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산책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멧돼지를 만난다. 야생에서 마주치는 멧돼지는 무섭다. 덩치큰 멧돼지는 싱가포르 정글의 최상위 포식자다. 보통 별관심 두지 않으면 멧돼지가 피해 가기는 하지만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는 조심해야 한다.
싱가포르에는 야생동물이 참 많다. 울타리 없는 동물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근무하던 곳에는 빈번히 원숭이 무리가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다 간다. 야생에서 만나면 원숭이는 더 이상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 두려운 존재이다. 공격성이 상당하다. 공원을 산책할 때 땅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가끔 알록달록한 뱀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밖에 한국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새나 곤충들도 곧잘 마주친다. 공원 표지판에 'BeeCareful'이라고 써놓은 재미난 경고문구가 생각난다. 번역하자면 '벌조심' 정도가 될 텐데, 그만큼 벌도 많다. 자전거를 타다 벌에 쏘여서 몇 번 고생한 기억이 있다. 낮에는 너무 더워 야간 자전거 라이딩을 많이 즐겼다. 한밤중에 정글을 질주하다 보면 박쥐가 헬멧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가끔은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마치 외계생명체처럼 보이는 큰 박쥐를 마주칠 때도 있다. 코모도 도마뱀을 마주칠때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야생닭은 너무 흔해서 눈길도 잘 안가게 된다. 언젠가 한번은 두무리의 수달이 영역다툼을 하면서 전쟁을 하는 장관을 마주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야생동물을 철저히 보호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죽이거나 포획해서는 안된다. 가끔 사람이 멧돼지의 공격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와 관련한 해법에 관해서 주민 공청회가 진행되었던 적도 있다. 멧돼지 보호가 먼저인지 사람 보호가 먼저인지. 집에 뱀이나 원숭이가 들어왔다고 999(우리나라의 119)에 전화하면 사람보호보다는 야생동물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먼저 안내한다.
싱가포르에 처음 도착해서 시내로 가다 보면 녹색의 푸르름이 반겨준다. 그린시티를 표방하면서 자연을 잘 가꾸어 나가는 싱가포르의 모습이 참 부럽다. 주변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풀 한 포기 나무한그루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녹색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싱가포르는 평균기온을 1.5도 낮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후 온난화에 관하여 나오는 소식들과 비교하면 1.5도가 얼마나 큰 수치인지 감이 온다.
싱가포르의 진면목은 자연에 있다. 자연을 즐기기 시작하면 싱가포르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한번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