 손가락 잃게 될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잖아핰핰핰!"

슈퍼바이저가 호쾌하게 웃었다. 농담 아닌데. 응급처치랍시고 붕대만 감아놓고 웃음이 나와? 백인 직원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지만, '나는 사무직인데 왜?'라는 의문과 혼란이 엿보였다. 감기나 두통도 아니고 무려 손가락 절단 사고를 사무직이 처치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회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디스크가 터진 한국인 노예에게 플레처가 한 대처가 입증하듯. 생각은 욕심이요, 논리는 죄악이다. 그래서 나도 그냥 웃었다.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게 분명했기에. 그렇게 우리는 블랙 코미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무 문제없는 양 웃어넘겼다. 하하하하하하.


<술을 마셨지만 음주 운전이 아니니까 회사에서 다쳤어도 산업 재해가 아니다>

여기 호기롭게 워홀을 온 청년이 있다. 그의 목적이 비자인지 돈인지는 몰라도 그는 플레처를 택했다. 플레처처럼 캐주얼 시급으로 8시간씩 주 5일 일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았기에, 어느 쪽이 목적이건 플레처는 단기간에 극도의 효율을 보장했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플레처가 워홀러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노역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던 그는 극심한 허리통증을 느끼게 된다. 곧바로 공장과 연계된 병원에 간 그는 디스크가 터졌다는 진단을 받는다. 디스크라니,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그것만으로 청천벽력 같은데 의사의 소견서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작업 중 발생했다고 해서 업무가 원인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급의 궤변이 아닌가. 철저히 사측을 대변하는 소견서에서 의료인의 양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플레처의 책임 회피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두가 사측인 세상에서 혼자 노조인 기분을 아는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인맥도 없는 뜨내기 워홀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지역 유지인 플레처와 척을 지며 외노자를 대변할 이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외노자 능력으로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ㄱㅎ.jpg 두보 한인교회 사모님이 싸주신 짜장면과 짜장밥. 교회에서는 음식을 비롯해 이불, 드라이기 등 많은 것을 협찬해 주었다.

그의 종교관은 모르지만 그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혹은 콩고물을 목적으로 종교 시설에 가는 걸 혐오했다면, 아마 구원은 없었으리라. 세상 어디에도 한인 교회 하나쯤은 있다는 말을 증명하듯, 두보에도 한인 교회가 있었다. 워홀러가 많은 시기에는 신도가 수십 명이었다가, 그들이 우르르 떠나면 신도가 0명이 되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신도 수가 꽤 많았는데 그중에 한국인 gp도 있었다. 불과 몇 달 뒤인 내가 두보에 살던 시기에는 신도가 2명이었고, 모두 워홀러였다. 조금만 더 빨리, 혹은 늦게 다쳤더라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교회에 한국인 gp가 없었더라면... 그는 내돈내산 비행기를 타고 울분에 차 조기 귀국 했으리라. 뿐만 아니라 치료도 내돈내산, 후유증 관리도 내돈내산으로! 먼 훗날에도 분이 안 풀려 유언장에 '영감탱 가만 안 둬'라고 적었으리라.

ㅅㅂ.jpg 가만 둬선 안 될 영감탱들의 도시 "두보"

다행히도 그는 교회에 다녔고, 신도 중 한국인 gp가 있었으며, gp는 기꺼이 그를 도왔다. 모든 정황이 그에게 유리하게 맞아떨어진 끝에 그는 '진실의 소견서'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가 보상을 요구하자 플레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의 소견서 앞에 끝내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의 유급 휴가와 한국행 비행기 표를 얻어냈다. 그렇다 해도 건강과 망친 워홀을 보상할 수 없겠지만.

그 후로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플레처는 '산업 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로 환골탈태했다. 물론 일반적인 방식과는 동떨어진, 지극히 플레처스러운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아픈 직원이 있다면 단칼에 해고했다. 그렇게 콜드룸 소속 토니는 어깨 통증을 호소하자마자 해고됐다. 부품 갈아치우듯 없애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 모두 임금이 높은 대신 고용이 불안정한 캐주얼 노동자였으니까.


<평균의 함정은 때때로 진실을 가린다>

플레처에 있어 나는 '발목 잡을 가능성이 농후한 부품'으로, 원래라면 초장에 싹을 뽑았을 것이다. 하지만 토니 때와 달리 사고부터 발생해서 섣불리 자를 수도 없었다. 이미 사고가 난 이상 한국인 노동자 때처럼 뻣뻣하게 굴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들이 적절한 대처를 했느냐? 그렇다고 생각했다면, 옥장판이나 음이온 팔찌를 사지 않게 주의하기를 바란다. 디스크에 비하면 손가락은 별 거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병원 대신 노역장으로 보내졌다!

ㅈㅎㅇ.jpg

하베스트 2층 계단을 올라갈 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구리다 못해 파괴적인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올 때에도 '설마' 싶었다. 슈퍼바이저가 멀뚱멀뚱 선 내게 '다시 장갑 껴'라고 하고서야 알았다. 다시 일해야 한다는 것을! 돈가스 먹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치과에 온 어린이의 심정을 아는가? 원통하다 못해 치가 떨렸다. 내가 이곳을 너무 얕봤구나. 여기는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지. 치아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호주에서 손가락 정도로 유세를 부리다니! 완전히 잘린 것도 아니고, '동서남북 종이접기'처럼 활짝 벌어져서 방치 중인 정도로! 고작 감기 따위로 쪼르르 병원에 가는 나약한 한국인 같으니라고!

동서남북.jpg

"너 다쳤으니까 더 쉬운 일 줄게."

일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뒤따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공정의 시작점으로 갔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고, 상황이 경우가 없으면 순응하게 되는 법이다. 아마도 읽는 입장에서는 '당장 박차고 나왔어야지, 왜?' 의아할 수도 있다. 동의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는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을 때는 뭐라도 씐 양 불합리한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두보라는 세계관이 가해 온 지독한 가스라이팅에 철저히 지배당했기에.

목닦이 워셔를 할 때 종종 사람이 직접 양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원래는 기계의 몫이지만 기계가 실패하면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듯 가죽을 벗겼다. 단상에서 용을 쓰는 꼴을 볼 때면 오은영 박사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여기는 집게발도 병신이고, 발목 튕기미도 병신이고, 가죽 벗기미도 병신이고.. 병신 아닌 게 없네...

오은영.jpg 양공장에서 가장 많이 지은 표정 1위

슈퍼바이저가 '쉬운 일'이랍시고 투입시킨 곳은 '만물병신설'을 신봉하게 하는 공정의 바로 뒷 공정이었다. 나는 사체에 붙은 잔털을 바람을 쏴서 제거하는 역할이었다. 바람이 나오는 총은 꼭 바주카포처럼 생겼는데 무식한 생김새만큼이나 무게가 상당했다. 총이 천장에 달려있긴 했지만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야 했다. 무게쯤이야 사무직 출신이 감당할 몫이라 쳐도, 작동부터가 난관이었다. 바람을 쏘려면 총을 쥐어야 하는데, 봉합하는 대신 두껍게 감은 붕대 때문에 손가락을 쓸 수가 없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편 채로 나머지 손가락만 구부리려면 과도하게 힘이 들어갔기 때문에. Jonna 하나도 안 쉽잖아, si발놈아... 마음 같아서는 바람총으로 슈퍼바이저를 쏘고 싶었다. 내 처지가 레일에 걸려서 이동하는 양 사체와 다름이 무엇인가.

민수총.jpg

호주가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호주가 내게 알려준 노동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네 시급이 지급되고 있으니, 손가락이 썰렸어도 일해.'였다. 한국이 아무리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직장에서는 손가락이 썰리면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어디서 말하기도 수치스러운 주먹구구 좇소 가족회사였음에도 말이다. 객관적인 지표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내가 겪은 호주의 노동권은 최악이었다.

노동권.jpg

'평균의 함정'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학부 중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학과는 '문화지리학과'로 조사됐다. 문화지리학과의 평균 초봉이 '10만 달러'인 이유는 마이클 조던이 지리학과 출신이기 때문이다. 통계는 과학이고 평균은 참고할 가치가 있지만, 예외는 분명히 존재한다.

호주가 제아무리 높은 임금과 노동권을 보장한다 해도, 플레처는 아니었다. 시간이 다 돼도 일이 다 끝나기 전까지는 무임금 노동을 해야 했고, 제대로 된 휴게 및 식사 공간이 없는 데다, 산업재해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며, 작업 중 통증을 호소했다는 이유로 쉽게 해고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인 구멍가게가 아니라 전국에 지점을 두 개나 갖고 있는 대기업에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통계가 어디를 가리킨다 한들, 이곳은 지옥이었다. 손이 썰려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지옥.


<남의 티끌 모아 태산 된다>

거의 모든 부서에서 많은 일들을 접했지만, 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워셔만큼이나 '바람총 공정'의 존재 이유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근육층은 알로에 단면같이 미끈대서 바람을 쏴도 털이 떨어지지도 않는데. 쏴도 쏴도 안 돼서 결국 손을 쓰게 만들었다. 어차피 워셔 공정을 여러 번 거치면 털은 물에 씻겨 나갈 텐데, 대체 왜? 사람은 목적 없는 행위를 할 때 존재의 의문을 갖게 된다고 한다. 플레처는 어쩌면 양공장의 탈을 뒤집어쓴 일종의 자살장려기관이 아닐까?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내게 보건소에 가라고 했다. 미련 없이 바람총을 내려놓았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아릿아릿했다. 총을 쥐기 위해 곱절로 힘을 줘야 했던 손가락들을 폈다.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드는구나...

플레처의 파멸을 기원하다 보니 금세 보건소에 도착했다. 백인 야매 직원은 퇴근했는지 없고, 중국인 직원이 나를 맞았다. 그는 사건의 경위와 내 상태를 간단하게 확인했다. 그러고는 병원을 예약했으니 지금 출발하라고 했다. 참 빠르기도 하지.

"그런데 너 차는 있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차가 있었으면 진작에 도망갔지. 그리고 손가락 다친 사람한테 직접 운전하라고? 감기 걸려서 조퇴하는 거 아니고, 양 발목 절단하는 칼에 손이 썰렸는데! 지금 내가 기원전(B.C.)을 살고 있나? 강한 자만 살아남는 스파르타 제국은 이미 멸망하지 않았던가? 숨길 수 없는 혐오와 환멸을 '노(no)'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럼 택시 예약해 줄게. 택시 타고 가. 옷 갈아입고 오렴."

그래도 호주 전역에 지점을 두 개나 갖고 있는 육가공계 대기업인데... 그깟 택시비가 그리도 아깝더냐. 부상자가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게 플레처의 매뉴얼인지, 아니면 직원 개인의 의견인지는 몰라도, 이쯤 되면 그는 '플레처의 충직한 개' 일 뿐이었다.

흙바람이 부는 황량한 광야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언제 봐도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두보에서는 어디를 가도 '가짜 세상' 같았다. 읍내는 꼭 '2000년도 초반 한국'같았고, 크리피 영감이 살던 재클린 드라이브는 영화 '비바리움'같았다. 걷고 또 걸을 때면 똑같은 풍경만 펼쳐져서 벗어날 수 없는 차원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청산되지 않는 업보를 이고 반복되는 굴레를 사는 형벌을 받은 게 아닐까? 너무도 어리석어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진 채로. 그 착각이 괴로움의 근원인 줄도 모르고.

KakaoTalk_20250802_001159453.jpg
KakaoTalk_20250802_001133922.jpg
KakaoTalk_20250802_001240542.jpg

택시가 도착했다. 광야를 지나 양들이 풀을 뜯는 들판을 넘어 읍내로 진입했다. 미터기가 실시간으로 치솟는데도 마음이 초연했다. 어차피 플레처 돈이니까. 그간 운명이 나를 이곳에서 몰아내기 위해 시련을 줄 때마다, 마음의 평화가 간절했다. 우습게도 손가락이 썰리고 난 지금은 더없이 초연했다. 끝났음을 직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14화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