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25
<탈출까지 D-33:내가 고자라니 1>
<어쩌면 지루함은 저주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날은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눈 뜸과 동시에 기분이 잡쳤고, 출근길부터 탈출까지 남은 시간을 세며 지긋지긋해했다. 55일은 이미 흘러갔고, 고작 33일 남았는데 왜 아직도 시간에 짓눌리는 것 같을까. 어쩌면 하루를 시작하는 일터에서의 첫 루틴인 사물함 열기부터 난관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입사날 강매당한 10불짜리 자물쇠를 여는 건 여전히 익숙지 않았다. 왼쪽으로 3번, 오른쪽으로 2번, 다시 왼쪽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려야만 열린다니. 중간에 멈칫하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플레처도, 두보도, 자물쇠도 도저히 못 견디겠는 것 투성이었다 강박증의 대가 칸트처럼 매일 내 사고의 흐름은 한치도 어긋난 적 없으니 아마 내일도, 모레도, 떠나는 순간까지 그럴 것이다.
단 1분 1초라도 노역장 행을 미루고 싶어서 다슬기처럼 온풍기에 달라붙어 시간을 확인했다. 더는 미룰 수 없을 때 도살장 끌려가듯 걸음을 뗐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창문 없는 컨테이너에서 해가 뜨는지도 모른 채 일 하다 보면 현장관리자 얼에 의해 2층으로 차출되리라. 곱창방에 세 명이 있는 꼴은 절대 용납될 수 없으니까. 비록 12분에 한 번씩 위가 쏟아져서 둘이서는 숨 돌릴 틈도 없지만, 2층에는 추가 인력이 필요 없을 때가 태반이지만, 그 따위 게 대수인가? 곱창방에 셋이 있지만 않으면 되는데!
끌려가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기는 했지만 사실 1층이나 2층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열악한데 어디로 가면 뭐 어떤가. 어차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평균적인 지옥인 것을.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에 갇힌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누군가 내게 시간에 갇히는 저주를 내린 건 아닐까.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스노우볼 속 인형 같다고 생각했었다. 외부에서는 손쉽게 스노우볼에 눈보라를 치게 할 수 있지만, 스노우볼은 외부 세계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스스로의 세상을 흔들 수는 없지만, 타의에 의해 온 세상이 흔들려도 감수해야 했다. 바깥을 볼 수는 있어도 절대 벗어날 수는 없고, 작용을 받기만 할 뿐, 할 수는 없는 수동적 객체에 불과한 삶. 시간이란 감옥에서 버둥대는 나는 어쩌면 스노우볼 속 인형보다 더 비참한지도 몰랐다. 필연적으로 자아의 존재는 좌절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니까. 그리고 첫 번째 쉬는 시간을 맞이하기 전에 나는 나를 가둔 시공을 찢고 스스로를 저주의 굴레에서 끄집어내게 된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세의 동의어는 오페라하우스 갈매기떼>
최소의 최소 인원으로 돌아가는 1층과 달리 2층은 잉여 공정이 넘쳐났다. 하지만 공정보다 인력이 더 많은 관계로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 관리자가 어느 공정에 들어가라고 지정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멀뚱멀뚱 있을 수는 없으니 알아서 일거리를 찾아야 했는데, 대부분의 공정은 칼이 필요했기에 갈 수 있는 곳은 워셔뿐이었다. 설사 누군가 벌써 일을 하고 있을 지라도.
계단을 올라 목닦이 워셔 옆에 섰다. 설명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비켜'말고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다. 그가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내려갈 때까지. 2층 소속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자리를 강탈하려는 나 자신이 광인 같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통은 알아서 비키는데, 그러지 않으면 그냥 계속 버티고 있으면 된다. 인생에서 대부분의 순간들이 기세로 밀고 나갔을 때 얼추 해결이 됐으니까.
딱 한 번, 왜 왔냐고 따지듯 묻던 노예가 있었다. 정말이지 말문이 턱 막혔다. 영어도 영어지만, 내 행동이 깡패스럽다는 걸 모를 만큼 완전히 두보화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두보화가 되었다 한들 어떻게 '나 이거 할 거니까 비켜'라고 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상식적인 대응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 내려가지는 않았으니까. 우리는 영역싸움을 하는 비둘기처럼 대치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세를 뽐내는 장면을 슈퍼바이저가 발견했고, 내가 배닦이 워셔로 쫓겨남으로써 승리는 기존 노예에게 돌아갔다.
<러다이트 운동에서 살아남은 유산들>
배닦이 워셔, 내가 남바완이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은 곳이자 워셔 3종(목닦이, 배닦이, 발닦이) 중 유일하게 날로 먹기 불가능한 곳. (워홀기 27화 참조) 목 닦이 구역에 넘어올 때까지만 해도 양의 앞발만 레일에 걸려있지만, 그 공정을 지나면서 맞은편 노예에 의해 뒷발까지 고리에 걸린다. 그러면 양의 하체가 레일을 따라 올라가는데, 때맞춰 앞발을 자르는 집게발이 튀어나온다. 물론 집게발이 제때 나올 확률은 로또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발목이 아닌 허공을 열심히 써는 집게발을 보면 쟤가 병신인지 저걸 보고 있는 내가 병신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앞발을 자르면 양의 위아래가 뒤집히는데, 이때 양 사체가 철퇴처럼 휘둘리며 장기가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요령껏 사체를 피한 뒤 붙잡아 고정시키고, 앞 뒤가 바뀌었으면 정방향으로 돌려준다. 마지막으로 배를 닦아야 하는데, 장기가 나온 사체는 물이 닿으면 안 돼서 천장 호스를 꺼야 했다. 그렇게 닦아야 할 양과 지나쳐야 할 양에 따라 호스를 껐다 켜가며 작업을 해준다.
다음 단계로 발목 튕기미가 기계에 낀 앞발을 튕긴다. 물론 높은 확률로 허공을 튕겼기에 이 또한 배닦이 워셔의 몫이었다. 제때 빼내지 못한 발목이 레일 끝에 있는 저지선에 닿으면 모든 공정이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목 튕기미가 멍청한 게 집게발이 멍청한 것보다 나았다. 발목을 빼려면 상체를 깊게 숙여야 하긴 했지만 그렇게 큰 힘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집게발이 일을 안 할 때는 사체를 어깨에 들쳐 매고 발목을 각각 반대 방향으로 힘줘서 빼야 했다. 실패하면 레일을 타고 갈수록 발목이 더 단단하게 끼게 된다. 윗레일에 고정된 뒷다리와 아래쪽 레일에 걸려 옆으로 쭉 딸려가는 앞다리... 그 형상은 흔히들 능지처참으로 알고 있는 고대 중국 형벌 '거열형'을 연상시켰다.
집게발이 반항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허공을 썰었기에 뒤따라오는 사체들도 줄줄이 거열형에 처해졌다. 레일은 양의 사지를 찢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최초로 희생된 양에 다음 양이, 또 그다음 양이 겹겹이 꼬이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럼 어디선가 우르르 노예들이 몰려와 발목을 손수 잘랐다. 그 꼴을 볼 때면 스크류바 광고 노래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미친 건지 궁금했다.
인간은 기계를 따라잡을 수 없다지만, 플레처에 있는 것들은 기계로 분류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19세기 영국에 플레처 기계가 있었다면 러다이트운동(기계 파괴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그 시절에도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게 무려 21세기에 작업 현장에 존재하다니. 아무리 플레처에 인간의 존엄이란 없다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19세기 영국의 노동자만도 못한 처지였다. 발명품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건데 집게발은 절단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발목 튕기미는 허공만 튕기고, 그로 인한 거열형은 인간이 달려들어 수습해야 하고... 다른 의미로 플레처에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제 아무리 운명에 저항한대도 세상은 끝끝내 굴복을 가르친다>
정리하자면 배닦이 구역으로 넘어오면서 철퇴처럼 휘둘리는 양을 피하고, 쏟아지는 물길에 들어가 배를 닦고, 장기가 튀어나온 사체는 젖지 않게 호스를 끄고, 앞뒤를 뒤집고, 기계들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기계 몫까지 해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공정이 멈추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알면서도 공정이 멈출 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기계 몫까지 해내지 못한 내가 아니라 시설에 투자하지 않은 기업의 잘못인데 자꾸만 스스로를 자책했다. 적당히 하자고 다짐했으면서 발목 튕기미가 일을 안 한만큼 더 움직이고, 발목 써는 기계가 노는 만큼 더 열심히 했다. 남바완 소리를 또 들을까 걱정하며...
그날도 멍청한 기계 때문에 양을 둘러메고 발목을 빼야 했다. 하지만 껴도 아주 단단히 껴서 뺄 수가 없었다. 무게가 상당한 데다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레일을 따라 움직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인해전술처럼 뒤따라오는 양들도 죄다 발목이 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어깨에 인 양을 내려놓고 다음 양을 둘러멨다. 하지만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는 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가올 거열형을 기다렸다. 레일은 앞발과 뒷발을 팽팽하게 당겨댔고, 발목이 잘리지 않았으니 저지선에 걸리는 게 없어 공정이 멈추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음을 주변 노예들이 인지한 건, 두 번째 사체가 반쯤 딸려 올라갔을 때였다. 한차례 노예들이 양의 다리를 자르려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시 레일이 돌았다.
기계의 모든 부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엉망으로 작동하다 보면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때가 온다. 그때 양들의 사지 찢기 쇼가 펼쳐진다. 마치 불꽃놀이의 클라이맥스처럼, 첫 거열형을 기점으로 연달아 폭죽이 터지듯 여러 개의 사체들이 잔혹하게 얽히고설켰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노예들이 달라붙어 발목 해체쇼를 했다. 다들 웃으며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기이했다. 그래도 한때는 생명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존중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미션처럼 치부되고 있었다. 물론 일하는 내내 죄책감을 가질 수야 없겠지. 고된 노동을 하다 보면 빨리 해치워야 할 과제쯤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운동회에서 박 터트리기를 하듯이 즐겁게 발목을 자르는 모습은 너무도 괴이했다.
얼추 상황이 정리되자 다들 제 자리로 돌아갔고, 중국인 노예 한 명만 남아 마무리를 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도 슬금슬금 제 위치로 돌아왔다. 마침 양의 앞과 뒤가 바뀌어 있었고, 이대로 보내면 뒷 공정에서 득달같이 항의할 게 뻔했다. 무의식적으로 빨리 양을 뒤집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손을 뻗었고, 중국인 노예가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칼날은 양의 발목을 썬 후 정확히 내 손가락을 찍었다.
칼을 쓰는 작업자들은 니트릴 장갑 안에 메탈 메시 장갑을 끼고 있지만, 곱창방 소속인 나는 아니었다. 뼈도 단칼에 자르는 도축용 칼에 보호장비도 없이 맞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아픈 줄도 모르고 멍하니 남의 손 보듯 봤다. 중국인 노예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종이에 베여도 그보다는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깊게 파여 피가 철철 나는 손가락은 이상하게 비현실적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어느새 다가온 슈퍼바이저가 말을 걸었지만, 마치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멍멍해서 그의 목소리만 음소거 처리한 듯했다. 여기는 너무도 평화로운데 나는 언제나 괴로워서, 그 간극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마음의 고요는 주변이 어수선한 지금 불쑥 찾아왔다. 아.. 드디어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