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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18. 2020

027

관에서 유골함으로

"윤달은 이미 지났는데 해도 될까요?",

"천주교에서는 11월이 위령 성월이잖아요. 그래서 이달에 맞춰하는 분도 있어요.",

"개장 유골 화장은 매일 들어가도 예약 마감인데 도대체 어떻게 예약을 하는 거죠?",

"11:59:59 시간 초단위까지 맞춰놓고 있다가 12시 땡 하고, 가족들 몇 명이 같이 홈페이지 들어가 보세요. 오늘부터 15일 후에 맞춰 예약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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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오빠 묘 개장과 이장을 알아보다가 천주교 묘원 사무실과 담당 성당 사무장님과의 통화를 몇 번 주고받으며 내가 준비해야 하는 서류, 직접 사무실에 들러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윤달이 낀 한 해라 올해가 가기 전 묘에서 화장해  봉안담, 납골당으로 모시려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또 개장 유골 화장의 날짜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화장 가능한 날짜에 예약하면서 맞춰지는 거였다. 남동생과 내가 며칠 전 초시계까지 있는 시계를 보고, 12시 땡 하고 들어가 예약에 성공한 게, 오늘 날짜였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맞춰준 그 날짜에 개장하고 유골을 수습해 화장장인 국립 승화원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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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묘는 광탄의 한 성당 뒤편에 있었다. 양지바른 곳이지만, 다른 곳보단 좀 안쪽이어서 그늘 진 경우도 많았고, 다른 곳보단 좀 푸릇함이 덜했던 자리. 간혹 묘를 파 보면, 시신에 물이 고여있거나,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고도 하던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엔 이미 어느 정도 묘가 파져 있었고, (오늘 비가 온다고 했고, 오늘 개장하는 이가 4기여서 어제부터 작업했다고 했다.) 묘비도 이미 깨져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찍어둔 그 사진이 얼마나 귀한 사진이 됐는지...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묘 안에 관까지의 흙이 파져 있었다. 관 위의 십자가 표시가 정말 선명했다. 완전히 썩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된 그 관 속에 4살짜리 아기인 오빠의 시신이 있었다. 장례지도사와 통화할 때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 유골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개장을 도와주시는 기사님들이 하나씩 유골의 부분을 모아서 종이관 속에 넣었고, 우린 관리소장님과 기도 양식에 맞춰 기도 했다. 노래로 연도 하는 동안 종이관 속의 오빠가 우리 앞에 왔다.


완벽히 보이는 부분은, 두개골과 이였다. 해골인데, 전혀 무섭거나 오싹한 게 아니라, 너무 귀엽고 예뻤다. 고왔다. 그리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아빠는 살짝 손으로 머리를 감쌌고, 나는 그저 내 나이만큼의 시체에, 저만한 아이를 잃었을 엄마, 아빠의 마음에도 오래 머물며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수습해 오빠 이름이 담긴 종이관을 들고, 윗편의 친할머니 묘소에 들러 인사드리고, 성가를 하나 듣고, 주모경을 바치고 절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11월 이맘 때 그 묘원에 그렇게 예쁜 단풍나무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고, 내가 5개월일 때 돌아가셨기에 기억이 없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동생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잠시 단풍이 내려앉은 곳이 종이관을 내려두고 오빠와 단풍 놀이도 하고, 세상을 떠난 형제를 위한 기도도 바쳤다. 남동생이 크게 울었는데 아마도 그건 본인도 오빠 나이만한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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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예보였던 오늘, 개장 하던 때엔 비가 오지 않았던 것, 잘 몰라서 여쭤보는데 모든 분들이 상세히,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마음으로 큰 일은 준비하는 것 같았다. 벽제 승화원에 도착해서는 오늘도, 여전히,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상조회사 버스로, 다양한 사람들로. 일반 시신은 화장에 한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데 개장 유골의 어린이였던 오빠는 20분이면 충분했다. 유골이 화장되어 수골실에서 한 줌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 내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생긴다.


오빠의 묘를 개장하고, 이장하는 주간.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축복을,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에겐 평화의 안식을 청한다.  내일 엄마 곁에 모시기 전까지는 우리 집에, 아빠와 안방에서의 하룻밤을 보낸다. 동생이 "옆에 장난감도 좀 놔 줘." 라는 문자에 얼른 조카들의 장난감을 갖다놨다.


슬픔 너머의 것들이 있고, 그것이 가족과 살아있는 이들에게 정말 큰 유대와 사랑을 남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랑은, 이 시간은 나에게 또 무엇을 남길까.


그 무엇보다 아빠 살아계실 때에 아빠가 아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좋다고, 묘지가 간혹 그늘이라 염려했던 것들 하나도 없이, 고운 흙 아래 있던 모습을 눈으로 우리가 직접, 함께 봤다는 것도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간 뒤 올려둔 인스타그램 글을 읽고 오늘 가장 많이 운 것 같다. 아래 덧붙이며.


내일이 엄마의 음력 생신인데, 내일 엄마 곁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이건 오빠가 스스로 택한 날짜가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된다.


가을날의 개장 준비
오늘 읽으려고 가져간 책 <의미수업>, 많은 것들 도와주신 프란치스코 소장님에게 선물한 아씨씨 기념품.
안방에서 아빠와 하루 보내고, 엄마의 옆으로 갈 오빠
남동생의 글. 오늘 이 글을 읽고 가장 많이 운 것같다."울 땐 울어야지."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듯.

*오빠 관련 글은, 개장과 이 과정은 꼭 좀더 잘 정돈된 글로도 정리하고 싶다! 초고이지만 그저 오늘의 하루를 공유해본다.


함께 기도하고, 기억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요즘 시편 읽기 중인데, 개장신고서를 여기 담아주셨다. 시편의 구절이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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