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나 Nov 19. 2020

028

유골함에서 봉안담으로

작년 이후 고민, 생각만 하다가 지난 달 성당 사무실에 알아보고 진행된 오빠의 묘 개장/이장 작업. 어른들에게 말하면 "정말 큰 일하네. 힘들지만 하고 나면 마음이 좋을 거야."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100% 이해하게 됐다.


음력으로 엄마 생신날 오빠를 엄마 곁에 안치할 수 있어서 정말 놀라운 날짜, 오빠 스스로 선택한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하게 됐다. 어제 밤부터 내내 억수로 비가 오다가, 엄마 모신 곳으로 가는 길부턴 비가 그쳤고 안치하는 시간에는 우산 없이,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있었다.


이번 엄마 기일에 복사하고 코팅해 둔 기도문을 같이 읽고, 늘 장례미사에서 듣거나 부르게 되는 <이 세상 떠난 형제> 를, 그 어떤 때보다 애틋하게 부를 수 있었다. 엄마의 생일날, 엄마 곁으로 돌아간 오빠. 가족들의 마음이 정말 좋다. 따뜻하다. 기쁘다.


나는 엄마에게 한없이 착한 딸이고, 늘 마음을 헤아리는 딸로 살았던 것같은데 그건 내 이전 오빠가 사고로 돌아가셨던 것도 큰 몫이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 운명 안에 내 삶 안에 죽음이 있고, 생명에 감사함을 크게 느끼고 보통 사람들보다 좀더 표현하고 나누며 살게 된 것도. 내가 태어나고 5개월이 있다 사고로 돌아가신 오빠.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데 그래도 이 큰 일을 치르며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오빠에게, 큰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맘이다. - 어쩜 자식들 중 가장 짧은 시간 엄마와 머물렀던 이가 엄마 옆 자리에 있게 되니, 인생은 어찌 보면 또 공평한 걸까?   - 엄마를 생각하면 파란색이 떠오른다고 엄마를 사랑하는 이가 전해준 염색 튤립까지. 사랑은 사랑으로 또 꽃 피고 나눠짐을 오늘, 엄마 생신날에도 느꼈다!

-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영원하죠. 그게 가슴이 아픈 거고요. 하지만 희망은 아주 잠깐 동안만 사라진 거예요. 당신이 찾기 전까지만 사라진 거예요. 제가 당신을 위해 그 희망을 꼭 잡고 있을게요. 당신의 희망은 제가 잘 가지고 있을게요. 당신의 감정이 헛되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아요. 죽음이 가지고 있는 힘에 그 이상의 힘을 부여하고 싶지도 않고요.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우리의 관계, 사랑, 희망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서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상실을 겪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89p


"고인을 애도할 때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혼자만 덩그러니 슬픔의 섬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때 치유된다. 누군가를 잃어 슬퍼하는 이에게 고인에 대해 묻고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다른 사람의 눈에서 자신의 슬픔을 볼 때, 내 슬픔이 의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힘들어할 때, 나의 슬픔을 보아주는 다른 사람들 덕분에 처음으로 생에 대한 의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길 수도 있다."

-94p

-

슬픔에는 반드시 목격자가 필요하다는 책 속의 말처럼, 나는 작년의 이야기도 그렇고 계속 쓰고, 공개하고, 공유하며 나에게서 벗어나 먼 사람에게 닿기도 하고, 인간이란 보편적 존재가 모두 겪을 수 밖에 없는 공평한 일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혼자 그리고 오직 가족끼리만 겪고, 전부 소화시킬 수 없던 큰 일이라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적어두고 싶었던 것 같다.


-

성당 사무장님, 묘원 관리소장님, 엄마 때의 장례지도사님, 수녀님, 엄마의 성당분들, 나의 사람들과 랜선 지인들, 엄마와도 알고 지내던 수녀님, 신부님, 또 엄마 돌아가신 뒤에 인연이 된 신부님과 수녀님•• 많은 분들의 도움과 기도 덕분에 오직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닌 일로,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

위령성월, 곳곳 단풍의 아름다움에 황홀했다가, 시간이 흐르며 그 나뭇잎들이 잎을 떨구는 것을 보는 것도 이 성월의 축복과 은총인 것 같다. 떨어지고, 자리를 내어주는 그 자연스런 현상을 모두가 바라보며 지내는 달이니까. 소멸, 순환, 버려야 사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달이니 말이다.


가장 짧은 시간 자식으로 산 오빠가 엄마 생신날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2020.11.19


매거진의 이전글 0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