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년은 사랑을 싣고
<미국 여행 11일 차:홀스슈밴드/앤텔롭캐년/지온 캐년/인 앤 아웃버거/벨라지오분수쇼>
<캐년 투어와 출근은 동급이다>
새벽 두 시, 잠들기 전보다 더 천근만근인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8겹으로 완성한 미쉐린 타이어꼴이 움직임의 자유도를 떨어트렸다. 혈압측정기를 사지에 끼우고 압력을 최대로 올리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늘 갈 투어는 그랜드 캐년 밤도깨비 투어, 캐년의 밤부터 일출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구성이다. 이는 8겹으로는 택도 없을 수도 있음을 뜻했다. 로비에서 투어사 직원과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투어 취소 요청하셨죠?"
"네..."
혼자 투어를 신청한 사람이 나뿐이라 조수석에 탔다. 호텔에 들러 자매와 세 가족, 부부까지 3팀이 합류했다. 차는 베가스 스트립을 벗어나 어둠 속을 달렸다. 적막이 흐르는 차 안, 가이드는 투어가 변경되었다고 공지했다. 이상 기후로 캐년에 폭설이 내려 일정을 두 번이나 바꿨음에도 여전히 캐년 입장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랜드 캐년 대신 지온 캐년에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빨리 투어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꾸벅꾸벅 졸았다.
처음으로 간 곳은 순전히 사진만을 위한 장소로 별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딱히 감흥은 없었다. 미쉐린 타이어 꼴로 반쯤 죽어가고 있는데 사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론 가이드가 찍어준 사진은 멋졌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별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지 않은데 사진만 그럴싸한 게 무슨 의미일까? 아파서인지 이보다 더 많은 별들을 눈에 담은 적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냉소적인 태도가 가시지 않았다.
내 인생 첫 해외 여행지인 라오스에서 무수히 많은 별이라는 묘사에 적합했던 밤하늘을 봤다. 블루라군에서 돌아오는 길, 뉘엿뉘엿 지는 해에 마음이 급해 바이크로 웅덩이를 건넜는데 갑자기 바이크가 멈췄다.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도움을 주었고 거짓말처럼 바이크가 작동했다. 그들은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따뜻한 작별인사까지 해주었다. 어느새 캄캄해진 하늘, 방전되기 직전인 바이크 헤드라이트에서는 미약한 불빛만이 나왔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을 불안하게 달리며 언제쯤 빛이 나올까만을 생각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천체 구 안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의 처음과 끝은 온통 별로 가득했다. 바이크가 나아가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오는 무수한 별들을, 그 경이로움 앞에 감탄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유일했기에 더 아름다운 그 기억을 나는 내 소설 '토요일, 담장에 앉아' 차용했다. 그 이후로 나는 웬만한 별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오직 사진에만 존재하는 별이 가득한 그 장소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다시 차에 타서 잠이나 자고 싶을 따름이었다.
세 시간 반을 달려 아침 식사를 할 휴게소에 도착했지만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하늘에는 실처럼 얇은 초승달이 떠있었다. 차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가이드가 '오늘은 엄청 추운 편이에요.'라고 했다. 미쉐린 꼴을 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큰 개를 따라가라>
긴 이동 시간 내내 최대치로 튼 난방을 직방으로 쐬며 자고 나니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말발굽 모양으로 유명한 홀스슈 밴드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이 밝아 있었다. '오늘 유달리 추운 편'이라는 가이드의 말과 다르게 땀이 삐질삐질 났다. 너무 촘촘히도 껴입어서 벗는 것도 불가능했다.(내복, 민소매 2개, 니트, 긴팔티셔츠, 기모 후드, 경량패딩, 뽀글이) 하나 벗었다가는 세네 개씩 우르르 벗겨질 판이었으니까.
홀스슈 밴드를 배경으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대기하는 동안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나만 혼자인 관계로 달리 할 게 없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커다란 개를 데려온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곧 끝날 줄 알았던 대기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나야 독사진 몇 장 찍고 끝이었지만 다른 팀들은 단체 사진, 독사진을 따로 찍었기 때문이다. 지루함은 내향인도 움직이게 하기에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안녕, 개 이름 뭐야?"
"홀리야."
"너무 귀엽다. 몇 살이야?"
"두 살."
"내가 사진 찍어줄까?"
"오, 좋아."
나는 홀리와 홀리 파더를 찍어주었다. 휴대폰 카메라 중 한대가 깨져 화질은 하두리급에, 같이 찍힌 햇빛이 마구 번져 마치 저 세상을 구현해 놓은 듯했다. 홀리 파더도 나와 홀리를 찍어주었는데 내가 찍어준 사진과 달리 고화질이라 햇빛도 제대로 표현이 되었다. 이거 참 미안하게 됐수다.
"너 사진가야?"
"아니."
"그렇구나... 어디서 왔어?"
"유타. 너는?"
"한국."
"멋지네. 미국 어디 가봤어?"
"나 엘에이, 샌디에이고, 베가스, 뉴욕, 보스턴. 너는?"
"나 워싱턴이랑 시애틀."
미국인보다 더 미국 많이 가본 한국인.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그 나라 곳곳을 가는 건 만국 공통인가 보다.
우리가 농담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홀리가 신이 나서 몸통 박치기를 시전 했다. 나는 벌렁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하지만 홀리 파더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는데 그 눈빛이 마치 양파쿵야 같았다. 보통의 개주인이라면 당황하거나 개를 제지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이다지도 건조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이질적이었다.
"얘 너무 세다. 넌 얘 힘이 감당 돼?"
"난 괜찮은데 내 여동생은 벅차하더라. 넌 여기 얼마나 머물러?"
"금요일에 떠나."
그때 가이드가 모두 모이라고 불렀다. 다급히 인사를 하고 그들과 헤어져야 했다. 차에 탔을 때 자매끼리 온 팀이 홀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면서. 내내 시체처럼 죽어있던 나는 불쑥 외향인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홀리 사진을 공유해 주었다.
<지오 없는 호텔 아프리카>
다음 목적지는 엔텔롭캐년으로 원주민 가이드가 단독으로 인솔했다. 호텔 아프리카를 인상 깊게 봤던 나는 원주민 친구가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하지만 살면서 만날 일이 없음을 알았다. 내게는 칙릿 소설 속 여자보다 여자를 잘 이해하는 게이 친구보다 더 비현실적인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만난 원주민 가이드는 환상 때문인지 신비롭고 강단 있어 보였다. 나는 그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걸으면 될 것을 '같이 걸어도 될까?'라고 괜히 질척였다.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의 그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다.
"원주민들은 어릴 적에..."
물론 그 이후의 내용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했다.
좁고 가파른 곳을 오르고 내려가니 윈도우 배경화면에서 많이 봤던 곳이 나왔다. 원주민 가이드가 차례로 사진을 찍고 후보정을 해줬다. 어느덧 내 차례가 왔다. 앞사람들이 전부 아이폰을 썼기 때문에 머뭇대며 휴대폰을 건넸다.
"나는 아이폰 아닌데.."
"괜찮아."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후보정이 문제가 아니라 사진부터가 뿌옇게 잘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카메라를 닦으려 휴대폰을 뒤집었고, 깨진 카메라와 직면했다.
"무슨 일들이야."
"그게 나야."
그는 실질적으로 카메라가 두 대 뿐인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정까지 해주었다. 나는 보답으로 우리 집 개 사진을 보여주었다. 말만 트면 개 사진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개 주인의 습성이기에.
투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가이드는 니모 모양, 샤크 모양으로 보이는 곳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바호 언어도 알려주었다. 솔직히 장소 자체는 딱히 큰 감명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고의 자연을 계승하며 알리는 원주민 가이드의 삶은 굉장히 멋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멋진 곳에서 남들의 사진만 찍어주고 본인의 사진은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출발지로 되돌아갈 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까 네 사진 찍었는데 원한다면 줘도 될까? 불쾌하다면 사진은 지울게."
그는 시니컬하게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다. 그와 SNS를 교환했다. 출발지로 가까워질수록 노랫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달리 목소리가 예뻤던 그가 성년식을 기리는 원주민 전통 노래라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같이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에게 '난 네가 좋아.'라고 말했다. 지금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 싶었기에. 우리는 포옹을 나누고 서로의 행복한 하루를 기원했다.
<대자연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티비다>
투어의 2/3이 끝났다. 편의점 좌판에서 중간 식사로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투어를 예약할 때 상품 설명란에 어머니표 음식이라고 적혀있던 게 떠올랐다.
"와, 직접 만드신 거예요?"
"아뇨, 업체요.."
그랬군요... 가이드는 따뜻하게 먹으라며 뜨끈한 카레를 부어주었다. 순식간에 차가운 도시락이 방금 만든 집밥처럼 변했다. 다 먹어갈 때쯤 머리카락이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최고의 식사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홀리 파더로부터 사진이 왔다. 산뜻한 마무리는 답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지만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이벤트가 필요했다. 물론 그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고, 인간으로서의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캐년 투어에서 첫사랑을 시작했는데, 시트콤 같은 일들만 가득했던 여행에도 작은 로맨스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다시 빵빵한 난방을 쬐며 긴 여행길에 올랐다. 가이드는 캐년에 눈이 그치긴 했지만 개방된 입구가 많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그랜드 캐년에 가면 귀가가 2시간은 늦어지니 지온 캐년에 간다고 했다. 그랜드 캐년을 보러 왔는데 웬 듣도 보도 못한 지온 캐년이란 말인가. 속은 기분이 없잖아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거기가 거기일 테니.
지온 캐년에 가는 길, 가이드는 터널 중간에 숨구멍이 있다면서 잘 보라고 했다. 하지만 조느라 보지 못했다. 다음에는 봐야지, 비몽사몽 중에 생각했지만 사람들의 오- 소리에 깨면 이미 지나친 뒤였다. 아직도 나는 숨구멍이 있는 터널이 뭔지 모른다.
지온 캐년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여기서도 역시나 사진만 찍었는데 터널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한 명이 망을 보다가 차가 오면 말을 해줘야 했다. 솔직히 사진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자연적으로 낙석된 가장 큰 바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서 지온 캐년 투어는 끝났다. 설악산과 다름이 무엇인가 싶었고, 그랜드 캐년이라면 감흥이 있었을까 싶었지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인 건 여행 전 계획 짜기 귀찮아 '7대 캐년 투어'를 신청할 뻔했다는 것이다. 하나도 지겨운데 며칠간 7개를 봐야 했다면...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역시 대자연은 방구석에 누워 티비로 보는 게 최고다. 굳이 고생해 가며 직접 올 필요가 없다.
베가스 스트립으로 돌아가기 전 정산 시간을 가졌다. 미리 지불한 투어비 외에 추가로 발생된 131불과 팁을 내야 했는데, 팁이 전체 투어비의 15%였다. 몇 달 전에 인터넷에서 결제한 투어비까지 포함하는 건 바가지 아닌가 싶었다. 눈 때문에 프로그램도 바뀐 데다 예정보다 더 일찍 끝나기까지 했는데. 게다가 나는 오롯이 혼자 40불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합리성을 근거로 얼굴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정신승리 하는 수밖에. 여기까지 와서 캐년(비록 그랜드 캐년이 아닐지라도)을 안 보고 갔으면 후회했을지도 모르니까. 홀스슈 밴드와 엔텔롭 캐년은 애리조나 주, 지온 캐년은 유타주니까, 투어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베가스에서 이 두 주를 하루 만에 찍고 돌아오겠는가. 초면인 외국인에게 용기 내 말도 걸고, 유일하게 혼자여서 어색했지만 다른 투어원들과 친해지기도 했으니까. 미약한 호텔 난방에 의존해 덜덜 떨었다가는 더 오래 고생했을 테니 요양 여행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인 앤 아웃 버거, 나가라>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건 인 앤 아웃 버거였다. 미 서부에만 매장이 있어서 4년 전 동부 여행을 했을 때는 시도하지 못했었다. 그때 먹었던 파이브가이즈와 쉑쉑버거가 별로였어서 더 인 앤 아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치즈가 잔뜩 올라간 애니멀 스타일 감자튀김은 매직 마이크와 함께 내 서부 여행 버킷 리스트로 묵혀 있었다.
나는 일반 햄버거에 애니멀 스타일 감자튀김, 밀크셰이크를 시켰다. 드디어 맛본 인 앤 아웃 버거! 맛이 없었다. 감자튀김은 맛도 없는데 느끼하기까지 했다. 대체 이게 왜 유명하지...? 이로써 미국에서 먹은 버거 중 칙필레와 맥도널드를 제외한 모든 버거가 맛이 없음을 깨달았다.
<운명에 저항한 자, 시트콤을 벗어날 수 없으리>
베가스 스트립 초입에 윈 호텔이 보였다. 애 아부지가 일하는 곳, 지금쯤 애기와 애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나.
"윈 호텔은 어때요?"
"비싼 호텔이긴 한데 좀 촌스러워요."
나는 음침하게 속으로 히죽 웃었다.
가이드는 윈 창립자가 베가스를 카지노 도시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혼한 전 부인에게 위자료로 호텔을 줬는데 그래서인지 아직도 교류를 하고 지낸다고 했다. 현부인과 전부인 셋이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도 그런 삶을 산다면 어떨까 잠시 꿈꿔봤다. 전남편과 현남편을 끼고 밥을 먹는...
투어원들을 하나씩 내려주고 마지막으로 플래닛 헐리우드에 도착했다. 씻으려고 옷을 벗는데 어찌나 껴입었는지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어제는 그 추운 날씨에 헐벗고 다녔는데 오늘은 어찌나 덥던지.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날씨에 맞게 옷을 입은 적이 0에 수렴했다.
잠들기에 아직 일렀고 그렇다고 나가기에는 피곤한데 정신은 또렷했다. 홀리 파더에게서 아직 답장이 없었다. 시트콤 인생을 살려면 이쯤에서 메일을 한 통 더 보내면 된다. 그러고서 심심풀이로 SNS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는데 바로 그가 떴다. 왜 답이 없었는가에 대한 답과 함께. 사진 속 홀리 파더는 웬 남자와 다정하게 뺨을 맞대고 있었다. 누구는 캐년에서 첫사랑을 시작하는데 나는 하필 골라도 게이를 고르다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 번째 메일을 보냈다. 인생의 장르를 바꾸고 싶다면서 자꾸만 반대의 길만 걷는 스스로가 의아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그러고 싶었는데.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가 할 때면 폭죽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면서 소리가 날 때마다 주섬주섬 일어나 분수쇼를 봤다. 드뷔시의 달빛과 함께 감상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린 방에서 편하게 분수쇼를 보는 순간이 좋았다. 달빛 없이도 달빛이 깔린 듯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