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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Feb 04. 2021

플렉스 말고 '플로깅'

아이들과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길어지는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 체력이 엉망이다. 아이들은 매일 상당 시간 동안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거나 소파에 널려(?) 있다. 가끔은 마치 몸에 뼈가 없는 연체동물 같이 보인다. ‘주말인데 우리 뒷산을 함께 걸을까? 올 때 서른한 가지의 즐거움이 있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엄마의 필살기인 아이스크림으로 아이들을 꼬셔 본다. 예전에는 ‘그래?’하고 벌떡 일어났는데 요즘은 다르다. 이제 컸다고 손만 까닥거린다. ‘어린이들은 집에 있을 테니 어른들만 다녀와요’라는 강력한 신호다.


안 되겠다 싶어 꾀를 냈다. 새해 계획을 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매년 명랑가족 계획을 세운다. 한 명씩 돌아가며 본인과 가족이 함께 할 계획을 얘기 한 뒤 가족 투표를 한다. 정해진 명랑가족 계획은 다 함께 하거나,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준다. 다 함께 둘러앉아 계획을 얘기하는 날, 가족이 함께 할 계획으로 <한 달에 한번 ‘플로깅’>을 꺼내놨다.


엄마, 플로깅이 뭐예요?
요즘 착한 언니 오빠들이 많이 하는 거래. 유튜버들도 많이 하고 있어
(가끔 엄마는 아이들에게 심한 뻥쟁이가 되곤 한다.)
그래요? 뭐 하는 건데요?
조깅이나 가볍게 산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거야. 몸도 튼튼해지고 지구를 지키는 착한 일도 하는 거지. 너희들이 걱정하는 지구를 우리가 함께 지켜주는 거야

 

플로깅(Plogging)이란 이삭을 줍는다(Plocka upp)는 스웨덴어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조깅이나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플로깅은 요즘 국내에서도 생각있는 20~30대들 사이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혼자 하기도 하고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서 함께 하기도 한다. 운동도 되고 지구를 지킬 수 있으니 아이들과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엄마아빠의 합심으로 ‘플로깅’이 새해계획으로 꼽혔다

 

#근데..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요

유난히 따뜻했던 지난 주말. 아이들과 첫 ‘플로깅’에 나섰다. 집게와 봉투, 물을 준비해 자주 가는 동네 뒷산으로 출발했다. 가끔 가는 뒷 산인데도 새로운 것을 한다니 무언가 설렜다. 아이들도 비슷한지 쉴 새 없이 재잘재잘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막상 입구에 도착하니 아이의 표정이 이상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니 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는 산책이랑 비슷해. 산을 걸어가다 쓰레기를 발견하면 줍고 계속 산책을 하는 거야’라고 설명하자 다행히 표정이 밝아진다.


플로깅을 할 때 집게와 장갑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막상 우리는 깜박했다!)
엄마, 아무래도 나쁜 발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나쁜 발?
쓰레기통까지 가기 귀찮아하는 발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산에 쓰레기들이 많죠. 그냥 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산이 많이 아팠겠어요. 우리가 착한 발이 돼서 쓰레기를 없애야겠어요.


걱정과는 달리 곧 아이들은 쓰레기 찾기에 경쟁이 붙었다. 아이들은 따뜻해지며 말랑해진 숲길을 다람쥐처럼 누비고 다녔다. 지나가시는 분들이 칭찬을 해주자 어깨까지 으쓱거렸다. 1시간 정도 숲길을 걷자 아이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꽤 운동이 되는 모양이었다. 손에 든 봉지도 어느새 쓰레기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지구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플로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좋은 일은 같이 해야 한다며 친구들을 모아보겠다고 했다.(열심히 아이들을 말리고 있다.) 플로깅이 무언가 거창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어렵지 않았다. 몇 시간씩 한다거나 쓰레기를 아주 많이 주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은 플로깅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한다. 길을 가다 만나는 쓰레기를 예전보다 유심히 보고는 가져갈까?라고 물어본다. 기특하게도 날씨가 풀리면 또 가자고 먼저 말해준다. 플로깅은 아이들이 지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단초'가 돼 주었다.


담배꽁초, 마시다 만 커피, 술병 등 대부분 어른들의 흔적들이었다.  집으로 가지고 온 쓰레기는분리수거를 해서 버렸다.




[Interview] 9살 아이에게 듣는 '플로깅'


Q. 오늘 처음으로   플로깅을 해봤는데 괜찮았어?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는데 재미있었어요! 예전에는 산에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지 몰랐어요. 산이 아팠을   것 같아요. 왜 사람들은 쓰레기를 막 버릴까요?


Q. 음….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왜 쓰레기를 막 버릴까?

아무래도 나쁜 발들이 있는 것 같아요. 쓰레기통까지 가기 귀찮아 하는 발 말이에요. 건강해지려고 산을   걸으면서 쓰레기로 산을 아프게 하는 건 정말 나쁜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쓰레기를 잘 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쓰레기를 되도록 적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어요.


Q. 플로깅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집게랑 봉투는 꼭 있어야 하고 옷은 편한 게 좋겠어요. 긴 옷을 입으면 앉을 때 자꾸 끌려서 불편하거든요. 참! 걷다 보면 목마르니까 물도 챙겨야하고요. 혼자하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면 가족이나 친구랑 같이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어때? 플로깅 계속 하고 싶어?

착한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아요.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요. (9살이지만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다.) 매일은 못할 것 같지만 한달에 몇 번 정도 계속 하고 싶어요. 지구도 우리도 건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다음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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