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할리우드에 묻고 온 작은 비밀
<미국 여행 7일 차:파머스마켓/팜파스 고깃집/멜로즈 플리마켓/멜로즈 거리/폴스미스 핑크월/레이크 할리우드 공원/할리우드싸인/등산/북창동순두부 1호점>
<야, 나와!>
라스베이거스용 섹도시발 털신을 신고는 츄리닝 차림으로 비척비척 내려가는데 때마침 방에서 나온 체대생과 스투시가 기겁을 했다. 좀비인 줄 알았다면서. 그들은 츄리닝과 털신발의 조합을 조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신발이 마르지 않았다. 실명시킬 기세로 따갑게 내리쬐던 캘리포니아 햇빛, 왜 이렇게 나약해진 거죠? 마리 사장님은 내 신발을 볕이 잘 드는 자리로 옮겨주었다. 무조건 마른다고 호언장담 하셨지만 나는 이미 캘리포니아 햇빛에 대한 신뢰를 잃은 뒤였다. 부디 내일 라스베이거스로 떠날 때까지는 말라 있기를.
일요일이라 원래는 조식이 제공되지 않지만 마리 사장님은 시리얼을 꺼내 주셨다. 그리고 아무런 계획이 없는 우리에게 갈만한 곳을 추천해 주셨다. 우리는 파머스 마켓에 있는 팜파스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고, 멜로즈 거리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을 보기로 했다.
집결까지 30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난제가 있었다. 싸들고 온 옷들을 한 번씩은 입어야 하는데 섹도시발 털신과의 조합에 살아남는 옷이 없었다. 마침 ENFP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입고 갈 옷이 없다기에 내 트렁크를 열어주었다. ENFP는 밝은 옷 위주로 착용했지만, 우리는 퍼스널 컬러 대척점에 있었기에 조용히 옷을 내려놓았다. 나는 흰 티에 청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섹도시발 털신과의 아찔한 조합은 보는 이의 시각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츄리닝에 신었을 때 못지않을 만큼. ENFP는 내게 본인의 컨버스 하이를 빌려주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굽 높은 운동화를 예쁘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그때만큼 '다시 보니 선녀네'란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 있을까 싶다. 이발한 개처럼 주눅 들어 있던 나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거실에 모자 쓴 스투시가 있길래 인사를 했는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급격하게 낯을 가리며 어색하게 물러섰다. 사람들은 언제 오나... 모자 쓴 사람과 둘이 거실에서 눈만 굴리고 있는데 캐리어를 든 새로운 사람이 왔다. 방금 미국에 입국했다는 그는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 거실에서 대기했다. 나는 그에게 혹시 오늘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민박 사람이 그러하듯 그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리고 그는 따라오라는 내 기습 제안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투시와 체대생이 내려왔고, 나는 새 일행 뉴비도 함께할 거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스투시는 우성이 형도 같이 갈 거라며 모자 쓴 사람을 가리켰다. 30분 사이에 세 명에서 다섯 명이 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캐스팅을 하고 다니는 우리였다.
우버를 기다리는 동안 플리 마켓 이후로 뭘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민박 사장님은 레이크 할리우드 공원에 가서 할리우드 싸인을 본 뒤에 싸인 뒤편으로 등산을 가라고 추천해주셨다. 거기서 보는 일몰이 그렇게나 멋지다면서. 내일 라스베이거스로 떠나야 했기에 할리우드 싸인을 볼 기회는 오늘뿐이었다. 하지만 등산 코스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누군가는 같이 갈 줄 알았기에...
<낮의 파머스마켓>
밤의 파머스 마켓이 낭만적이었다면 낮은 활기차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였다. 팜파스 고깃집이 열 때까지 시장을 구경했다. 살 생각도 없으면서 괜히 기웃거리며 사진만 찍었다는 이야기다.
팜파스 고깃집은 진열된 음식을 뷔페처럼 직접 담고, 고기를 고르면 즉석에서 썰어준 뒤 무게만큼 결제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나는 뷔페 위주로 담고, 나머지 접시는 고기 위주로 담기로 했다. 고기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리고 뷔페 음식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파머스 마켓을 둘러보았다. 기관사가 모는 트램부터 애플 스토어, 세포라, 의류 브랜드, 서점, 조그만 가판에서 파는 액세서리들까지 볼거리가 많았다.
다른 일정이 있는 체대생이 먼저 가고, 우리는 치즈 케이크 팩토리에 갔다. 고디바 치즈케이크와 일반 치즈케이크, 커피를 주문하고 테라스석에 앉았다. 무료 빵과 버터가 나왔다. 아웃백에서도 부시맨 브레드에 유달리 집착하던 나는 이곳의 인심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와인을 계속 마셨는데도 잠을 못 잤다는 뉴비는 밑반찬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스투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초연한 자세가 마치 뷔페에서 두 접시만 먹고 나오는 부자 같았다.
고디바 치즈케이크는 진하다 못해 찌이이인한 맛이었다. 셋 다 몇 입 먹지 않고 질렸다. 나는 원래 라떼만 마시지만 그날은 콜드 브루를 주문했는데, 맛이 없었다. 평소 콜드 브루를 즐겨 마신다는 뉴비도 커피에 만족하지 못했다. 스투시가 주문한 라떼는 거품이 족히 10cm는 돼 보였다. 그는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라며 질색을 했고, 나는 뜨거운 음료를 유리잔에 담아주는 미개함에 충격을 받았다.
존 맥래플린 콘서트를 위해 항공권 변경을 알아보려고 했다. 본인 인증을 하라기에 귀걸이 침으로 유심을 바꿔 시도했는데 자꾸만 페이지가 만료 됐다. 그간 느려터진 미국 인터넷에 시험에 들 때가 많았지만 이때만큼 열받았던 적이 없었다.
투어가 늦은 우성이 형은 먼저 자리를 떴고, 우리도 슬슬 멜로즈 거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포장 용기를 받아 무료 빵과 치즈를 넣었다. 스투시는 케이크를 싸가야지 이 빵을 대체 왜? 했고, 머쓱해진 나는 주섬주섬 치즈케이크도 담았다.
<캘리포니아 햇빛에 7일 만에 굴복하다>
멜로즈 거리에는 아기자기하고 힙한 가게가 많았다. 플리마켓을 하는 곳은 파머스 마켓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규모가 크고 품목도 다양해서 입장료 5불이 아깝지 않았다. 거울, 향초, 액세서리, 옷 같은 일반적인 제품들부터 로즈쿼츠를 예쁘게 깎아 만든 딜도(?), JUST DON'T 티셔츠, 자세히 보면 픽셀이 다 깨진 오늘의 집 감성 그림 등... 무엇도 내 구매욕을 일깨우지 못했지만 결국 선글라스 앞에 지갑을 열었다. '집에 선글라스 있는데 뭐 하러'라는 가성비 마인드로 버틴 게 무색하게 선글라스는 시야에 광명을 찾아주었다.
폴 스미스 핑크월까지 걷는데 바람 때문인지 날씨가 쌀쌀했다. 사진만 찍는 명소답게 허허벌판 속에서 다들 사진만 찍고 있었다. 우리도 그네들처럼 사진만 수십 장을 찍었다. 가짜 삶을 사는 SNS 중독자가 된 느낌이었지만 언제나 '미국 언제 또 올 줄 알고'가 모든 걸 합리화해 주었다.
장시간 비행과 숙취, 씻지 못한 찝찝함에 뉴비는 숙소 귀환을 택했고, 스투시도 쇼핑을 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할리우드 싸인을 보러 공원으로 가야 했기에 우리는 핑크월에서 작별했다.
<여러분과 나만의 비밀>
핑크월 근처에는 카페가 몇 개 있었다. 화장실 들렀다 갈까? 싶었지만 그냥 우버에 올랐다. 거기도 화장실 있을 텐데 뭐. 우버는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올랐고,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할리우드 싸인이 보이는 레이크 할리우드 파크에 내렸을 때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음을.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에 간이 화장실 하나 없었다. 음료수 파는 상인의 '여기 화장실 없어..^^' 친절한 확인 사살에 세상에 방광과 나만 남은 것 같았다. 우버를 켜서 숙소까지 얼마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20불이었다. 16불 주고 와서 오줌 싸러 20불 주고 집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멍청한 짓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쵸와 페퍼처럼 자유롭게 풀밭을 이용해야 하는가.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내 인생의 장르를 로코로 정했건만 결국 시트콤을 벗어날 수 없는 거였다. 나는 갠지스 모니카 방에 내 상황을 공유하며 조언을 구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한테 1불씩 주고 뒤돌아있으라고 하셈.'
오~ 존나 남 일이라 이거지? 온 신경이 방광이 집중되어 있어 웃을 수도 없었다. 두뇌 풀가동을 시도했지만 두뇌는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공원을 벗어나 화장실을 계속 탐색했지만 끝없는 집들의 향연이었다. 몰래 어느 집 화단에서 해결할까 싶었지만 총 맞을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미국에서 노상방뇨하다 죽은 31세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미친 듯이 방뇨구역을 찾아 헤매었고 마침내 풀숲을 발견했다. 비로소 버스 정류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방뇨가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방광이 찼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
한결 자비로운 사람이 된 채로 공원으로 돌아왔다. 아까만 해도 숨 쉬듯이 쌍욕을 했는데 지금은 어찌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지. 혼자서 할리우드 싸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근처에 계신 한국분께 사진을 부탁했다. 최선을 다해 찍어주셨는데 웰시코기처럼 나와서 슬펐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편안하면서도 약간은 심심했다. 할리우드 싸인과 잔디밭 밖에 없는 곳이라 더 그랬다. 그때 공놀이하던 개가 내게 다가와 공을 뱉었다. 공 던지게로 낙점된 사실이 너무 기뻤던 나는 개가 만족할 때까지 공을 던져주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이제 노을을 보러 가야 했다. 구글맵을 켜고 안내해 주는 대로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여기 사는 부자들의 삶은 어떨까? 동네가 정말 예쁘네, 노상방뇨로 시간과 돈을 아끼길 잘했다 같은. 그런데 점점 이 길이 맞나? 아무래도 등산 코스가 아니라 자동차 경로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분명 30~40분짜리 동네 뒷산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30분 뒤가 일몰이었다. 1시간 거리를 30분 만에 주파해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자꾸만 경계 태세를 취하게 됐다. 칼 가져올걸... 그때 뒤에서 흑인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앞서 걷기 시작했고, 동지가 생겼음에 내면에 평화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 일몰은 글렀음을 깨달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아까 포장해 온 빵에 고디바 치즈 케이크를 찍어 먹었다. 짭짤한 빵에 단 케이크를 곁들이니 간이 딱 맞았다. 당이 차자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의욕이 솟았다. 30분 주파 가보자고~!
두 여자는 구글맵 경로대로 착실히 가고 있었다. 그들을 동아줄 삼아 따르는데 엄청난 언덕이 나왔다. 그들은 갓길에 주차된 차에 탔다. 구글맵은 대체 내게 뭘 알려준 것인가. 어쩐지 오는 내내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니.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야 했다.
망할 구글맵이 알려준 나만의 길은 때때로 을씨년스러웠으며 모래바람만 있는 허허벌판이 되기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추워서 덜덜 떨었는데, 너무 더워서 재킷도 벗었다. 다시 끝없는 부자 동네가 펼쳐졌다. 티비가 켜진 아늑한 거실 풍경이 살짝 엿보였을 때, 타로 카드 5번 펜타클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아직 반 밖에 안 왔는데 길이 없어지고 철문이 나왔다. 잠긴 건가? 싶어서 확인하니 문이 열렸다. 사람도 없고 영화에서나 보던 북미 특유의 산이 나왔다. 더 가야 하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여기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그래도 땀나게끔 올라온 보람이 있게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일들이야.
다시 왔던 만큼만 돌아가서 우버를 부르기로 했다. 처음엔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걸었는데 빠르게 해가 졌다. 춥고 배고파서 남은 빵을 모조리 해치웠다.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부잣집들이 사라지고 다시 허허벌판이 나왔다. 공포가 엄습했다. 여기서 우버를 부르면 얼마나 걸리나 확인하려 했는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왜 칼을 안 가져왔을까? 캄캄해서 플래시를 켰지만 여전히 뵈는 게 없었다.
드디어 주택가가 나왔다. 멀리 할리우드 싸인이 작게 보였다. 긴장이 풀렸고 재촉하던 발걸음이 느려졌다. 많은 집들 중 커다란 창 너머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집에 시선이 머물렀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서 혹한에 굶주린 두 주인공이 바라보던 부잣집 같았다. 그리고 부잣집을 홀린 듯 보는 내 신세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집에 사는 부자와 거지 톰 크루즈 중 누구를 고를 것인가, 세상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내 결론은 얼굴이었다. 오직 얼굴. 내 취향이 아닌 부자와의 호위호식보다 펜타클 5번 거지가 되어 꽃거지를 달고 다니는 게 더 행복함을 알기에.
춥고 배고픈 미아 신세임에도 신념만은 저버리지 않는 올곧은 준거지, 끝내 공원에 돌아왔다. 드디어 인터넷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버를 기다리는데 헬기가 할리우드 싸인 부근을 수색했다. 조난을 당해도 저기서 당해야 구출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대체 할리우드 싸인 뒤편은 어떻게 가는 것인가? 해결되지 않는 난제를 안고 우버에 올랐다.
<뉴욕의 감동을 4년 만에 재현할 수 있는가>
뉴욕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건 북창동 순두부였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재방문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 먹지 못했고, 긴 북창동 앓이가 시작됐다. 드디어 4년 만에 북창동 순두부 1호점에 왔다. 뉴욕에서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갈비콤보와 섞어 순두부를 주문했다. 둘 다 맛은 있었다. 그런데 그때만큼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추위와 고립에 대한 공포로 빵 3쪽과 케이크 1.5개를 다 먹어 치웠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우성이 형은 내일 유니버셜에 혼자 가야 한다고 했다. 아까 내게 1불씩 주고 뒤 돌아있으라고 하라는 해결책을 줬던 스투시가 안을 제시했다.
"형, 노숙자한테 돈 주고 같이 가! 원어민 일대일 과외도 하고 얼마나 좋아. 근데 함정은 약에 취해서 말 제대로 못 할 수는 있어.ㅋㅋㅋㅋ"
우성이 형은 반쯤 의욕 없는 어투로 거절했다. 스투시는 굴하지 않고 2안을 제시했다.
"아니면 라스베이거스를 밤에 가는 걸로 바꿔. 그리고 형이 플릭스 버스 비용 대주고, 유니버셜에서 한 시간에 1불씩 알바비 줘. 형은 유니버셜 동행 구하고 얘는 돈 벌고, 창조경제네!"
창조경제에 빠삭해서인지 스투시는 민박 사장님에게 고깃집 불판닦이 캐시 잡을 제안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게 아직도 콘서트에 갈지 고민 중이냐면서 콘서트 비용을 물었다.
"20불, 한국돈으로 2만 원."
"장난해? 캐시잡 해서 콘서트값 2만 원 벌면 되겠네!ㅋㅋㅋㅋㅋ"
비행기값이 200만 원인데요...
<LA의 마지막 밤>
드디어 신발이 말랐다. 뉴비는 자고 있고, 신발을 빌려줬던 ENFP는 오지 않았다. 방에는 친구끼리 여행온 새로운 사람이 두 명 있었다. 절친 1이 내일 샌디에이고에 가야 해서 절친 2는 혼자 유니버셜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우성이 형도 내일 혼자 유니버셜에 가니 같이 가라고 제안했다.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었고, 그들은 1층에서 술을 마시며 마저 얘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내일 라스베이거스로 떠나야 해서 짐을 싸고 내려가겠다고 했다. 절친 1은 내게 클럽에 무료로 입장시켜 주는 엠디의 인스타를 알려주었다. 디엠만 보내면 칼 입장 가능할 거라면서. 나는 그에 대한 보은으로 절친 2에게 동행을 만들어주리라 결심했다.
정리를 마치고 내려가니 거실에는 절친들과 웬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남자는 조용히 구석에서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나는 유니버셜 동행을 구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갠지스 모니카 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우성이 형, 유니버셜 팸 구했으니 내려오세요.' 그런데 옆에 있던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 여기 있잖아.."
우성이 형이었다. 나는 둘이 같이 유니버셜도 가고, 근처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도 가라고 했다. 우성이 형은 시큰둥했고, 절친 2는 같이 가기 싫은 거냐고 염려했다. 오늘 우성이 형을 처음 봤으면서 '원래 좀 무기력해!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거 맞아!'하고 그를 대변했다. 4명에서 시작해 7명이 된 갠지스 방처럼, 식탁에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체대생과 마리 사장님도 합류했다. 문득 이 순간이 소중해서 영원하지 않음이 무상했다. 스몰톡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 바뀌다니. 마리 비앤비라는 항아리 안에서 씨간장처럼 증식하는 갠지스 씨간장들과 이제 내일이면 안녕이구나. 좋은 사람들, 즐거운 순간들, 많은 깨달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여행이었다. 엘에이, 잘 놀다 갑니다. 베가스에서도 즐거운 이벤트가 넘쳐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