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에서 개츠비로, 스펙터클한 베가스의 밤
<미국 여행 8일 차:플릭스버스/라스 베가스/고든램지 펍 앤 그릴/오픈카/스트랫 타워 전망대/벨라지오호텔 분수쇼/카지노>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
마리 비앤비에서 먹는 마지막 조식, 유니버셜 때문에 갈팡질팡하던 우성이 형은 이제 천문대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스투시가 저녁에 천문대를 간다기에, 유니버셜은 절친 2와 천문대는 스투시와 가라고 했다. 절친들을 갠지스 모니카 방에 초대했다. '여기서 유니버셜이랑 천문대 얘기하세요.' 이로서 갠지스 씨간장의 방은 9명으로 증식됐다.
체대생과 스투시와 함께 우버를 기다렸다. 그간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고 들었지만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매일 새로운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만큼 나도 민박의 고인 물이 됐으니까. 그런데 이제 내가 떠날 차례가 되다니. 당연한 건데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일 파티 여니까 오고."
스투시는 라스베이거스가 도보 5분 거리인 것처럼 말했다.
"누구 오는데, 디카프리오라도 오냐?"
"우성이형오지. 정우성 아니고 민박 우성이 형."
오, 그거 전혀 흥미롭지 않은 걸요. 스투시는 끝끝내 내일 파티 참석하러 라스베이거스에서 잠깐 들르라고 헛소리를 했다. 어느새 우버가 왔다. 나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리 비앤비를 떠났다. 좋은 추억만 있었기에 마지막은 싱숭생숭했다. 하지만 이보다 완벽한 LA 여행은 불가능함을 안다. 울적함은 잊히고 더할 나위 없는 순간들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플릭스 버스 정거장이라고 내려준 곳에는 정거장 팻말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여기가 맞나 싶어 주변을 서성대는데 거지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늘 그렇듯 못 알아듣자 거지는 내 수준에 맞게 말 대신 몸을 썼다. 꼬깃꼬깃한 1달러를 흔들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와이?' 하고 물었다.
"그냥 가져~"
환하게 웃는 그는 앞니가 하나 없었다. 영어만 써야 하면 과묵해지는 여자인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한 번 거절해 주는 게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는 되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받아?"
"(수상하니까.).. 프리?"
딱 봐도 이상한 놈 같아서 잔뜩 경계하면서도 입 밖으로는 공짜냐고는 질문이 튀어나갔다. 그는 세상 무해한 얼굴로 공짜라고 답했고, 나는 그에게서 낚아채듯이 1달러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개 이름이 '푸딩파이'라고 했고, 나를 플릭스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캐리어를 끌고 따라가는데 그가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아이 캔트, 암 배드 티처."
"그럼 우리 둘이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건 어때?"
그는 갑자기 펜을 꺼내더니 본격적인 학습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사례를 하겠다며 여분의 돈을 보여줬다. 취미로 구걸하고 벤츠 타고 퇴근하는 분인가...
"노 땡스. 아 돈 니드 머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돈을 줄 거고, 여기 이 돈 다 네 거고, 공짜 돈 받고 싶지 않냐면서. 대체 왜 저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결국 창조 경제 수단을 포기했다. 그 돈으로 이빨을 해 넣으시길 바라며... 앞니 없는 거지의 삥을 뜯으며 시작하다니, 베가스 여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가 됐다.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플릭스 버스 생태계>
내 옆자리에는 누가 앉을까? 운명적 만남을 기대했지만 내 옆에는 중년 여성분이 앉았다. 그러면 그렇지. 어느새 만차가 된 버스는 베가스로 향했다. 역시나 베가스에서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고든램지 버거 동행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가장 먼저 댓글을 단 사람(부자 씨)이 있었지만 여자분과 동행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캐년 투어를 하고 있는 J4에게서도 연락이 와 있었다. 베가스에서 같은 한인 민박 묵는 사람이 있는데 내일 같이 클럽에 가도 되냐고. 둘은 아직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민박집 사장님이 메신저를 통해 엮어줬다고 했다. '당연히 괜찮지.' 답장은 그렇게 보내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찐따 중의 찐따로 태어나서 클럽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술, 시끄러운 곳, 춤, 움직이는 것, 사람 전부 싫어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생애 첫 클럽에서 기 빨려서 실신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번호를 교환한 적 없는 ENFP에게서도 연락이 와있었다.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게 아쉽다며 마리 사장님에게 내 연락처를 물어봤다면서. ENFP는 내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더 친해지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조금 더 머물렀더라면 아쉬운 인사로 끝나는 사이가 아니었을 텐데. 민박을 나오고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들은 내게 여운을 남겼다. 아마 꽤 오래간 나는 처음 본 내게 선뜻 신발을 빌려준 ENFP의 쿨함과 호의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를 갠지스 모니카 방에 초대했다. 어느덧 10명이 된 씨간장 방, 장독에서 간장을 퍼고 새 간장을 붓듯이 계속 순환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갠지스 모니카의 기원을 모르는 사람만 남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갠지스 모니카원들은 씨간장처럼 증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갠지스 모니카가 대체 무엇인지 추측하며 말이다.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했다. 어제 헐리우드 싸인에서 나쵸처럼 자연과 일체가 되었던 나는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옆에 앉은 중년 여성분은 임영웅 콘서트 영상을 보고 계셨다. 한국분이셨구나. 영어를 안 써도 됨에 안도감을 느끼며 영웅팬께 가방을 부탁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여유롭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멀리 내가 탔던 플릭스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어? 지금 날 버리고 가는 건가? 설마 싶었지만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기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하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게 섰거라! 여권부터 해서 내 모든 짐이 다 거기 있는데 이 미친놈아! 내 간절한 욕설이 통했는지 휴게소 입구에서 버스가 잠깐 느려졌다. 나는 마구 뛰어 버스를 잡아 탔다. 버스 안은 평화로웠다. 이 거지 같은 휴게소에 버려지게 만들 뻔 한 적 없다는 양. 영웅팬 말로는 갑자기 버스가 출발해서 기사에게 얘기를 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왜 플릭스 버스가 악명이 높은 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버스는 한 번 더 정차했다. 기사는 재치 있는 농담과 함께 휴게 시간을 알렸다. 아까 날 싸늘하게 버리고 간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영어 앞에서 늘 과묵해지는 나는 '내가 봐준다...' 하고 정신 승리를 했다.
하릴없이 주변을 슬렁슬렁 걸어 다녔다. 짐 칸이 열린 플릭스 버스가 한 대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버스인데 왜 아직도 있는 걸까? 게다가 여기가 목적지도 아닌데 짐 칸은 왜 열어둔 거지? 그때 익숙한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한국분이세요?"
그의 표정에서는 곤경에 처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LA로 가던 중 버스가 고장 나 아침부터 여기에 갇혀 있는 중이었다. 버스 측에서는 목적지까지 알아서 가라면서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고, 승객들은 단체로 고소를 하겠다며 난리가 났다고 했다. 단체로 타고 갈 택시를 불렀는데 언제 올 지도 미정인데 휴대폰까지 방전돼 숙소에 찾아갈 방도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숙소에 연락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 예약 사이트에는 숙소 연락처도, 문의를 할 창구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수확도 없는 상태에서 택시가 왔다. 그는 도와주셔서 고맙다면서 내 이름을 알려주면 기억하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도움 준 게 없어서 민망했지만, 이런 상황에 누군가의 손길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었다. 누군가 선뜻 내민 손길이 내게도 아주 오래 깊은 울림을 주었으니까. 그는 두어 차례 내 이름을 되뇌더니 내게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방금 본 사람일 뿐인데 나는 그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리고 과거에 나를 대가 없이 도와줬던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즐거운 여행 하셨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여전히>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베가스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정거장이 애 아부지가 일하는 윈 호텔 앞이었다. 덕분에 여행 잘하고 있다, 씨뱅아...
내가 묵을 호텔은 베가스 시티 중심에 있는 플래닛 헐리우드였다. 예약을 대신해 준 여행사 측의 배려로 벨라지오 분수가 보이는 방을 배정받았다. 에펠탑과 서커스 풍의 구 조형물, 분수쇼와 파스텔빛 하늘, 환상을 보는 것처럼 감상에 젖게 했다. 하루 종일 창 밖만 볼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같이 식사하기로 한 여자분에게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동행을 구하다 보면 약속을 확정한 뒤에 잠수를 타는 일도 종종 있기에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던 부자 씨에게 연락을 했다. 부자 씨는 고든 램지 버거보다 고든 램지 상위 계열사에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에게서 미국에 자주 와본 듯한 여유로움과 익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쌔가 빠지게 모은 돈으로 어쩌다가 놀러 온 입장이므로 너무 비싼 곳은 못 간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열사 중 중간 가격대의 '고든 램지 펍 앤 그릴'에 가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왔는데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카드를 댔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머지 카드 하나는 방에 있었고, 이미 약속 장소까지 가기에도 빠듯했다. 하는 수 없이 출발하려는데 정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지하 주차장을 통해 겨우 바깥으로 나왔다. 큼직한 건물들과 번쩍이는 불빛, 라스베이거스의 밤 풍경은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화려했다. 뉴욕에서 고층 빌딩을 올려다볼 때 시골쥐가 된 기분이 들었는데, 꼭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정신없이 식당이 있는 시저스 호텔로 향하는데, 내 옆을 스쳐가던 남자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떨어트렸다. 두툼한 것이 달러가 든 것 같았다. 냉큼 봉투를 주워 그새 멀리도 간 남자에게 뛰어갔다. 영어 앞에 늘 과묵한 나는 대뜸 봉투를 내밀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돈을 건네받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벙긋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땡큐가 떠오르지 않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룰라 영어>
시저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던 여자분(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시차 적응을 못해서 내리 잠들어 있었다면서. 이미 2명으로 예약해 둔 상황이라 부자 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부자 씨에게서 한 두 명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답변이 왔고, 나는 학생에게 지금이라도 오라고 전달했다. 때마침 또 다른 사람에게서도 식사 동행 연락이 왔다. 정신없는 와중에 부자 씨에게 양해 구하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느라 혼이 쏙 빠져서 그에게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식당 앞에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점원에게 다가가 예약자 이름을 불러주자 그는 나를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식당 안에도 혼자 온 남자는 없었다. 잠시 영혼이 우주에 다녀온 듯 아득해졌다. 내가 미아처럼 식당을 배회하자 점원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몇 명이니?' 하고 물었다. 나는 '일단은 세 명인데, 네 명이 될 수도 있어.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쓰리.. 포?.. 쓰리? 포...?' 뿐이었다. 룰라가 따로 없었다.
부자 씨가 도착했다. 학생에게서도 곧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다. 일행이 모두 와야 착석이 가능해서 셋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학생을 기다리는 동안 부자 씨는 내게 시저스 호텔을 구경시켜 주었다. 업무차 라스베이거스에 왔다. 그의 명함에는 전문직 자격증 2개를 겸비했음이 적혀 있었는데, 목사 겸 승려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그에게 줄 명함이 없었다. 퇴사를 할 때마다 거기 다닌 걸 수치스러워하며 명함을 찢어발기기 때문이다.
고든 램지 펍 앤 그릴에 들어갔다. 와인과 양파 스프, 샐러드, 버섯요리, 감자튀김, 스테이크파이를 주문했다. 맛있었다.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가격(인당 70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자 씨가 시저스 전 계열사 할인카드를 갖고 있어서 인당 100불을 할인받을 수 있었다.
학생은 내가 학생으로 이름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가 굉장히 어렸다. 자신감 있고 활달한 성격인 그는 내일 같은 민박 사람과 클럽에 간다고 이야기했다.
"어? 나돈데."
불현듯 아까 J4에게 받은 연락이 생각났다.
"혹시.. J4?"
"어? 맞아요!"
J4와 학생은 아직 만난 적 없지만 같은 민박이었다. 민박 사장이 클럽에 같이 가라고 엮어줘서 메신저 아이디만 주고받았다고 했다. 평소 우연이나 복선 찾기를 즐기던 나는 신이 나 J4에게 연락했다. 그랜드 캐년 투어 중이던 J4는 신기해하며 '대박, 나 지금 언니랑 디즈니 동행한 사람이랑 있는데.'라고 했다. 이렇듯 미국 바닥은 좁디좁았다.
<1불 모아 태산 된다>
다음으로 야경을 보러 스트랫 호텔에 가기로 했다. 발렛 기사가 오픈카를 가져왔고, 평소 물욕이 없던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오픈카를 타고 달리다니! 머리 위로 번쩍이는 고층 호텔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잠시, 바람 때문에 머리가 내 뺨을 마구 때렸다. 제발 뚜껑 좀 닫아줘... 제발...
스트랫 호텔에는 놀이기구도 있지만 이미 운행이 끝난 뒤였다. 우리는 바로 전망대에 올랐다. LA 야경이 오밀조밀했다면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했다. 예쁘긴 진짜 예쁜데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너무 추웠다. 부자 씨와 학생은 간절함이 없어서인지 얼마 보지 않고 실내로 들어갔다. 나는 화려한 도시의 야경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기 위해 '이겨내야지'를 외며 버텼다. 그러다 망원경에 꽂혀 있는 쿼터 동전을 발견했다. 쿼터 하나를 더 꺼내서 망원경에 투입했다. 확대해서 본 베가스의 야경은 50% 싸게 봐서 더 감동적이었다.
호텔 투어를 더 할지 이대로 헤어질지 정해야 했다. 나는 놀자파였고 부자 씨는 중립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학생은 노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외진 곳에 있는 민박에 혼자 돌아가기 위험하니 미리 짐을 챙겨 와서 논 뒤에 내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민박이 있는 동네는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했다. 짐을 챙기러 간 학생이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대로 파했으면 어찌 됐을지 아찔했다. 불나방 가자고 꼬드기기를 잘했다 싶었다.
시티로 돌아와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를 본 뒤에 바로 맞은편에 있는 플래닛 헐리우드에 갔다. 학생은 피곤하다며 먼저 자러 가고, 나는 부자 씨와 카지노로 향했다. 나는 강원랜드 처음 간 사람처럼 홀린 듯 슬롯머신을 당겨댔다. 그러다 공짜 게임 10판 추가에 당첨돼 '못 먹어도 고'를 중얼대며 100달러를 넣었다. 그렇게 111불을 129불로 만들었고, 거지에게 받은 1불과 전망대에서 주운 0.25불을 포함해 19.25불을 벌었다. 카지노에 익숙한 부자 씨와 달리 눈이 벌게진 나는 '조금만 더 하고 갑시다'하며 질척댔다. 우리는 한시 반까지 도박장에 있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창조 경제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