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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밍 Apr 22. 2020

아주 보편적이고, 찬란한,

<벌새> (House of Hummingbird)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벌새(Hummingbird)’는 1초에 아흔 번의 날갯짓을 한다. 14살의 은희 또한 작고 어리지만, 분주한 날갯짓을 통해 사랑을 갈구한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은희의 세계를 포착한다. 대치동 아파트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가부장적이고 무관심한 부모님,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지만 스스럼없이 은희를 때리는 오빠, 걸핏하면 부모님 속을 썩이는 언니, 그리고 그 안에서 은희는 조용히 외롭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엄마를 목청껏 불러도 열리지 않는 현관문은 은희와 주변 세계의 모습을 닮았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반복된다. ‘노래방 대신 서울대’라는 구호를 외치게 하며,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운다. 일상의 폐허에서 은희는 남자친구, 그리고 단짝 친구와 소소한 일탈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은희는 한문 학원에서 선생님 ‘영지’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이런 은희의 일상과 감정의 진폭을 세밀하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관계, 일상과 사회에 잔재하는 폭력, 붕괴와 단절, 그리고 성장은 비단 은희만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아니다. <벌새>는 무수한 점들을 잇는 하나의 선, 그 위의 ‘은희’로 존재했던, 존재하는 우리들을 그린다. 은희의 시선을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서 나와 너, 우리를 목도하게 된다. 담담한 시선은 잔잔한 일상 속에 표류해 있던 파편을 건져 올린다. 1994년의 풍경이 익숙하게 다가오고,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든다. 영화를 보고 기억을 더듬다 보면, 답답한 공기에 숨이 막히다가도 반짝거리는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이번 여름, 은희의 세계가 당신의 세계를 기다린다.


글. 아트나이너 최은민          




예술영화관 아트나인, 엣나인필름의 서포터즈 아트나이너 10기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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