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말과행동으로나누던사람
옛날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보다가 엄마의 컬러 감각이 보이는 사진이나 야외 커피숍 테이블에 펼쳐진 손수건 사진 등을 보며 웃는다. 엄마와 이런 감각에서 정말 깊이 연결되어 있어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엄마의 더 나이 든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가 내 일을 더 잘해 돈을 잘 벌게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무척 아쉽고 슬프다.
사진 속 엄마가 너무 멋져서 계절과 날씨를 만끽하며 사시던 분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서글프다.
엄마가 말과 행동으로 멋지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나중에 자식들에게 정말 큰 무형의 재산이 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엄마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6월 11일
#엄마의이름
엄마 1주기에 맞춰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소식지를 받았다.
소식지에 실린 엄마 이름 앞에는 ‘고인’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이 단어가 아직 너무 생경하고 낯설다. 단어 하나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하지만 이 단체를 통해 나누고 기부를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난달 내가 SNS에 적어둔 글을 보고 엄마 소식을 늦게 안 한 지인이 엄마 이름으로 나누어준 마음도 정말 큰 위로이자 감사였다. 누군가가 세상에서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도 더 이상 불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엄마들의 삶은 자신의 이름보다 엄마로 사는 삶이 대부분이겠지만. 소식지를 받고 엄마 이름을 보며 반가웠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6월 13일
#엄마와떠난여행 #엄마가남긴말
엄마가 투병 중이시던 2018년에는 우체국 사보 연재를 위해 한 달에 한 번 지역의 우체국에 취재를 다녔다. 우체국을 지역의 거점으로 두고 쓴 여행 기사 작업이었다. 취재는 당일로 다녀올 때도 있었지만 하루에 만나야 할 사람이나 장소 등을 생각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 1박 2일로 다녀왔다. 유독 먼 곳으로 떠났을 때도 있었지만 가까운 지역의 우체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엄마는 편찮으시기는 했지만, 약이 잘 듣고 있어 내 출장에 종종 동행하셨다. 내가 우체국 담당자를 만나 인터뷰하며 취재하고 있으면 엄마는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공원을 걸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함께 식사하고는 했다. 그때 그 시간은 덤으로 얻은 엄마 딸 여행처럼 보냈던 것 같다. 가을 이후에는 엄마가 버스를 타고 함께 오래 걷는 여행을 못 하게 되어 혼자 취재를 다녔다.
오늘 논산에 다녀오느라고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그런데 엄마의 문자 속 말들이 다시 귓가에 들리고 눈에 보여서 예전에 엄마와 주고받았던 문자를 찾아보았다. 엄마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엄마의 문자는 띄어쓰기도 틀리고 오타도 있었지만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말 무사히 목적지도 착도 감사한 일이다.
많은 것에 감사를, 사랑을 느끼고 살 수 있게 해준 엄마.
몇 년 전 친구와 경주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벚꽃축제 기간이라 버스가 만석이었고, 유독 외국인도 많아 정말 시끄러웠다. 기사님도 좀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나는 엄마의 이 문자를 떠올리고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기사님 좌석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출발 전 기사님이 그 음료를 들고 다니며 “이거 어느 분이 주셨나요? 주신 분? 어디 계세요?”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미소를 지으셨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기사님께 에너지와 웃음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끊임없이 하는 말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귓가에 남는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고인 추모 기부.
부고 소식을 듣게 알았거나, 조문가지 못했을 때
이곳을 통해 고인 추모 기부와 기도를 요청하곤 한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