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쵸의 와장창창 미국 서부 불나방 여행 5일 차

이 거지 같은 디즈니에 버려지다니이이이이

by 재쵸

<미국 여행 5일 차:거지 같은 디즈니>



<수면:총 2시간, 오늘 할 일:디즈니랜드에서 폐장까지 놀기>

2시간 밖에 못 잔 채로 아침이 밝았다. 피곤에 쩔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스투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니버셜 갈 건데 같이 갈 생각 있는지 J4에게 물어보라고. 마침 J4가 잠에서 깼는지 2층 침대에서 부스럭댔다. J4는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유니버셜 가세요?"

".. 아니요.. 안 가요.."

"네?"

"네?"

저기요, 어젯밤에는 유니버셜 갈 생각 있다면서요... J4에게 일행 찾아주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계기로 그는 갠지스 모니카 원정대에 캐스팅되었다.

디즈니랜드까지는 동행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집 앞으로 데리러 온다기에 기다리고 있는데 약간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숙소로 들어가서 쉬기도, 밖에 있기도 애매해서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이드와 군필에게 다가갔다. 벌써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그들은 '스타트랙'을 꼭 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밤에는 춥고 물에 쫄딱 젖는 기구도 있으니 긴바지랑 따뜻한 외투도 챙기라고 했다.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여벌 옷을 보따리장수 가방에 쑤셔 넣었다.

KakaoTalk_20230712_072500414_03.gif

차에는 동행과 그의 친한 언니가 타고 있었다. 동행은 시차 적응 실패로 불면의 날을 보내다 어젯밤 술을 진탕 마셨고, 늦잠을 잤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를 다 못 했다면서 신호에 걸릴 때마다 허겁지겁 화장을 했다. 옆에서 언니는 운전대를 닦달을 했다. 오늘 일정 괜찮은 걸까? 한 명은 수면 부족, 한 명은 숙취,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폐장까지 버텨야 했다.


<두 시골쥐의 디즈니 입성기>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6.jpg

디즈니랜드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니 트램 승차장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 둘 다 무계획이어서 알아온 게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 트램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쭈뼛대며 줄에 합류했다.

"이건가..?"

"그런 거 같은데요?"

"일단 가봐요.."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5.jpg
KakaoTalk_20230712_072500414_02.gif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4.jpg

다행히 디즈니랜드로 가는 트램이 맞았다. 우리는 디즈니 랜드와 어드벤처 두 곳 모두 원하는 놀이기루를 바로 탈 수 있는 표를 구매했는데, 놀이기구가 더 많은 디즈니 어드벤처 먼저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플로 표를 등록하는 단계부터 막혀서 한참을 버벅댔다. 영어로 된 메뉴를 마구잡이로 눌러댄 끝에 간신히 등록할 수 있었다. 놀이기구 예약부터 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기념품 가게부터 들렀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1불짜리 기념주화를 뽑았다. 그리고 며칠 뒤 잃어버렸다.


<참돔을 끓여 먹는 멍청이처럼>

빨리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데 예약하는 법을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벤치에 앉아 아까처럼 마구잡이로 아무거나 눌러대다가 예약하는 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공부를 안 해온 우리, 뭘 먼저 타야 하는지, 뭐가 재밌는지 아는 게 없었다.

"뭐 하죠?"

"그러게요. 뭐 하죠?"

결국 우리는 '스파이더맨'을 예약했다. 유명한 거니까 재밌겠지 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다음 놀이기구도 이어서 예약하려 했지만 예약한 놀이기구를 탑승한 뒤에야 가능했다. 게다가 바로입장으로도 스파이더맨을 타려면 한 시간여를 기다려야 했다. 입장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우리는 스파이더맨 공연을 보러 갔다.

KakaoTalk_20230712_072500414_01.gif

일전에 '스파이더맨이 공중에서 튀어 오르는 데 어떻게 감탄을 안 해'라는 후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내게 히어로물은 돈 바른 벡터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를 했었나 보다. 언제쯤 스파이더맨이 나타날까?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내려오는 건 어떤 걸까? 그때 스파이더맨이 나타났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동태눈은 공연이 끝났을 때 잠깐 '뭐야, 이게 끝이라고?' 어리둥절해한 게 전부였다.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9.jpg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0.jpg

우리는 뭘 타야 하나 허둥대다가 줄이 짧은(인기가 없는) 근거리에 있는 것 위주로 골라 탔다. 줄 선 이들 대부분이 유아였는데, 서울랜드에 온 것 같았다. 재밌었단 얘기다.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3.jpg

점심으로 12불짜리 핫도그를 사 먹었다. 동행은 숙취가 심해서 굶겠다고 했다. 비주얼부터가 썩 먹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먹어보니 가관이었다. 아무리 놀이공원이라도 그렇지 너무 심하잖아! 너무 짜서 물을 들이켜도 목이 막혔고, 빵은 쓸데없이 두껍고 뻑뻑했다. 유니버셜 때처럼 김밥을 사 왔어야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2.jpg

다음으로 탄 건 관람차였다. 줄을 두 개로 나눠 서길래 지니패스(바로 입장)와 일반 줄인가? 싶었는데, 줄을 자유자재로 옮기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 차례가 왔다. 계속 유아용 혹은 앉아 있기용 놀이기구만 타다가 처음으로 타는 그럴싸한 기구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우리가 선 줄은 움직이지 않는 칸 전용이었다. 반대편 줄은 놀이기구처럼 뱅글뱅글 도는 칸 전용이었고. 어쩐지 주변에 커플밖에 없더라니... 수면부족과 숙취로 반쯤 정신이 나간 우리, 아직도 어색함을 부수지 못한 우리는 연인을 위한 관람차에 올랐다. 관람차는 아주 천처언히 돌았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무척 길게 느껴졌다. 플랭크를 하는 사람의 시간과 휴대폰을 하는 시간의 사람은 다르게 흐르듯이, 나는 그 칸 안에서 상대성이론이 무엇인가에 대해 체감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30712_072500414.gif

드디어 스파이더맨 놀이기구를 탈 차례가 왔다. 꽤나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공간에서 스파이더맨 배우가 연기하는 영상이 나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3d 안경을 쓰고 놀이기구에 탔다. 화면에 거미들이 나타나면 팔을 마구 흔들어 맞추면 그만큼 점수가 되는 방식이었다. 사실 놀이기구라기보다는 중노동에 가까웠고, 순풍 산부인과 오지명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팔이 너무 아팠고, 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문득 스파이더맨 공연이 멋졌다던 그 후기에서 '힘들기만 하고 재미없으니 절대 타지 말라'는 놀이기구에 관한 내용을 본 게 떠올랐다. 그게 이 기구였다는 것도.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11.jpg

다음으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예매했다. 바로 입장이 가능한 표를 비싼 돈 주고 사도 효율적으로 쓰지 않으니 일반 표와 다름이 없었다. 놀이공원 이용객 수가 많아질수록 바로 입장 대기시간도 같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아예 웃돈을 따로 지불해야 탈 수 있게 변경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바로입장은 몇 번 쓰지도 못했다.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꽤 있었지만, 바로예약 입장을 기다리면서 마구잡이로 탔던 유아용 놀이기구 대부분은 탔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숙취와 수면부족을 안고 디즈니 랜드로>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5.jpg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6.jpg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8.jpg
디즈니 성, 변두리 지역 쓰러져가는 모텔 느낌 물씬...

노을이 지기 전에 디즈니랜드로 넘어갔다. 어드벤처와 달리 동화 같은 분위기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디즈니 프린세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츄러스도 나눠 먹었다. 디즈니 곳곳에 사진기사가 우리를 찍어주기도 했다. 물론 플래시도 터트리고 거의 갈기다시피 셔터를 눌러서 결과물은 무자비했다.

디즈니 어드벤처에 있는 놀이기구도 몇 개 빼고는 그냥 그랬는데, 랜드는 더 심했다. 유아적이고 옛날 스타일의 기구들 뿐이이어서 타고나니 목에 담만 걸렸다. 가이드와 군필이 강추했던 스타트렉도 유료입장으로 바뀌어있어서 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물고 나니 달리 할 것도 없어서 다시 어드벤처로 넘어가기로 했다. 후기에서는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아니다 말이 모두 달라서 긴장했는데 직원은 흔쾌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알차게 활용했더라면 왔다 갔다 이동하는 게 오히려 시간낭비겠지만 우리는 활용을 전혀 못했기에 불가피했다. 하지만 디즈니 어드벤처에 있는 탈 만한 기구들 모두 대기가 2~3시간으로 늘어나 있었고, 가디언즈오브 갤럭시도 유료 탑승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매를 해봤자 입장할 때쯤에는 폐장 시간이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어드벤처에서 미키마우스를 만나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냥 걷기 운동만 한 셈이었다.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4.jpg

날씨가 쌀쌀해져서 여벌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꾸만 눈이 감기고 하품이 나왔다. 거의 반수면상태여서 자꾸만 헛소리가 나오고 말을 더듬었다. 거의 반 수면 상태로 동 자꾸만 헛소리를 하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동행도 상태가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앉을 수 있는 놀이기구라면 아무 거나 타고 멍 때렸다.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3.jpg 앉아있을 수 있는 기구..

휴대폰 배터리도 거의 떨어졌다. 샌디에이고에서부터 말썽이던 보조 배터리로 충전을 계속 시도했지만 아무래도 케이블이 문제인 것 같았다. 내내 케이블을 충전이 되는 각도에 고정한 끝에 5% 충전에 성공했다. 디즈니는 어플로 예약하고 길을 찾아야 했지만 그래도 동행이 있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동행이 인터넷이 안 된다고 했다. 인터넷이 되는 내 휴대폰은 방전 직전이요, 동행의 휴대폰은 2G로 회귀했음에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아침에 술 냄새나는 차에서 느꼈던 불길한 예감, 불행한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 거지 같은 디즈니에 버려지다니이이이이>

우리는 다시 디즈니랜드로 돌아갔다. 불꽃놀이까지 한 시간여만 버티면 됐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놀이기구를 탔다. 막 기구에서 내린 사람들이 젖어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낙하하는 순간 그때라도 도망을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저항할 새도 없이 온몸이 쫄딱 젖었다. 옷은 물론 머리카락, 신발, 팬티까지도. 기구에서 내렸을 때는 몸이 덜덜 떨렸고 오한이 들었다. 맨 앞자리에 탔던 동행의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얇은 민트색 천은 초록색이 돼있었다. 아침에 가이드와 군필이 '다 젖는 놀이기구가 있다'라고 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가? 어차피 그거 안 탈 건데? 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 하지만 멍청하게도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게 이거라니. 디즈니 프린세스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온 동행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폭죽 하나 때문에 표를 아주 비싸게 샀기에 떠날 수가 없었다. 이 거지 같은 디즈니를...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2.jpg
KakaoTalk_20230712_071433848_01.jpg
날 보는 놀란 표정이 이 사진을 완성한다..

핫초코 한 잔에 의지해 폭죽을 보러 갔다. 성 주변은 이미 사람으로 버글 댔다. 바로 앞에 키가 전봇대만 한 외국인들이 있어서 뵈는 게 없었다. 자꾸만 멍해져서 머리는 안 돌고, 말은 더듬고, 난리도 아니었다. 폭죽이고 나발이고 그까짓 게 뭐라고 이 고생을 하는가? 덜덜 떨면서 속으로 욕과 함께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라고만 주문처럼 외웠다.

마침내 불꽃놀이가 시작했다. 성에 레이저를 쏘는 건 아예 안 보였고, 불꽃도 앞사람 머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예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앞사람 머리에 가려진 부분 보려고 목을 거의 90도로 꺾고 봐야 했기에 목이 오지게 조지게 아팠다. 집에서 편하게 드러누워 티비로 봤으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거지 튜토리얼 언제 끝나요>

KakaoTalk_20230712_071433848.jpg

폭죽이 끝나고 드디어 거지 같은 디즈니를 나왔다. 주차장에 쪼그려 앉아 동행 언니를 기다리는데 춥고 발 시리고 배가 고팠다. 먹은 거라곤 민박 조식과 빵을 반절 이상 뜯어낸 핫도그, 아이스크림, 핫초코가 다였다. 디즈니랜드에 온 게 아니라 키자니아 노숙자 체험을 한 것 같았다.

동행 언니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깨어있으려고 해 봐도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다. 거의 락커 수준으로 꾸벅꾸벅 졸다가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밤이라 주소가 잘 보이지 않아 숙소를 조금 지나쳤을 때 차를 세웠다. 감사인사를 하는데 여러 감정이 스쳤다. 디즈니랜드에서의 기억이 미화될 날이 오긴 할까?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오늘 하루 둘 다 정말 고생 많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형견 두 마리가 앞에 있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개들은 잔뜩 흥분해서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정말 대단한 하루네.

숙소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신발을 말리기 위해 밖에 널어놨다. 내일까지 마르지 않는다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신으려고 가져온 섹도시발 털신발을 신어야 했다. 왠지 내일까지 마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젖어서 찝찝한 몸을 씻으려는데 찬물만 나왔다. 폭포 밑에서 득음하려는 사람처럼 냉수마찰을 하며 욕을 계속 내뱉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늘은 금요일, 빨래는 월, 화, 수만 가능한데 나는 월요일 아침에 베가스로 떠나야 했다. 똥물에 젖은 옷을 들고서. 기분이 추욱 가라앉았고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이전 05화재쵸의 와장창창 미국 서부 불나방 여행 4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