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미국 여행 10일 차:벨라지오 호텔 수영장/라스베이거스 노스 프리미엄 아울렛/매직 마이크>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침을>
J4가 떠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늦추고 벨라지오 수영장에 갈지 계속 고민하더니 결국 떠나기로 했나 보다. 불현듯 'J4가 무슨 카드를 가져갔지?'란 생각이 들었다. 정상인 카드 하나는 숙소에 있어서, 내게는 불량 하나와 교체받은 카드가 있었다. 확률은 50:50, J4가 불량 카드를 가져갔다면 일정이 모두 꼬이고 만다. 나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플래닛 헐리우드로 향했다.
늦게까지 논 다음 날 밝은 세상 아래 드러설 때의 기분은 언제나 묘했다. 꼬질꼬질한 거지꼴이 부끄러워 부지런히 에펠탑을 따라가니 금방 숙소에 도착했다. 가지고 있는 카드키를 갖다 댔지만 인식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J4가 기척을 듣고 문을 열어주었다. 지금 안 왔으면 내가 못 들어갈 뻔했네.
우리는 준비를 하며 간밤에 얼마나 목이 말랐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냉장고에 센서가 있어서 꺼내기만 해도 금액이 부과되기에 물이 있어도 마실 수가 없었다. J4는 간밤에 학생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마실 수 없음을 떠올리고 '으어어어어억' 소리와 함께 문을 닫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래도 어제 꽤나 알찬 하루를 보냈음에는 우리 모두 이견이 없었다. 딱 하나, 발렌타인에 초콜릿 먹기를 못 해서 아쉽다는 J4에게 mnm을 챙겨주었고, J4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나는 핫 앤 쥬시에서 포장해 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LA에서 싸들고 온 칙필레 소스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고, 새우랑 랍스터도 남김없이 까먹었다. 배가 빵빵해졌지만 뿌듯했다. 진정한 자취생이라면 음식을 남기지 않기에. 음쓰를 버리러 가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은 벨라지오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기인데 나는 수영을 못 한다. 어제 부자 씨가 벨라지오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게 해 주겠다고 했을 때도 실은 썩 내키지 않았다. 수영 후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씻고 준비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학생은 그런 내 반응을 '언니, 그런 데는 수영 하러 가는 게 아니야! 사진 찍어야 되니까 우리는 머리 물에 안 집어넣을 거야.'라며 단칼에 일축했지만. 그래, 언제 벨라지오 호텔 수영장에 가보겠어... 여전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수영복을 사러 나섰다.
<벨라지오는 벨라지오다>
수영도 못 하는데 굳이?라는 생각은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말끔히 지워졌다. 한 폭의 명화 같은 정원과 햇빛을 머금은 반짝이는 물결에 감탄만 나왔다.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텅텅 빈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막막했었다. 우버 타고 조용히 구경한 뒤에 일찍 들어와 잠이나 잘 거라는 예상은 모두 어긋났고, 그 어긋남이 무척 재밌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평소 관심 없던 것도, 싫은 것도 일단 해보는 쪽으로. 그래서 벨라지오 수영장에도 오게 됐고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에 설렐 수 있었다. 마음을 열길 잘했고, 앞으로도 그러자고 다짐했다. 오렌지빛을 머금은 정원의 나무들과 대리석 인테리어, 푸른 물결까지도 너무도 황홀했기에.
나와 학생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선베드에 누워 벨라지오를 만끽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은 시각을 즐겁게 했고 감각적인 음악 선곡은 지루할 틈 없게 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서 선베드에 올려둔 옷가지와 소지품이 날아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추워서 커다란 타월을 이불처럼 뒤집어써야 했지만 괜찮았다. 여기는 벨라지오 호텔 수영장이니까! 아무도 수영을 안 해서 휴대폰이나 보고 있는 패딩 입은 안전관리 요원이 부럽기도 했지만, 핫터브에 들어가고서는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노곤노곤하게 몸을 녹이며 사진을 오천 장쯤 찍었다. 진짜 사진 명당자리는 패딩 입은 안전요원들 앞에 있는 냉탕이었지만 우리는 냉탕 입장 시간을 유예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둘씩 다른 투숙객들이 온탕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그만 탕 안에 여러 명의 사람이 들어있는 장면은 '만두'를 연상시켰다. 예전에 조그만 핫터브에 장정 네다섯 명이 몸을 담그고 있는 사진을 본 적 있는데, 노폐물 육수를 우려내는 것 같아 강한 구역감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작은 탕에 여럿이 들어간 장면을 보면 비위가 상해서 참을 수 없었다. 탕에서 나와 선베드로 돌아가는데 아까보다 곱절로 추웠다. 벨라지오 호텔 수영장 관리인으로 취직할걸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냉탕 가서 사진 찍고 아울렛 갈까?"
학생의 다음 일정은 아울렛 가서 쇼핑하기였고, 나는 저녁 공연 전까지 일정이 비어있었다. 그렇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원래 쇼핑을 싫어하는 데다 벨라지오 수영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LA 민박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캐년은 어마무시하게 춥다고 얘기했기에 패딩을 사야 했다. 내가 가진 두꺼운 옷이라고는 코트가 전부였으니까. 그래, 가보자. 아울렛에서 재밌는 일이 있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위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차례로 얼음물에 입수하는 극기훈련생처럼 수영장에 들어갔다. 학생은 사진과 동영상 모두 찍어줬는데, 영상 속 나는 누가 봐도 수영을 못 해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마치 재활 운동을 하는 고령의 어르신처럼. 그래도 똥폼에 죽고 똥폼에 사는 나는 꽤나 오래 냉탕에서 버텼다. 덜덜 떨며 탕에서 나왔을 때, 키가 큰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친절하고 강압적이게 학생의 휴대폰을 가져갔다. 그리고 배경은 하나도 없이 인물로 꽉 채워진 웰시코기 샷을 찍어서 건네주었다.
다시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으려는데 양말이 없었다. 아까 바람 세게 불었을 때 날아갔나 보다. 우리는 코를 풀며 벨라지오 호텔을 나섰다.
<고생길의 서막>
노스 프리미엄 아울렛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실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그간 학생과 공무원분이 교통 때문에 불편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고 베가스에서 버스는 탈 게 못된다고 판단했기에. 하지만 학생이 이미 버스 정액권을 끊어뒀기에 불가피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플로 24시간 정액권을 구매했다. 미국 시스템을 불신하기에 미리 표를 사두지 않으면 승차거부를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징크스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하면 되려 낭패를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쓸데없이 부지런을 떨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버스 배차 간격 한 시간이야!"
학생의 낭창한 목소리에 피가 싸하게 식었다. 베가스에 온 이래로 가장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나는 민소매에 재킷, 반바지에 맨발 차림이었다. 사람들은 패딩을 입고 다녔고 최소가 재킷이었다. 둘 다 저녁 공연도 예약되어 있어서 시간 여유도 없었다. 우버를 부르면서 속으로 욕을 멈출 수가 없었다. 추위에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우버를 기다리는데 우버가 엉뚱한 곳으로 멀어져 갔다. 우버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우버가 있는 곳까지 칼바람을 뚫고 15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mnm 초콜릿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혈당을 올리면서.
"쏘리, 위 로스트 웨이."
우버 기사에게 사과를 하고 학생과 이야기를 하는데 우버 기사가 '어? 한국분이세요?'라고 했다. 갑자기 의사소통이 원활해졌기에 왜 늦었는가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베가스 시내에 있는 호텔 중 시저스 호텔만 우버 픽업존이 동떨어져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있던 버스 정류장은 시저스 호텔 근처에 있었고, 그 근처에서 차를 댈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고 했다. 아까 벨라지오에서 바로 우버를 불렀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타지도 못한 버스 정액권 8불, 우버 10불, 길바닥에서 덜덜 떨며 버린 시간 30분 이상, 결국 우버 탈 거면서 쓸데없이 많이 걷기까지. 재수 옴 붙음의 상징인 베가스 버스 따위는 앞으로 영원히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플에서 온갖 메뉴를 다 눌러봐도 환불 창은 없었다. 8불어치를 회수하려면 버스를 최소 두 번은 타야 했다. 네바다주 이 날강도 놈들아...
와중에 캐년 투어사로부터 기상 이변 때문에 그랜드 캐년 입장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들은 일정 변경이나 취소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당장 오늘 새벽 두 시에 떠나는 투어인데 이렇게 촉박하게 알려주다니. 게다가 이번이 두 번째 일정 변경 권고였다. 안 되는 걸 억지로 해선 안 된다는 징크스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랜드 캐년을 안 보고 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게다가 벨라지오를 떠난 것도, 쓸데없는 비용을 쓴 것도 다 캐년용 패딩 때문인데... 결국 답변을 미루기로 했다. 왜 아울렛을 따라나섰을까?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쇼핑은 한 번으로 족하다>
폴로, 내겐 그저 범생이 옷에 불과한데 학생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싸다며 신이 났다. 첫 방문 때도 동태눈이던 나는 아예 초점을 잃은 채로 매장을 서성댔다. 학생과는 폴로에서 미리 작별 인사를 하고 패딩을 사러 나왔다. 그런데 아울렛의 뜻이 언제부터 사치품 판매소로 바뀌었는가? 도무지 그 돈을 주고 필요도 없는 패딩을 사고 싶지 않았다. 캐년에는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고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길 차비와 시간을 들여가며 왔는가? 뭐라도 건져가야 한다는 본전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돈을 쓰겠다는데 왜 받지를 못 하니. 살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거다 싶은 게 거의 없었고, 그나마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터무니없었다. 가게 밖으로 나오면 건물 사이를 통과하며 강해진 칼바람이 휘몰아쳤지만 버스비 8불과 우버비 10불을 떠올리며 '이겨내야지'를 되뇌었다. 그러니 진짜로 춥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액세서리 가게까지 흘러왔다. 은근히 과하고 묘하게 촌스럽고 도태된듯한 디자인, hnm스러운데 더 그릇된 감성의 제품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필요도 없는 벌레 모양 목걸이를 꾸역꾸역 구매했다.
<거지자석>
드디어 매직 마이크, 4년을 묵힌 내 버킷리스트, 뉴욕 민박의 수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사회환원 공연을 보러 갈 시간이 됐다! 본전 회수를 위해서 버스를 두 번 타야 했기에 우버를 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정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거장이 정말 멀었다. 족히 20분을 사람도 없고 어두컴컴한 거리를 걸어야 했다. 굴다리를 지나고, 텐트 근처를 서성이는 부랑자도 지나 도착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거장 표지판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맞게 찾아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우버를 불러야 하는 걸까? 가성비충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흑인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대뜸 그를 불렀다.
"도움!"
그가 자전거를 멈췄다. 후미진 곳에 혼자 있는 것보다 누군가 나타난 게 더 무서운 일일 수도 있기에,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공포보다 본전을 향한 집념이 강했다. 나는 그에게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 맞냐고 물었다. 질문은 해도 대답을 알아듣지는 못해 눈만 꿈뻑이자 그가 자전거에서 내렸다.
"같이 가자."
말없이 어색하게 그를 따라 걸었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mnm을 꺼냈다.
"초콜릿 먹을래?"
나는 그의 손에 mnm을 부어주었다. 와작와작 같이 초콜릿을 씹으며 5분쯤 걸으니 맞은편에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보였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데도 그는 떠나는 대신 자리에 털푸덕 앉았다. 그리고는 버스가 어디쯤에서 오고 있는지 휴대폰 두 개를 꺼내 중간중간 내게 알려주었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학창 시절 듣기 평가를 하던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제이슨이야. 나이는 40살이야."
"그렇구나... 난 재쵸야.."
"너 추워 보인다."
민소매, 재킷, 반바지, 맨발... 아까도 추워 보였지만 해가 진 지금은 더욱 부랑자에 가까워졌겠지. 펜타클 거지보다도 걸친 게 없어서 더 불쌍한 처지였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는 고철과 잡동사니가 든 망태기를 뒤지더니 빨간 바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가 한 말 중 '클린'하나만 알아들었다. 길 찾아줬으니까 물건 팔려는 건가?
"혹시 내가 이거 사야 되니?"
대뜸 의심부터 한 게 무색하게 그는 내게 호의를 베푼 거였다. 머쓱해서 우물쭈물 대며 거절하자 그는 망태기에서 빨간 양말을 꺼내 건넸다. 하지만 매직마이크를 빨간 바지와 양말을 입고 보러 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주섬주섬 망태기를 여몄다. 나는 거지에게 돈을 받은데 이어 적선까지 받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날씨 때문에 계속 옷소매에 콧물을 훔쳤다. 거지들에게 먹히는 스타일인 나, 또 한 명의 거지를 고생시키는구나. 기다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가 한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그립다는 말만은 알아들었다. 순식간에 숙연해져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가 내게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 어머니는 71세야."
네... 살아계셨군요. 건강하세요.
드디어 멀리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그는 내게 친구를 하자며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었는데, 나는 버스를 타야 해서 마음이 다급했다. 숫자 영어로 불러주면 머릿속에서 번역해야 한다고... 때마침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황급히 버스에 올랐다. 건강하게 잘 지내길,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효자이자 친절한 시민 제이슨.
<모두가 패딩을 입을 때 여름옷을 입는 광인을 본 적 있는가>
버스에서 내리니 '사하라'라는 글자가 번쩍이는 건물만 덜렁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구글맵을 따라가는데 한참을 걸어도 매직마이크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을 걸으니 웬 호텔 하나가 나타났다. 하지만 매직마이크와 관련된 홍보물도 없고, 로비는 여타 베가스 호텔과 달리 정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내원에게 '여기 매직마이크 공연장인가요?'라고 물으면 '에그머니, 망측스러워라!'라고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구글맵이 가리킨 곳은 여기였고, 어플을 여러 번 초기화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매직마이크고 뭐고, 택시 타고 돌아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그때 캐나다 워홀러로부터 매직마이크는 잘 보러 갔냐고 연락이 왔다. 매직마이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캐나다 워홀러는 그 후로 쭉 매직마이크 앓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하라 호텔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느려 터진 미국 인터넷은 메시지가 간 이후로 최소 1분이 지나고 나서야 전송이 완료되었다.
'지금 10분째 헤매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한다는 거야?'
'그 건물인데?'
시발... 참을 인 대신 쌍욕을 새기며 온 만큼 다시 걸어갔다.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베가스의 칼바람을 뚫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욕 하나에 분노를, 욕 하나에 고함을, 욕 하나에 저주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건너편에 보이는 사하라 호텔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인 곳을 20분을 헤맨 스스로에 대한 싸늘한 분노와 오기만 나를 지배했다. 춥고, 배고팠다. 거지 종합 세트를 반나절만에 달성하다니. 할 수 있는 건 욕뿐이라 쉬지 않고 욕을 하는데 옆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신호를 기다리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춥지 않아?"
"응. 추워."
그게 다였다. 그는 다시 햄버거를 먹는데 열중했다. 그의 손에 들린 포장지를 갈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침을 먹고서 초콜릿만 먹었다. 미친 척 감자튀김이라도 좀 나눠달라고 해볼까? 고뇌하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코리아."
"오, 나도 한국 갔었어."
그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길고 혹독한 하루, 그 온기가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꽤나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네이마르상이었다. 짧고 담백한 스킨십 후에 우리는 다시 떨어져 걸었다.
"너는 어디로 가?"
"나 사하라 호텔에 쇼 보러 가. 너도 여행객이야?"
"그런 셈이지."
"어느 나라 사람인데?"
그의 긴 대답 중 내가 알아들은 건 몇 개의 단어뿐이었는데 그중 '부산'도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이중국적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그는 내 손을 잡아끌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고 나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양기, 좋았습니다... 귀엽게 생긴 애가 끼 부리는 건 참 귀하네요. 추위도 잊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사하라 호텔에 도착했다. 그는 내게 작별 포옹을 하고는 들고 있던 포장지를 건넸다.
"이거 먹을래?"
"뭔데? 쓰레기야?"
"아니야."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응."
의심은 많으면서 주는 건 거절 안 하는 나, 덥석 받았다. 봉투에서 뜨끈한 온기가 전해졌다. 네이마르의 품보다 더 따습고 좋구나. 다시는 볼 일 없겠지만 우리는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너무 추운 관계로 잠시 잠깐 본 후에 나는 호텔에 들어섰다. 인간관계에 있어 꽤나 구질구질한 내게 담백한 헤어짐은 산뜻하고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내가 베가스에 온 목적, 소명, 빛>
사하라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매직마이크 입간판이 반겨주었다. 매직 마이크 영화를 볼 때 언젠가 실제로 볼 날이 있을까 막연히 꿈을 꿨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저런 두툼이 들이 재롱을 떨어준다면... 상상만으로 갈증이 났던 나날들, 이제는 안녕! 곧 재쵸의 상상은 현실이 될 테니.
추위가 해결되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감자튀김이나 먹을까, 네이마르가 준 봉투를 열었는데 햄버거가 들어 있었다. 아직도 뜨끈함이 남아있는 햄버거는 이번 여행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거의 10시간 만의 음식이었으니까. 햄버거가 전해준 감동과 위로,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너도 매직 마이크 보러 왔니?"
게걸스레 햄버거를 먹어치우는데 근처에 있던 할머니가 물었다.
"응.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야."
"너도 생일이야?"
"아니, 매직 마이크 보니까.^^"
"그러네, 맞네.ㅎㅎ"
우리는 한 마음으로 웃음을 교환했다. 생일에 매직 마이크를 보러 오는 노후라니, 나도 그런 할머니가 되어야지.
대기실에서 기다린 지 얼마지 않아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내 자리는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소파 바로 뒤 테이블이었다. 특히 통로 쪽 좌석은 배우들이 오갈 때마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간택당할 확률도 높은 명당자리였다. 내향인에게 주목받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간절하게 간택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통로 반대편 좌석이었다. 자리에 앉는데 허벅지 뒤가 불타듯 쓰라렸다. 그제야 다리를 보니 가뭄 논바닥처럼 살이 다 터서 갈라져 있었다. 하루 반나절을 광인처럼 여름옷을 입고 돌아다녔던 게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곧 펼쳐질 행복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곧 매직 마이크를 본 사람에 합류할 거니까! 그때 통로석에 앉은 여성분이 나를 불렀다.
"혹시 너 혼자 왔으면 내 남편이랑 자리 바꿀래? 반대편 통로석이야."
일행임에도 여성분은 왼쪽 테이블 통로석, 남편은 오른쪽 테이블 통로석을 배정받았나 보다. 남편은 명당석에서 두툼이 들을 봐야 할 미래에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넙죽 승낙했다. 하루 온종일 재수가 없더니만 졸지에 명당석을 차지하게 되다니! 게다가 옮긴 자리에는 오늘이 생일인 내 롤모델 할머니와 그 가족들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오늘 생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설레는 마음으로 얼른 공연이 시작하기만을 바라는데 캐나다 워홀러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언니, 다리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마. 그래야 간택받아.'
간택당한 자들을 열심히 관찰했는지 간택받는 팁을 줄줄 전수했다. 바로 다리 위에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다. 언제 흘렸는지 모를 한쪽 이어폰이 떨어져 있길래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한 달 이상을 짐 정리를 안 해서 한쪽 이어폰 없이 살았다. 나중에 짐 정리하며 확인하니 그냥 동그란 흰색 쓰레기였다. 그리고 얼마 뒤 남은 한쪽도 개 산책하다가 귀에서 스르륵 빠져서 하수구에 들어갔다.
마침내! 4년을 묵혀온 내 버킷리스트 실현의 순간이 왔다. 첫 무대 영상을 찍을 때 배우가 나를 딱 가리키며 끼를 부리는데 '오늘 엄청난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지리도 안 풀리던 하루를 간택으로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좋긴 한데 인터넷에 추하게 웃는 꼴이 박제되는 건 싫었다. 거절해야 하나? 미쳤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후회하고 싶어? 하지만 내적갈등은 모두 무의미했다. 첫 무대 이후로 내 눈은 폴로 매장에서보다 더 혼탁한 동태눈이 되었기 때문이다. 흥분에 휩싸여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찬찬히 보니 죄다 아저씨들이었다. 두어 명 정도는 몰아주기 효과로 상대적으로 조금 낫기는 했다. 개중 '젊은' 한 명은 얼핏 스치듯 봤을 때는 귀염상이지만 제대로 보면 어설픈 상이 었다. 다른 한 명은 좀 멀끔한 원어민 강사 같았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데려와서 무대에 세웠다고 해도 믿을 법한 외형들에 깊이 탄식했다. 간택당하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이 아니라, 벌칙이잖아. 다들 눈이 없나?
게다가 무대에 올릴 여자들을 고를 때 배우들이 사심을 채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대에 올라온 여자 중 한 명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나중에 어설픈 상 배우가 또 그 여자를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유일한 아시안 배우만이 할머니를 무대에 올려 유교정신을 보여주었지만, 나머지들은 사심도 채우고 돈도 버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왜 이걸 돈까지 내가며 보고 있는가?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면 낭패를 본다는 징크스는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현지 업체와 마이리얼트립, 양쪽에서 내게 똥을 주었던 고통의 순간들이 충분히 힌트를 줬었는데... 거금 15만 원을 들여 아저씨들 춤사위를 보지 말라는 신의 계시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피곤하고 춥고 졸리고 재미도 없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쇼 마무리쯤에 공중에서 물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데, 덕분에 물을 실컷 맞았다. 테이블석에 앉은 누구도 간택은커녕 배우들의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간택 명당이 아니라 쫄딱 젖기 명당이었나 보다.
공연이 끝나고 공중에 마구 돈이 흩뿌려졌다. 영상을 찍던 내 휴대폰 위로 돈 한 장이 안착했다. 사하라 호텔에 오고 신났던 순간은 햄버거 먹을 때와 그때뿐이었다.
매직마이크 공연을 SNS에 올리자 J4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냥 동네 애들 데려온 거 아냐? 샌프란에 꽃거지 있는데 걔가 훨씬 잘생겼어.' 그 후로도 많은 이로부터 이걸 보러 거기까지 갔냐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 악의가 없어서 더욱 비참했다.
이제는 진짜 쉬고 싶었다. 마지막 과제, 버스 본전을 뽑아야 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 환승을 하고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타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무엇인가. 결국 버스 딱 한 번 타는데 우버비를 들인 셈이었다. 욕망에 솔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트콤 인생이란 굴레>
숙소에 도착했을 때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몸살에 코감기, 살은 다 터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가웠다. 도무지 새벽에 그랜드 캐년을 보러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투어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취소 요청을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벽 두 시에 강제로 캐년에 가야 했다. FUCK... 튀어나오려는 욕을 삼키고 정신승리를 시전 했다. 그래, 덕분에 시트콤 같은 경험도 하고, 욕망에 솔직하자는 교훈을 얻었잖아...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아까 아울렛에서 사 온 목걸이를 착용하려는데 고리 이음새가 맞지 않았다. 벌어진 틈새가 딱 맞물리도록 손으로 살짝 누르니 설탕 결정처럼 파사삭 부서졌다. 뭐야... 쿠크다스도 이거보단 견고해. 이걸 6불을 주고 팔아? 이 쓰레기를 사러 우버비 10불, 버스비 8불에 시간까지 버려가며 개고생을 했다니. 욕을 하자면 끝이 없었지만, 투어 전까지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뜨끈한 물로 씻고 얇은 옷부터 껴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8겹을 입고 최대치로 틀어도 기별도 안 가는 난방을 켜고 눈을 붙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