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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Jan 08. 2021

9살 주린이가 되다


1월 1일 떡국을 먹고 난 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새해 계획을 세웠다. 종이와 연필을 나눠갖고는 가족, 개인이 이루고 싶은 것을 각자 써보기로 했다. 올해 9살이 된 아이들도 야무지게 연필을 쥐고 생각을 써 내려간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쓰는 계획을 힐끔거렸다. 각자 세운 목표를 발표하고는 다수결로 다 함께 힘을 모을 목표를 꼽았다.

<2021 명랑가족 목표>
1. 할머니 없는 육아 독립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2. 제주에서 한 달 살기
3. 한 달에 한번 동네 뒷산 오르기
4. 빵가게 주인이 꿈인 재양을 위해 한 달에 한번 다 같이 빵 만들기
5. 부자가 되고 싶은 재군을 위해 모은 용돈으로 게임회사 주식 투자하기



올해 가족 목표인 더 많은 시간 함께 보내기를 위해, 아빠는 바쁜 저녁 대신 아침 시간을 내기로 했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도전해보기로 했다.(사실 집돌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표도 다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빵가게 주인이 꿈인 재양을 위해 한 달에 한번 다 같이 빵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부자가 되고 싶은 재군을 위해 지금까지 모은 용돈 백만 원으로 주식을 사 보기로 했다. 빠르다 싶기는 하지만, 용돈 쓸 일이 많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제관념을 세워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식이 뭔지 어떻게 설명하지?? 남편과 나는 서로 설명하라며 치열한 눈치싸움을 했다. 결국, 엄마의 날카로운 시선에 진 아빠가 설명에 나섰다.


아빠: 주식은 말이지, 그 회사 가치에 투자하는 거야.

아이: 가치? 그게 뭔데?

아빠: 음..... 회사가 더 커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같은 거.

아이: 그럼,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거야?

아빠: 비슷한 건데, 그 회사가 커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거야.

아이: 내 돈을 주면 나는 없어지는 거야?

아빠: 대신 그 회사의 주인이 되는 거지. 회사가 커지면 주인들이 지원해준 돈도 커지게 되는 거야.

아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회사의 주인이 되는 것은 좋다!

아빠: 그럼, 어떤 회사의 주인이 되고 싶은데?

아이: 음.... 게임 회사??



아이는 완벽하지 않지만 어렴풋이 주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게임 회사 주인 중 한 명이 된다는 것에 더 신나 했지만. 주식 계좌는 내가 쓰고 있는 증권사의 것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내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편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방문으로만 개설할 수 있어 점심시간 회사 근처 증권사를 방문했다. 증권사에는 나처럼 아이 계좌를 만들어주러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내 앞 순서인 분은 자녀 4명의 계좌를 개설했다.


(Tip) 아이 주식 계좌 개설하는 법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증권사 방문으로만 가능하다.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 아이 중심의 기본증명서(상세), 보호자 신분증이 필요하다. 도장은 없어도 되고 미리 비밀번호를 생각해놓는 것이 좋다.


어떤 곳의 주식을 살까는 아이 스스로 생각해보게 했다. 이제 막 첫걸음마를 뗀 주린이가 '주식=단순히 투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튼튼하게 성장할 회사인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지,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할 수 있는 회사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와 여러 곳을 고민하다가, 아이가 늘 관심있어하는 게임회사와 S전자 주식을 매수했다. 보유한 주식은 계속 지켜보면서 장기간 들고 있기로 했다. 다행히, 며칠 뒤 아이가 보유한 주식이 약간 올랐다. 아이에게 보여주며 회사가 잘 돼서 지원한 돈이 조금 불어났다고 설명을 했다. 아이는 그 회사 광고나 캐릭터를 볼 때마다 '힘내라'를 외친다. 9살 주린이다운 귀여운 응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엄마는 이 주린이가 잘 성장해서 한 주주총회장에서 멋지게 소신발언하는 모습도 그려본다.


사실, 비기너 주린이에게 투자까지 이해시키기는 어려워 손실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아직 알려주지 못했다. 요즘 아이가 주식 계좌를 자주 보여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혹시 파란불이면 어쩌지?'하고 가슴이 콩닥콩닥하다.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 회사들이 오랫동안 잘 성장해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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