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7
<탈출까지 D-33:내가 고자라니 3/호주 의료 체험기>
<시스템이 없는 게 시스템인 남반구 거지섬의 의료>
차라리 택시에서 내리지 말 걸 그랬다. 영어로 진료를 받으려니 덜컥 겁이 났다. 손가락이 썰린 것보다 영어 쓰는 게 더 걱정이라니.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서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까짓 영어가 뭐라고, 모국어도 아닌데 못 할 수도 있지. 번역기도 있고 하다못해 손짓 발짓 해도 되는데. 하지만 영어 때문에 잔뜩 주눅 들어있던 나는 '못 할 수도 있다'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호주에 온 뒤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무의식에 늘 깔려있었다. 영어를 쓰지 않는 상황에서도 영어를 못 한다는 사실이 괴로움을 유발했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문법은 엉망에 어눌한 발음까지. 내가 말 잘하고 똑 부러진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영어를 쓸 때마다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원래 나와 영어 쓰는 나 사이의 괴리가 나를 괴롭혔다. 시골에 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실제로 휘몰아치는 각종 사건 사고 덕분에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소진되었다.
때때로 나는 권리를 주장하거나 항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당히 물러서곤 했다. 그 끝은 항상 자기혐오였다. 직면하던 회피하던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라면 마주쳐야만 했다.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더 한심하게 느껴질 테니까. 도망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고, 나는 그 알량한 용기마저 없어 떠밀리듯 여기까지 온 겁쟁이였기에.
심호흡을 하고 발걸음을 뗐다. 중국인 직원이 준 쪽지를 부적처럼 꼭 쥐고는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수속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다. 남은 건 긴 기다림이었다. 대기실은 평화스러웠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진료실에서는 누구도 호명하지 않았다. 안에 의료진이 있기는 한 건가?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여기 앉아있는 중인 거지? 내가 그들과 똑같은 죽상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이름이 호명된 건 장장 한 시간 후였다. 이럴 거면 예약을 왜 받는 거지? 하지만 생각할수록 지능이 낮아지는 것 같아서 사고하기를 포기했다. 이렇게 조금씩 지능이 낮아지다 보면 두보인 평균치에 맞춰지겠지. 그럼 이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도 작별할 수 있으리라.
무뚝뚝한 백인 간호사가 나를 맞이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간이침대에 누웠다. 벽에 처치 도구들이 즐비해있었다. 내 손은 어떤 상태일까? 양 사체 써는 칼에 찍혔으니 봉합하겠지? 설마 여기서 하는 건 아니겠지? 이것도 나름 수술인데... 순간 진료실 풍경 위로 침대에서 절규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고자라니!'
그의 슬픔과 좌절을 밈으로만 소비했던 과거의 나는 어찌나 잔인하고 비열한가. 이런 깨달음을 역지사지를 통해 얻고 싶지는 않았는데...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쓸모없는 생각이 튀어 오르고, 새로운 걱정에 의해 파묻히기를 반복했다.
의사가 들어왔다. 적당히 사무적이고 경쾌한 인사와 함께. 순간적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나와 너무도 달랐다. 내게는 더없이 비참하고 지옥 같은 두보가 그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누구나 저마다의 세상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각자가 가진 세상이 이토록 상이할 수 있음이 새삼스러웠다. 언제나 인생은 내게 감당하기 벅찼지만, 유독 두보에서는 더 쓸쓸하고 이상한 여운에 잠기곤 했다.
유독 영국에 유명한 철학자들이 많은 건 날씨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맨날 비가 오니 할 거라곤 방구석에서 생각하기 밖에 없어서 철학이 꽃피운 거라고. 두보라는 감옥에 갇힌 후로 내 방구석 개똥철학가 짓이 더 강해진 걸 보면 일리가 있었다.
"어디를 다친 거야?"
말문이 턱 막혀서 냅다 손부터 들어 보였다. 이제 붕대 안은 어떤 상태인지, 왜 그렇게 된 건지를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0과 1만 존재하듯이, 내 두뇌에도 3 형식까지만 존재했기에, 그 이상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잇 워즈 액시던트' 이후로는 '단어'만 나열할 수밖에 없었다. 원시인도 아니고, 우가우가가 따로 없네. 아니, 원시인은 원시시대에 태어나기라도 했지, 나는 고등교육까지 받았는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혼자서 소통할 수 없음이 너무 답답했다.
의사가 무언가 질문을 했고, 비참하게도 언제나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내 휴대폰을 가져가 타자를 치고 돌려주었다.
'최근에 파상풍 주사를 맞은 적이 있나요?'
파상풍 주사는 10년간 유효한데, 공교롭게도 1년 전에 주사를 맞았기에 봉합만 진행하기로 했다. 의사가 상처를 살펴보더니 3 바늘을 꿰매겠다고 했다. 처치하는 동안 어정쩡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얼마지 않아 손에는 다시 붕대가 감겨 있었다. 사무직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정교한 모양새였다.
"다 나을 때까지 손가락 구부리면 안 되고, 물에 닿아서도 안 돼. 매일 붕대 갈아주고. 그리고, 이 핀셋 필요하니?"
그는 의료용 핀셋을 내밀었다. 치료 과정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핀셋의 등장에 어리둥절했다.
"아.. 니?"
"그래도 가져가."
그는 내게 억지로 핀셋을 안겨주었다. 이걸 어따 쓰라고. 쓸모없는 물건만 하나 얻은 채로 진료실을 나왔다. (우습게도 정확히 6개월 뒤, 손에 플라스틱 조각이 깊게 박혀서 이 핀셋으로 뽑아냈다)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이 있는 읍내로 향했다.
<두보인의 평균 수명:하루>
약을 타고나니 돌아가야 함이 실감 났다. 조금만 더 천천히 걸을걸, 화장실도 가고, 세월아 네월아 농땡이 부릴걸...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데 돌아가는 게 맞는 걸까? 나를 둘러싼 모든 정황이 떠나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하지만 내게 포기할 용기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세컨을 따지 못하면 여태까지 들인 돈과 시간은 헛수고가 되는데... 심지어 손가락까지 다친 지금, 포기하면 스스로가 '패잔병'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이 와중에 탁 트인 시야 너머 펼쳐진 하늘은 선명하고 푸르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상황과 대비될 만큼.
택시를 부른 지 꽤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택시는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있다. 타들어가는 발등을 보는데 초조하지만 너무 따뜻해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택시기사였다.
"어디야?"
"나 읍낸데?"
"나돈데?"
좁은 두보 읍내에서 엇갈리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는 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를 붙들고 앞 쪽으로 걸어가면서 서로 '너 어디니?' '너는 어니니?' '너 안 보이는데?' '나도 네가 안 보이는데.'를 반복했다. 그때 한 차가 멈춰 서더니 경적을 울렸다.
"나 방금 너 찾은 거 같아."
나는 성큼성큼 경적을 울린 차로 걸어가 뒷문을 열었다. 빽빽이 들어찬 각종 잡동사니가 나를 맞이했다. 자연스레 시선이 앞 좌석으로 향했다.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택시가 아니구나. 그런데 낯선 사람이 벌컥 문을 열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다니. 역시 두보인 답게 범상치 않구나.
"어.. 미안."
사과를 했지만 받아주는 이는 없었다. 신호가 바뀌었고, 내가 문을 채 닫기도 전에 차가 출발했다. 문짝이 바람에 나부끼는 휴지처럼 덜컹댔다. 두보는 여러 의미로 일반적이지 않은 곳이구나. 내일 없이 오늘만 사는 운전자들의 나라, 페루가 연상됐다.
여행자들의 꿈이라 불리는 남미. 자연 앞에서 동태눈이 되는 나는 남미에 어떤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무려 2주나 여행을 간 건, 특가 표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미쳤어요'를 붙여놓은 가게 중 사장이 진짜 미친 경우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특가는 사장님이 미쳤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무려 남미 왕복표가 30만 원이었으니까. 특가표를 공유한 사람도, 구매한 사람들도 오류 거나 담당자 실수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둘 다 아니었다. 덕분에 동남아보다 싼 가격으로 남미에 갈 수 있었다.
목적지는 페루와 볼리비아로, 볼리비아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볼리비아 대사관에 들렀다. 무사히 비자를 받고 잠시 길가에 서 있었다. 도로에는 차 두어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차 한 대가 신호 대기 중이던 앞 차를 들이받았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작위적일 만큼 커다란 충돌음이 났다. 그런데 들이받은 뒤차도, 받힌 앞 차도 내리지 않았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었고, 각자 갈 길을 갔다. 나만 놀란 거야? 이 상황이 다들 아무렇지 않은 거야? 주위를 두리번댔지만 누구도 방금 일어난 사고를 신경 쓰지 않았다.
택시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기사는 목적지와 내 표정에서 사명감이라도 든 건지 분노의 질주를 시작했다. 그 유명한 부산 택시는 스쿨존 운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부산 택시를 겪어본 이라면 그게 가능한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가능하다. 적어도 부산 택시는 역주행은 하지 않으니까. 남미는 역주행을 자유자재로 했다. 반대편에 차 안 와? 그럼 역주행해! 공항 못 가? 그럼 다 같이 죽어! 그날 나는 목숨을 건 진정한 '운전 예술'의 경지를 보았다. 내게 페루는 목숨이 두 개인 것처럼 사는 화끈한 나라였다. 모르는 사람이 차 문을 냅다 열어도 개의치 않는 두보인들 덕에 잠시 페루를 추억할 수 있었다.
<I'M YOUR SIM>
보건실에 카드와 영수증을 제출하고 나오니 곳곳이 노예들로 북적였다. 벌써 점심시간이구나. 입맛은 없지만 관성적으로 도시락을 폈다. 부실함이 미국 급식 못지않아서 가뜩이나 바닥인 기분이 시궁창에 처박았다. 뒤집개랑 칼만 제공해 준 인도 집구석 때문에 이런 거나 처먹고... 어제 맥도날드라도 다녀올걸.
미국에서 저소득층 음식인 맥도날드지만 내게는 건강식이었다. 호주 맥도날드가 한국 맥도날드와 비교하기 미안할 만큼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탄단지는 갖추고 있으니까. 살면서 먹을 햄버거는 두보에서 다 먹은 것 같다. 맥도날드, kfc, 헝그리잭...
패스트푸드의 유해성을 입증하려고 직접 생체실험을 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다큐에서 남자는 더는 못 먹겠다며 햄버거를 게워낸다. 그 남자는 다큐로 유명세와 돈이라도 얻었지, 나는 돈 한 푼 안 받고 무의미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
자린고비 식사법처럼 맥도날드를 생각하며 비참한 새참을 먹는데, 곱창방과 똥방 동기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아까 쉬는 시간에 왜 안 보였어?"
노역메이트의 질문에 대답 대신 구부려지지 않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날 이 꼴로 만든 플레처, 비자를 볼모로 외노자의 마지막 골수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는 호주 놈들을 향해.
내 다음 행보를 예측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밥은 다 먹었고, 노예들은 하나 둘 노역장으로 복귀하는데, 망가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을 향해 엿 날리기 뿐인 데다, 설상가상 누구도 내게 퇴근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때. 모든 정황이 나를 하베스트 2층으로 몰아넣었다.
마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았다. 플레이어가 활동을 모두 '노동'으로만 채워 넣어서 영원히 노역하는 캐릭터말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 바람총 때문에 손목이 시큰대서일까? 아니면 구부려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총을 쥐기 힘들어서일까?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허상이며 연결되는 사건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망할 놈들, 네놈들 입방정 때문에 내가 시간에 갇힌 거잖아! 성치도 않은 몸으로 이 짓을 대체 왜 하고 있지? 점진적으로 끓어오르던 분노가 고점을 찍었다. 비록 사고였지만 원인은 노후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이었다. 기계만 정상이었어도 다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제대로 된 대처는커녕 돈 주는 만큼 어떻게든 뽑아먹으려고 한다고? 몇 푼이나 한다고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 대기업에서 이래? 추잡스러운 것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상반되는 두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버티느냐, 멈추느냐.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시작했기 때문이고, 버티기 힘든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이제는 두려웠다. 더 버텼다가 무엇을 잃을지 몰랐기에.
애초에 내가 세컨이 필요하기는 한가? 일단 두보에 가면, 지내다 보면... 정답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행복하지 않은 곳에서 1년 더 지내려고 꾸역꾸역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본전 생각이 났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세컨도 결국 '미래'를 위한 건데, 여기에 더 있다가는 미래가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매 분 매 초가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니까.
노역이 끝났다. 결단에 찬 걸음으로 똥방으로 향했다.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게 없어 피해 다녔던 현장관리자 얼이 바로 보였다. 다친 손을 들고 외쳤다.
"나 관둘 거야!!!"
"마침내!"
신났네, 이 새끼. 가식으로라도 걱정하는 척이라도 할 법 한데. 매번 손 느리다고 눈치 주고 다른 부서로 못 보내 안달이더니. 굳이 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필요한 인력보다 많이 채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 못 한 인사과 탓이지 내 탓이냐?
"나도 네가 하루빨리 나가줬으면 좋겠지만, 퇴사는 슈퍼바이저가 담당이라서. 얼른 슈퍼바이저한테 가봐!"
"그래야겠다! 다음엔 뭐가 잘릴지 무서워서 한 시라도 빨리 튀고 싶거든!"
떠나기 전에 다시금 다친 손 들어 보이기 퍼포먼스를 시연했다. 가운데 손가락이 다쳐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구나. 의도하지 않은 척 엿을 먹일 수 있다는 것.
한 사건이 일어난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내 손가락이 썰린 데에는 곱창방에 세 명 있는 꼴을 못 보는 슈퍼 바이저도 한 축을 담당했다. 내게 엿을 준 그놈에게 얼른 아방한 척 엿을 먹여야지! 영화 속 빌런에라도 빙의한 양 비장하게 보건실에 발을 들였다. 마침 영감 슈퍼바이저가 있었다. 꼬장꼬장해 보이던 그와 이렇게 안면을 틀 줄은 몰랐는데. 나는 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 관둘 거야!!!!!"
정말이지 한시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내 맘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없는 뻑킹 두보가 아닌가. 영감 슈퍼바이저가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너 안 관둬도 돼!"
뭐라고? 얼처럼 웃으며 '얼른 빠져라' 할 줄 알았는데 붙잡는다고? 이게 아닌데... 나는 재차 뻑큐를 날렸다.
"나 손 다쳐서 일 못해!"
"쉬운 일로 바꿔줄 수 있어."
"아니, 아까 바꿔준 일도 힘들어서 못하겠어서 관두기로 한 거야!"
"더 쉬운 일 줄게. 그럼 안 관둬도 되지?"
"어.. 그.. 렇긴 한데.."
"됐네, 그럼. 내일 출근하면 여기로 와. 새 부서로 안내해 줄게."
"... 어...."
억지로 조성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순식간에 대화가 종결됐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걸까? 단단히 각오하고 와서 더 허탈했다. 하루에 딱 두 대 있는 시드니행 기차까지 이미 다 알아봤는데... 패기 넘치게 들어섰던 방을 이렇게 망연하게 나오게 될 줄이야. 노역복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자물쇠를 풀 기력도 없었다.
"어떻게 됐어?"
어느덧 옆에 온 노역 메이트가 물었다. 나는 망연히 고개를 저었다.
"얼은 신나서 '재쵸 관둔대!' 동네방네 떠들던데."
신난 거 맞았네, 망할 놈... 어쩌냐, 나는 계속 다니기로 했는데. 쌤통이다. 탈출이 좌절된 와중에도 얼에게 두고두고 엿을 먹일 수 있다는 것 하나는 좋았다. 그저 여기에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니, 참 쉽기도 하지. 반쯤 미치고 속이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외도한 남편과 이혼만큼은 안 해주는 아내가 된 것 같았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해 줘?라는 미련한 단골 멘트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뭐, 이미 다니기로 했고, 남은 한 달간 이곳에서 불행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러니 다 같이 죽어보자!
욕 할 기운도 없는데 입사날 강매당한 자물쇠를 좌로, 우로, 좌로 돌리고 있자니 나지막이 욕이 나왔다. x발... 가슴이 답답하고 혈류가 멈춘 것 같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일도 새벽에 출근해 자물쇠를 열려고 씨름하겠지... 어느 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 모두 플레처 때문이리라.
순전히 재미로 개미를 밟아 죽이는 어린이는 성악설을 입증한다. 세상에 법적 처벌이 없었다면 인간은 누구보다도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규율들 때문에 사람들은 억눌린 악마적 욕망을 '잔인해져도 괜찮은 곳'에서 드러낸다. 가령 심즈 같은 게임을 할 때. 심(캐릭터)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연인에게 외도 장면을 일부러 보여줌으로써.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인 심들은 '진짜 고통'을 느끼지만, 유저에게는 가짜 세상에 불과하기에 아무 가책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도 인간을 유희거리로 소모한 걸지도 모른다. 그들이 소시오패스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 인간이 심이나 개미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전히 도파민만을 위해 내가 상처 주고 휘둘렀던 심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의 '심'이 아닐까? 세상은 나를 사지로 몰아넣고, 운명에 저항하는 나를 가지고 놀면서, 천천히 순응을 가르쳐 결국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임이 지속되려면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