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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Sep 22. 2022

2019.07.10

#엄마의유산


수선할 옷, 밑창을 바꿔야 할 구두 등이 있어서 엄마가 늘 이용하던 수선집에 갔다. 그리고 수선집 아주머니와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정사진 속 모습이 정말 딱 엄마였어. 그 모습으로 여기에 오신 적도 있었거든. 나는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못 뵌 게 너무 속상해. 근데 딸을 보니 너무 좋네. 지난달에 남동생이 왔을 때 나 좀 울었는데, 이제는 안 울기로 했어.

혹시 그거 알아? 엄마가 종종 과일가게 통해 수선할 옷 가져다주시곤 했는데 어느 날은 수선할 부분이 없는 걸 보냈기에 왜 보내셨냐고 전화했더니, 언젠가 내가 그 옷을 이쁘다고 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입으라고 보내줬던 거였어. 주변 사람들까지 어떻게 그렇게 다 챙겼나 몰라. 엄마가 준 게 참 많아."

     

엄마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만나는 이, 가까운 분 들을 모두 맡은 역할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너머 진정한 ‘인간’으로 사람과 사람의 정을 쌓았던 점이라고 언젠가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가족은 한 동네에 오래 산 터라 집 주변에 인사를 나누는 분도 많고 주차, 청소, 택배 등으로 도움을 받는 분이 많았다. 엄마는 그분들에게 늘 마음으로 다가가고 필요한 것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는 자식인 우리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지낸 수많은 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수선집 아주머니와 나눈 대화 때문일까? 아니면 날씨 때문일까? 오늘은 내내 엄마 임종하시던 날이 생각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준 책자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했고 임종이 다가올 때의 현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그 책자에 적힌 대로 일어났다.


엄마의 마지막 숨은 내가 간호사를 부르러 간 사이에 일어나서 남동생만 볼 수 있었지만, 혈색이 변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한 인간으로, 자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엄마의 마지막 날, 내가 보낸 그 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 내가 간호사를 부르러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평화상조 담당자와의 통화를 내가 하지 않고 조금 더 엄마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때 무엇을 했든지 분명, 하지 않았을 행동을 떠올릴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날은 평생 가장 진하게 기억나는 날 중 하루가 되겠지.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살림, 2017, 9쪽     


오늘 읽은 이 문장을 기억하고 곱씹어 본다.

나에게 끊임없이  것을 남겨주는 엄마, 이것도 엄마의 유산이네.     

식탁보와 쟁반을 좋아했던 엄마. 이것도 작은 유산이 되었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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