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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안전지대, 필리핀

BGC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

by JOYCOCO

마닐라의 뜨거운 공기, 분주한 거리,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묘한 긴장감. 필리핀, 특히 마닐라에 살면서 최근 부쩍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바로 치안의 불안정성이다. 한때는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지역마저도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이제는 필리핀 어디에도 완벽한 안전지대는 없다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BGC, 무너지는 안전 신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닐라의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GC)는 한국 교민들에게 '안전한 성지'로 통했다. 깔끔한 거리, 잘 정비된 인프라, 그리고 밤늦도록 활기를 띠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은 이곳이 필리핀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BGC에서도 몇 건의 강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곳의 안전 신화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5년 5월 10일, BGC의 한 고급 콘도미니엄 앞에서 한국인 거주자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에게 휴대폰과 지갑을 빼앗기는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같은 달 BGC 중심가의 쇼핑몰 근처에서도 한인 유학생이 귀가 중 칼을 든 강도에게 위협당해 소지품을 빼앗긴 사례도 있었다.


POGO 단속과 범죄의 연쇄 반응

이러한 치안 불안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필리핀 정부가 대대적으로 단속했던 온라인 도박 조직 POGO(Philippine Offshore Gaming Operators)의 영향이 크다. POGO는 한때 필리핀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불법적인 자금 세탁과 인신매매 등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 정부의 단속으로 POGO 조직원들의 자금줄이 끊기면서, 이들이 생계를 위해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가 급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강도, 납치 등 강력 범죄 발생률이 POGO 단속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선거 정국이 드리운 그림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필리핀에서는 선거가 진행되면서 정국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선거철에는 경찰력이 선거 관리와 질서 유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찰력의 분산은 곧 치안의 허술함으로 이어지고, 그 틈을 타 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제가 아는 지인 중 한 명은 시내 한 복판 번화한 쇼핑몰 앞에서 권총으로 위협하는 괴한에게 아이폰을 빼앗기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리핀의 부족한 경찰력과 허술한 치안 상태는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넓은 지역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경찰 인력, 그리고 장비의 노후화는 범죄 예방과 진압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또한, 경찰의 낮은 임금과 부패 문제 역시 치안 공백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은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5만 원에 총기 구입이 가능한 현실

필리핀의 치안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불법 총기 문제이다. 우리 돈 5만 원 정도면 손쉽게 불법 총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누구나 쉽게 총기를 입수할 수 있다는 점은 이러한 총기가 언제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의 상당수는 총기를 이용한 위협과 살인으로 이어진다.


생존의 지혜: 목숨이 우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리핀에 거주하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불행하게도 총기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면, 순순히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나 가방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최근에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25년 4월 20일 필리핀 앙헬레스시 코리아타운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오토바이를 탄 2인조 강도에게 피습당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또 지난 2025년 3월 7일에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말라테구 번화가에서 한국인 A 씨가 강도들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사건 모두 백주대낮에 인파가 많은 곳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재산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생명은 단 하나뿐이다.


필리핀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사람들을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변해가는 치안 환경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제는 '안전한 필리핀'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경각심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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