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부여하고 싶은 밤

by 재쵸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정신적 피로가 한계에 다다라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떠나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지만 내심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랐다. 만남이 싫은 건 아니었다. 7년이나 인연을 유지해온 사람들, 아주 가깝지는 않더라도 간간히 근황을 묻고 시간을 내는 관계도 쉽지 않음을 아니까.

버스에서 내려 전철로 환승했는데 급행을 타는 바람에 내려야할 곳을 훌쩍 지나쳤다. 돌아가는 방향에서 멍청하게도 또 급행을 탔다. 나는 처음 탔던 역으로 돌아와 다시 전철을 타야했다. 가기 싫다, 짜증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보니 부정적 감정이 사라졌다. 꽤나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 뒤면 너의 생일이기에 더 의미 있었다.

돌아가는 길, 우연히 발견한 달은 참 커다랬다. 짧은 감탄 후에 발걸음을 뗐지만 나는 그 순간을 꽤나 오래간 기억할 것 같았다. 그날따라 유달리 가깝던 달이 캄캄한 밤하늘과 대조되어서만은 아니다. 나는 항상 달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 경이로움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검열해왔기 때문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은 아무와도 나눌 수 없었다. 떨어지는 달에 깔려 죽고싶다는 벅찬 상상을 누구에게 드러낼 수 있을까. 물론 독특한 감성을 혼자 향유하는 건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성을 언어로 전달한다고 이해 받지 못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본질이 퇴색될 게 뻔하니까. 그런데 같이 달을 봤던 그 순간은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집중, 감탄, 약간의 들뜸. 어쩌면 나는 이해받기를 바라왔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비현실적인 사고와 환상에 대한 믿음을 나누고 싶을까봐 더 방어태세를 갖췄던 걸지도.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2년 주기로 한국에 들어오는 너이기에 아마 2024년쯤이 되지 않을까. 아쉽지만 산뜻한 이별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택시 뒷좌석에서 빠르게 쫓아오는 달을 봤다. 라디오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흘러나왔다. 내 옆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관계의 사람이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처럼 적절한 마무리를 원했다. 비록 관객이 엥? 이러고 끝난다고?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라고 느낄지라도. 나는 죽고싶을만큼 완벽한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에 매몰되어 상황을 회피했더라면 재수 없는 날에 불과했을 그 밤에 엔딩으로 영원을 부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