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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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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벤치 이야기

올 초 서울숲에 갔다가 우연히 벤치에 다양한 명패가 붙어있는 걸 보게 됐다. "큰 나무였던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부모님을 기억하며", "사랑합니다" 등등의 메시지가 적힌 명패가 붙은 벤치들을.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서울 그린트러스트에서 일정 구간, 부분 벤치를 입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언니, 남동생과 의논해 벤치 하나를 입양했다. 엄마 생신에 맞춰 얼마 전 엄마 이름 담은 명판이 붙고, 얼마 전엔  달리기 해서 그 벤치에 앉아있다 왔다. 벤치 입양에 관해 문의하고, 메일을 주고받으며 당시 입양 가능한 구역을 알려주며 "되도록 직접 다녀오시고 난 뒤에 결정하시면 좋습니다." 란 메시지를 받고, 며칠 뒤 서울숲을 찾았다. 당시 입양 가능한 벤치는 주로 서울숲 3번 출입구 근처 체육공원 쪽이었는데 나는 큰 나무 아래의 벤치를 골랐다.

미루나루로 생각되는 나무 그늘 아래. 나에게 엄마는 큰 나무, 그 자리에 뿌리내려 그늘도, 열매도 다 주는 존재니까. (엄마 양 옆으론 BTS팬이 기부한 벤치가 있다고.^^)


벤치 명패에 넣을 메시지를 고민하다가 나와 남동생은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해줄 걸, 말할 걸 ㅡ이렇게 껄껄 거리며 살지 말자." 던 엄마의 말을 생각했다. 중간에 '후회하며 살지 말고'를 넣을까, 하다 남동생이 "누나, 그러면 완전 꼰대의 말이 될 것 같아. 문법상 좀 부족한 말이여도 저렇게 쓰자!" 결정해서 지난달  명패가 붙었다. 얼마 전 운동하며 일부러 서울숲으로 달려가서 벤치에 앉아있다 오기도, 5년 만의 건강검진-대장내시경 마친 뒤-에도 이곳을 찾았다. 어떤 행위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일 아니라 살아있는 이를 위한 일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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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분, 성당의 몇 분에게 연락드리며 말씀드렸는데 공원 가며 '꼭 찾아볼게, 앉아볼게 하셨다.' 기억하고, 기억되는 삶은 엄마로부터 배우고 나누어지는 것들이 크다. 코로나 시기 나도 정신적 피로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은데 그 사이에 공원의 벤치를 통해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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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동안 각기 다른 때 다녀오시고 나에게 사진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남동생네 가족은 어제 서울숲 나들이 갔다 벤치에 앉아있다 왔다고 나에게 사진을 보냈다.


다녀오신 분이 보내준 인증사진도 반갑고, 명패 속 엄마 이름도, 반갑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름으로 기억될 수 있는 삶. 우선 가족부터 그 이름을 오래 바라보고 불러줘야겠지. 명패 속 저 메시지를 읽으면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돌아가신 뒤 생각해보면 엄마가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 엄마의 생각, 등을 자연스럽게 많이 나누어주었다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자식인 우리가 그래도 '엄마라면 이랬을 거야.'라고 확신하며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천주교에서 11월은 위령성월이라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달이다. 그 시작을, 엄마의 기억과 함께.

#로사리아의선물 #서울숲벤치입양 #서울그린트러스트



[카카오맵] 엄마벤치 폴더 http://kko.to/klFdrDFYo

http://www.greentrust.or.kr/벤치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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