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사를 읽다가 기분이 매우 씁쓸해졌다. 업계 원로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PR을 너무 어이없이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탈홍보 얘기가 늘어나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다를까 기사 밑에는 현직인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결국 그 기사는 꽤 오래 인기기사로 올라가 있었고 편집장은 사과 댓글을 달았다.
그는 꽤 잘 나가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였다.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분야에서 롱런한 비결이 '자기 관리와 사람 관계'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뭐 이상할 내용이 있겠냐 싶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다 보면 어떻게 2020년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자기 관리에서 옷을 잘 입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인터뷰할 때 같은 옷을 입어 본 적이 없다면서. 외신을 즐겨보는 것은 해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있지만 여자 아나운서의 옷을 보기 위함이라고 했다. 또, '사람 관계'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필요한 것을 보내주고, 화장품이나 옷 정보를 빠르게 공유해주고, 기사가 뜨면 바로 감사 인사를 해서 기자의 프라이드를 올려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기자에게 선물 받는 PR인임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가장 눈쌀을 찌푸린 것은 여성들에게 한계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본인의 경험을 보면 여성들이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했다. 남성들이 더 융통성이 있고 시야가 넓다고 했다. 요즘 실무진들이 많아진 것은 여성을 우대하기 때문이라며 실력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고 했다. (하아!)
이 기사를 본 혹자는 기사의 탈을 쓴 폭력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십 년 넘게 해온 일이 업계 선배의 몇 마디에 쓰레기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인터뷰 기사를 쓴 매거진을 절독하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나 또한 시대착오적이고 꼰대스러운 인터뷰를 보고는 매우 화가 났다.
불현듯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첫 발을 떼던 때가 생각났다. 최종 면접을 보던 날, 당시 사장님은 나에게 질문을 하는 대신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 계셨던 선배로서 질문을 하고 싶은데....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본인의 생각을 매우 진솔하게 설명해주셨다.
커뮤니케이션은 화려하거나 바로 결과가 나오기 어려운 일이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요.
하지만,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인식을 넘어
신뢰를 쌓게 하고 영향력을 만들어내요.
그 중심에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와 콘텐츠가 있어요.
특히,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신뢰'가 매우 중요해요.
다행히 나는운이 좋게도 업에 대한 철학과 좋은 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에서 첫 발을 뗐다. 그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초심을 지켜오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인터뷰를 했던 그 분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광고비와 기자 관계가 좋은 기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옆 회사 언론홍보 담당자는 잘 나온 우리 기사를 보고 기자에게 어떤 짓(?)을 했냐고 물었다. (사실 우리 회사의 광고비는 없다 싶을 정도의 수준이다.)
사실 나는 어떤 짓을 한 것이 없다. 회사 관련 정보를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할만한 콘텐츠로 만들어 기자에게 전달했다. 기자도 내용에 공감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기사화했다.
커뮤니케이션을 '관계'라고만 읽어서는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은 함께 나누다는 뜻의 라틴어(communis)이다. 즉,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은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와 콘텐츠'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