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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Jan 07. 2021

집무실 옆 집교실

재택근무와 재택수업의 만남


뉴스에서는 온갖 코로나 소식이다. 실시간 울리는 카톡에서도 몇 개월째 코로나 얘기가 떠돈다. 지칠 만도 한데 매일 새로운 소식이 생기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울린다. 우리 동네 확진자 소식이다. 어제는 그 수가 스무 명 가까이 됐다. 급기야 아이들은 또다시 집에서 수업을 받게 됐다. 함께 해야 하는 숙제는 점점 쌓여갔고 재택근무의 외로움은 깊어졌다.


8살 쌍둥이가 잃어버린 1학년을 보낼 때도. 작년 예약했던 여름휴가를 못 갔을 때도, 사람들을 맘대로 만나지 못할 때도.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 하지만, 우울함은 갑자기 밀려왔다. 툭’하고. 손가락으로 겨우 막고 있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무기력+우울함+짜증, 3단 콤보의 공격

문득, 지난달 만난 기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코로나를 취재하는 기자였다. 코로나도 심각하지만, 우울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을 걱정했다. ‘만나지마라, 나가지마라, 하지마라’ 1년 가까이 부정적인 단어들을 듣게 되며 많은 이들이 감정을 너무 참고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이렇게 무기력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해야 할 일들은 쌓여가지만 일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꽤나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 뿜뿜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요즘은 소금에 절인 배추 마냥 생기로움이 빠져버렸다. 어떻게 보면 에너지를 발산(?)할 곳이 없어 생긴 증상이다.


재택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일도 점점 늘어만 갔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이들의 소리가 일을 하고 있으면 꽤나 신경 쓰였다. 온라인 회의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떠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짜증 내는 모습을 후회하는 일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됐다.  


난장판인 거실은 늘 엄마 잔소리의 시작점이다.


#아이들이 살금살금 집을 나선 이유

그날도 그랬다. 거실에서 뛰는 아이들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한 터라, 씩씩거리며 키보드를 두들겨 댔다. 아이들은 학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다녀오겠다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30분쯤 흘렀을까?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방문 틈으로 작은 손이 ‘쑥’ 들어온다. 작은 손에 들린 작은 종이봉투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간다. ‘어라? 붕어빵?!?’


아이들은 몰래 용돈을 챙겨다가 엄마를 위해 붕어빵을 사 왔다고 했다. 방문 틈에 선 아이들의 볼이 발그레했다. 붕어빵이 식을까 봉투를 꼭 쥐고는 집까지 달려온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 이거 먹고 일해’라며 책상에 붕어빵을 두고 후다닥 방을 나갔다.(나중에 물어보니 용돈을 썼다고 잔소리할까 봐 빛의 속도로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사실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무언가를 사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집에서 일을 하는 엄마에게 선물을 한다며 자기네들만의 도전을 한 것이다. 둘이 마주앉아 붕어빵 주문을 연습하고 슈크림과 팥을 몇 개씩 할 것인가도 신중히 결정했다고 했다. 따끈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입안에서 퍼지는 슈크림처럼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우울함도 사르르 없어져버렸다.


아이들은 숨겨놓은 용돈을 꺼냈고 10마리 중 무려 5마리의 붕어빵을 엄마에게 줬다.

 

#이제는 익숙해진, 집무실 옆 집교실

요즘 우리는 아침마다 공부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작은 방은 곧 집교실과 집무실이 된다. 아이들은 자기네 책상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고 나는 내 책상에서 일을 한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아이들은 이제 혼자서도 익숙하게 수업을 받는다. 나가지 못해도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며 깔깔거린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하던 잔소리가 줄었다. 우리 모두 코로나로 변한 상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같이 있다보니 웃긴 일도 생긴다. 어느 날 일을 끝내고 아이 책상에서 '엄마관찰일기'를 발견했다. 유독 뒷통수가 따갑게 느껴졌단 것은 느낌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첩에는 하루 일과가 너무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마치 재택근무를 잘 하고 있는 지 감시하는 관리자처럼.


어떻게 보면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다. 나는 집교실 옆에서 아이들이 수업 받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아이들도 집무실 옆에서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기나긴 코로나와의 싸움을 이기는 힘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변해버린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것. 그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붕어빵에 담긴 작은 행복처럼. 

       

이른 아침 집무실 옆 집교실이 열리면 머리에 까치집을 한 아이는 제 할 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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