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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쵸의 와장창창 미국 서부 불나방 여행 9일 차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핫한 클럽, 내 마음은 콜드

by 재쵸

<미국 여행 9일 차:벨라지오 호텔 카지노/누들집/라스베이거스 싸인/호텔 투어/핫 앤 쥬씨/하이롤러 관람차/옴니아 클럽/시저스 팰리스 호텔>



<베가스의 밸런타인은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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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이 흐리다 싶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졌다. 학생은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갔고, 이따 민박 사람과 함께 합류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벨라지오 호텔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부자 씨는 오늘 벨라지오 호텔로 숙소를 옮길 예정이라 맞은편 호텔에 묵는 나를 태우러 왔다. 사실 원래 오늘은 캐년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디즈니랜드에서 쫄딱 젖은 채로 일정 변경 통보를 받았었다. 기상 이변 때문에 베가스에 폭설이 내렸다면서 말이다. 그때는 너무 춥고 힘들어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덕에 오픈카를 타고 베가스를 누비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당장은 나쁘게만 보이는 일도 어느 시점, 어느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내 삶의 부제를 정하자면 '내 인생은 뜻밖의 개이득 대잔치'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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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헐리우드에도 감탄했는데 벨라지오 호텔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부내가 철철철! 돈냄새가 콸콸콸~ 5성급과 4성급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 모텔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짐을 옮기기 위해 부자 씨의 방에 들러야 했는데 강한 바람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닫힐 듯 닫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문이 닫혀서 타고 갈 수 있었다.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는데 내 방에 있는 것보다 더 푹신하고 좋았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살아생전 내가 누려볼 수 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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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 그 잡채..!! 얼굴 인종 차별인가 싶을 정도로 기괴하게 만들어 놓음.

1층 로비에서 학생과 그의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호텔 내 정원을 구경했다. 정원은 시기마다 컨셉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마침 2월이라 주제가 설날이었다. 정확히는 중국풍으로 빨간색만 범벅해 놨었다. 그러고 보니 디즈니랜드에서도 일반 퍼레이드는 못 보고 중국풍 행렬만 보고 왔었다. 전혀 예쁘지도 않은 데다 미국까지 와서 왜 저런 걸 봐야 되나 싶었다. 양놈 친구들 기억하세요. 동양=중국이라고 싸잡지 않아요, 생각하기 귀찮다고 날로 먹지 않아요, 빨간색 떡칠하고 동양미라고 우기지 않아요.

학생과 그와 같은 민박 사람이 도착했다. 보자마자 민박 사람과 나는 '어!'하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첫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공무원분이었다. 그는 NBA를 보러 간다고 했었는데, NBA 관련 장식물을 볼 때면 그가 떠올랐었다. 그리고 동행을 구할 때 NBA를 보러 간다는 사람이 있어 '혹시 공무원분?'하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동일인이 아니었고, 다시 만날 확률이 극히 낮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잊고 지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무척 반가웠다. 별 게 아니라면 아닌 이 우연들이 뜻밖의 이벤트처럼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누들집은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다 실내로 몰렸나 보다. 카지노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어제 창조경제의 하루를 보내 자신감이 가득한 채로 룰렛을 돌렸고, 17불을 0.15불로 만들었다. 앞니 없는 거지 삥을 뜯은 업보인가. 그 잠깐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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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 완탕 / 김치 / 새우 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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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어쩌구 면 / 쌀국수 / 우동

누들집에는 다양한 국수 요리들이 있었는데 나는 새우 완탕을 골랐고, 사이드로 새우 꼬치와 김치도 같이 주문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서 속이 편안했다. 하지만 고자극 음식만을 취급하는 내게 새우 완탕은 숭늉처럼 슴슴했다. 김치는 저렴한 분식집 셀프 코너에 있을법한 맛이었지만 가격은 아주 시건방졌다. 그래도 부자 씨의 할인 카드 덕에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카지노로 달려갔다. 아까 잃은 돈을 회수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앞니 없는 거지의 삥을 뜯은 업보인지, 초심자의 행운이 끝난 건지 잃기만 했다. 나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공무원분이 내게 다시 벌어보라며 본인이 딴 돈을 주었다. '일확천금 가자!' '잭팟 가자!' 주문을 외며 돈을 투입했고, 11불을 땄다. 딴 돈보다 잃은 돈이 컸음에도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음수 계산을 못 하는 사람처럼. 돌려라, 마치 한 번도 잃은 적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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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에는 종업원이 돌아다니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있는지 묻는데, 특히 비싼 게임을 하는 구역에 자주 온다고 했다. 물, 에이드류뿐 아니라 커피도 가능하다기에 라떼를 주문했다. 잊을 때쯤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팁으로 거지에게 받은 1불을 줬다. 눈 감고도 거지가 준 달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꼬깃하고 더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낸 팁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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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맹맹했지만 같이 준 설탕 결정을 녹여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커피를 홀짝대며 부자 씨가 게임하는 걸 구경했다. 부자 씨는 계속 돈을 땄다. 나는 푼돈 넣어서 푼돈 잃었는데, 이게 빈익빈 부익부인가. 씁쓸함에 잠겨 있는데 부자 씨가 게임에서 딴 5불 칩 2개를 줬다. 노블리주 오블리제가 따로 없었다. 나는 그걸 돈으로 바꿔서 다시 룰렛을 돌리러 갔고, 17불을 땄다! 본전을 회수했을 뿐인데 잭팟이라도 터진 것처럼 신이 났다. 공무원분은 카지노에 남기로 했고, 우리는 숙소에서 다음 일정까지 쉬기로 했다.

"티비라도 볼래요?"

부자 씨가 물었다.

"영어잖아요."

학생은 이미 잠들어있었고, 나도 달리 할 게 없어 낮잠을 잤다. 침대가 포근해서인지 깨지도 않고 깊게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 부자 씨가 코까지 골면서 잘 자더라고 알려주었다. 학생은 아기처럼 새근새근 자던데,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코골이를 들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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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카라서 상대적으로 좁은 내부에 몸을 구겨 넣고 라스베이거스 전광판으로 향했다. 전광판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듣기는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인증샷만을 위한 장소였는데 차 타고 편히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았다. 그래도 흐리고 날씨가 많이 맑아져서 하늘이 분홍빛으로 예쁘게 물들어있었다. 사진에 진심인 우리는 열과 성을 다해서 사진을 찍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조던 포즈로 재미 좀 봤던 나는 사골처럼 베가스에서도 같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와 달리 역광이 얼굴을 가려주지 않았기에 결과물은 처참했다.


<원래는 애아부지와 함께 하려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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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 스트립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부자 씨와 학생은 쉬러 들어가고, 나와 공무원분만 호텔 투어를 가기로 했다. 마침 벨라지오 분수쇼가 시작했고, 우리는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어제 볼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션스 13이 떠올라서인지 여운에 젖었다. 그저 잘 만든 오락 영화 중 하나인 오션스 13을 기억하는 이유는 순전히 엔딩 장면 때문이다. 불빛으로 가득한 배경, 반짝이는 물결 위로 펼쳐지는 분수쇼, 잔잔히 깔리는 드뷔시의 달빛.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내가 여기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애아부지에게 낚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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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으로 산 라스베가스와 하등 상관 없는 드와이트 자석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밤거리를 거닐며 눈에 띄는 호텔이란 호텔은 다 들렀다. 그러다 보니 당이 떨어져서 엠엔엠 초콜릿 아몬드맛과 프레첼맛을 샀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밸런타인데이여서, 상술에 동참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이 저장하는 다람쥐처럼 초콜릿을 먹는데 웬 개가 친한척하며 다가왔다. 바보야, 이건 너한테 농약이라고. 줄 수는 없었지만 개의 질척거림을 즐기고 있는데 주인이 개를 끌고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개는 언제나 허용이야! (근데 사람은 안 돼!) 하지만 이조차도 영어로 말해야 했기에 묵묵히 아쉬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드레스코드:섹도시발>

드디어 J4가 베가스 스트립에 도착했다. 플래닛 헐리우드에 들어서자마자 짐을 찾고 있던 J4와 딱 마주쳤다.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기서 다시 보니 왜 이리 반가운지. J4는 내게 선물로 맥주를 건넸다. 그리고는 도시파인 자신이 캐년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토로했다. 투어원 중 45세 중년 여성분은 스트립에서 시름 대다가 캐년에서는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녔는데, 본인은 내내 병든 닭처럼 골골댔다면서. 스트립에 오니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J4 못지않게 나도 엄청난 도시 파였다. 그 사실을 몰랐을 때 남미 2주 여행을 갔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정수리에 화상까지 입은 적이 있다. 그 뒤로 내가 얼마나 자연에 감흥 없는 사람인지, 쾌적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세계 몇 대 절경 어쩌고는 봐야지~ 라며 아무 생각 없이 예약했던 캐년 투어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

밸런타인데이 클럽 가기의 드레스 코드는 섹도시발이었다. 나는 위아래 전부 까만색으로 맞춰 입었다. 라스베이거스용 섹도시발 털신을 드디어 베가스에서 개시했다. 이 신발은 오직 이 날만을 위해 가져온 것이기에.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보니 옷은 까마귀 저리 가라인데 머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거지존이라 뭘 해도 수습이 불가여서 급한 대로 묶어봤지만 정숙함을 있는 대로 뿜어댔다. 정숙하고 고루한 까마귀 같은 자태에 오늘 밤은 글렀음을 직감했다.


<부자 씨 사무실로 청소하러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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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으로 다섯 명이 모두 모였다. 핫 앤 쥬시라는 식탁에 매콤한 해산물을 부어 먹는 곳이었는데, 주메뉴뿐 아니라 감자튀김과 깔라마리까지 맛있었다. 우리 중 가장 부자인 부자 씨가 팁을 부담했다. 그리고 클럽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은 우리에게 관람차(하이 롤러)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그간 부자 씨는 이런 식으로 노블리주 오블리제를 실천해 왔다. 하지만 거지에게도 염치가 있기에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자 씨 사무실을 청소하러 가기고 했다.

"4명이니까 월, 화, 수, 목 돌아가면서 나가자고."

"그래, 아침마다 커피 한 잔씩 타드려."

원래 저녁만 먹고 헤어질 예정이었기에 부자 씨는 얇은 옷에 맨발, 슬리퍼 차림이었다. 차도 두고 나와서 관람차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20분을 걸었다. 심지어 반대편으로 잘 못 와서 8차선 대로를 다섯 명이 무산 횡단을 해야 했다. 그렇게 으슥한 부둣가 뒷골목 같은 곳을 빠져나오자 관람차가 보였다. 부자 씨는 컨디션이 나빠진 티가 역력한 와중에도 우리 모두에게 표를 사주었다. 우리는 십시일반으로 코 묻은 돈이라도 줘야 하지 않나 웅성댔다. J4는 카드에 코 묻히는 시늉을 했다.

"코 묻은 카드라도 드리자."

"코 묻어서 더럽다고 안 받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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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코 묻은 카드를 건네기도 전에 부자 씨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혹여라도 붙잡힐까 두렵다는 듯.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면 부자 씨의 사무실을 돌아가며 청소하기로 다짐하며 관람차에 올랐다. 사진을 5,000장 정도 찍으며 야경은 나를 빛내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핫한 클럽, 내 마음은 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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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클럽 가기 딱 좋은 시간.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핫하다는 옴니아 클럽으로 향했다. 절친 1이 알려준 클럽 프리패스 엠디 이름을 대자 진짜 프리 패스를 할 수 있었다. 밸런타인데이여서인지 그 큰 클럽이 사람으로 바글댔다. 태어나 처음 온 클럽은 정신없고 시끄러웠다. 너무나도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일단 좀 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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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가서 잭콕을 한 잔씩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J4의 베가스 투어원들과 마주쳤다. 그중에는 나와 디즈니랜드를 같이 갔던 사람도 있었다. 서로를 발견함과 동시에 '어?'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반가움과 신기함이 섞인 목소리로 '우리가 다시 만날 줄 몰랐어요!'라고 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다시는 볼 일도, 연락할 일도 없다고. 디즈니랜드에 좋은 기억이 없는데도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만남은 반가움을 선사했다. 마지막을 물에 쫄딱 젖어 덜덜 떨던 모습이 아닌 지금의 웃으며 반가워하는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어 좋았다.

술을 한 잔씩 들고 무대 앞까지 왔다. 그런데 이쪽에도 잘생긴 사람은커녕 아저씨만 바글댔다. 그냥 우리끼리 놀자는 무언의 눈빛 교환이 이루어졌다. 외향형인 J4와 학생은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나는 그들을 힐끗대며 그들의 몸짓을 따라 하려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다들 정말 잘 논다. 어떻게 놀아야 하지? 고장 난 깡통 로봇처럼 움직이면서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노는 건 무엇인가? 노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놀아야 한다는 말인가? 몸짓부터 숨 쉬는 것까지 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실력이 허접한 인형술사에게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가 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술이 더 필요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바 앞에 서 있는데, 학생 옆에 있던 남자가 '너희에게 술을 사줘도 될까?'하고 제안했다. 하지만 학생은 단칼에 거절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사달라고 해, 사달라고!'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영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비로 두 번째 술을 구매했고, 그날 딱 두 잔 마셨는데 6만 원이 나왔다. 순 날강도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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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셔도 못 노는 건 똑같았다. 가뜩이나 몸치인데 오프숄더 니트가 상체를 옥죄어서 자유도가 떨어졌다. 포승줄에 묶인 죄인이 된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가만히 있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 틈바구니에 가만히 서있기란 보통 광기로는 불가능하기에. 왜 술은 취하지 않는 건지, 맨 정신이 괴로워 팔다리를 열심히 휘적거렸다. 학생이 내 팔을 잡고 위로 끌어올리고는 흐느적대며 춤을 췄다. 오프숄더가 위로 말려 올라가서 다 늘어난 목티를 입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됐다. 나는 머쓱하게 주섬주섬 옷을 어깨까지 끌어내렸다. 학생이 내 팔을 다시 끌어올리고는 춤을 췄다. 질 수 없어 팔다리를 휘적휘적 댔다.

"언니, 왜 안 놀아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더 열심히 팔다리를 뚝딱거렸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가를 매 초마다 되새겼다. 클럽이란 속세의 공간에서 왜 철학적인 생각은 멈추지가 않았다.

우리는 새벽 3시가 돼서야 클럽을 나왔다. 목이 쉬어 있었고, 너무 피곤했다. 우리는 바로 위층에 있는 부자 씨의 방으로 향했다. (부자 씨 벨라지오 호텔로 옮겼지만, 일부러 시저스 팰리스 호텔 체크 아웃을 하지 않았다. 클럽에서 나온 뒤에 바로 올라가 자라고 배려해 주었다.) 이대로 자기는 아쉬워서 이제라도 상큼이들 물어와? 아님 나가서 술이라도 사 와? 라며 대안을 제시했지만, 허세에 불과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수다를 떨었다. 누구보다 정숙한 베가스의 밸런타인은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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