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역할조직, 우리도 할 수 있을까?

by 베티

세상은 수평한 조직을 외치는데, 수십 년간 쌓아온 견고한 피라미드를 도대체 어떻게 납작하게 하란 말인가? 역할조직, 수평조직, 네트워크 조직 등의 말을 들으면 그들만의 세계라는 생각에 회의감만 들었다. '태생적으로 역할조직의 모습을 갖고 태어났어야 해', '심지어 이런 조직은 실리콘밸리에만 수두룩하지 않은가?', '아직 보수적인 한국 조직에선 성공 사례가 없는걸?'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여러 번.


답답했던 이유는 어떻게 바꿔야 할지 막막해서였다. 역할조직에선 개개인이 전문성을 가지며, 자신의 역할에 따라 일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 일에 대한 의사결정도 상사가 아닌 내가 한다. 누구도 일을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리듬에 따라 업무 시간과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이상적인 모습을 당장 우리 회사에 어떻게 적용하란 말인가? '사원-대리-과장-차장-팀장-부서장-회장'이라는 위계가 분명 존재하는 회사에서 말이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구체적인 'HOW'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에게 구글, 페이스북 등을 들먹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 최근에 생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선택한 방법은 역할조직이라 할 수 있다. 위아래가 아닌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것. 역할조직에서 CEO는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엔지니어는 실제 코드를 작성하며 시스템을 설계하고, 엔지니어링 매니저는 엔지니어가 최대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른 팀과는 문제는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조율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신이 맡은 프로덕트가 사용자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프로덕트를 개선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역할조직의 장점은 모든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할 수 있으며 혁신하고 변화하는 데 더 쉽다는 것이다. -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유호현 저) 中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역할조직을 그린 유호현님을 모시다.

기회가 생겨 '역할조직'의 개념을 정립한 유호현님을 모시게 되었다. 에어비앤비, 트위터 등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서 '실리콘 밸리를 그리다',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에 역할조직의 개념과 사례들을 녹여냈다. 두 가지 세션을 마련했다. 첫 번째는 전 직원 오픈 특강으로, 실리콘밸리의 역할조직 이야기를 듣는 것. 두 번째는 심화 세미나로 저서를 미리 읽어온 후 소수의 참석자 대상으로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KakaoTalk_20201206_173319920_10.jpg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방식, 유호현님 특강 현장


역할조직은 우위의 개념이 아니다.

직원들도 나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용은 좋은데 과연 우리 조직도 역할조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호현님은 역할조직 VS 위계조직은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역할조직은 본인이 실리콘밸리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분석하여 만들어 낸 개념이며, 절대시 되어서도 안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이때 역할 조직의 강점 요소를 우리 안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하셨다.


이미지 2.jpg 뜨거운 질의응답이 오갔던 세미나 현장


정답은 우리의 WAY를 만들어 나가는 것

평소에 개개인이 품었던 고민과 질문들이 만나 뜨거운 열기의 세미나를 만들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역할조직, 전문성, 의사결정, 경력개발 등을 넘나들었다. 이 모든 게 더 나은 조직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겠지. 이제 조금은 후련해졌다. 역할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났다고나 할까. 결국 중요한 것은 '역할조직'으로의 '급전환'이 아닌, '우리 다움'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역할조직과 위계조직, 각각의 장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더 탁월하게 일할 수 있는 요소를 접목해 나가는 것. 앞으로 남은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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