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3일> 성모당 편을 보고, 책 원고를 찾았다.
대구는 덥기만 한 도시가 아니다
대구 도심에는 대구 가톨릭대 유스티노 캠퍼스가 있다. 신부들은 대부분 지역에 따라 교구별로 신학교에서 공부한 신학생이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고 난 뒤 각 지역의 성당으로 발령받아 신부로서의 사목활동을 시작한다. 평범한 신자였던 이들이 어떤 종교적 부르심과 개인의 선택으로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사제가 되는 것이다. 서울에는 혜화동에 신학교가 있는데, 대구에는 비교적 도심 가까이에 신학교와 교구청, 성직자 묘원과 성모당이 있다.
(성모당: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
HODIE MIHI, CRAS TIBI
대구시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 입구 기둥에 새겨진 라틴어 글귀인 이 문장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적혀있다는 이 문장은 삶의 일부인 죽음을 우리가 타인이 되어 잠시 바라보며 삶의 유한함, 의미 등을 찾아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오월, 장미의 계절인 이 달에는 그리 크지 않은 묘원 담벼락과 내부 곳곳에는 작년에도, 또 몇 년 전에도 피었을 장미가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는 이들 사이에서 죽음 후 기억되고, 기억하는 방법에 관해서도 잠시 생각해본다.
성직자는 자신의 가족을 만들 수 없지만(사제 서품을 받을 때 독신 선언을 한다.) 종교적 도구로 사는 삶을 선택했기에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남녀노소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다. 때가 되어 하늘로 돌아갔을 때에도, 가족과 같은 신자들이 찾고, 기억하며 기도한다.
성직자 묘원에는 사제 서품 받은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 이도, 한평생을 사제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사람은 떠났어도, 묘비석 안에 담긴 정보로 그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죽음의 공간(화장장, 묘지, 납골당 등)을 대부분 도심 속에 두지 않고, 먼 곳에 두는데 대구에서는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종교인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진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체감하긴 쉽지 않은데, 대구에선 그것이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가능한 셈이다.
성모 성월의 성모당의 야외 미사
지난 2018년은 성모당이 100주년 되는 해였다.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성모 발현지를 따라 만든 기도하는 곳으로 많은 이들이 일부러 기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에 미사가 있어서 일부러 그 미사 시간에 맞췄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나무 그늘, 천막 아래서 미사 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전 안에서 드리는 미사가 아니라, 바깥에서 햇빛과 초록 나무 아래서 드리는 미사의 경험! 묘원과 가까이 있는, 또 살아 있는 이들이 이런 야외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그저 놀랍다.
<라틴어 수업> 뒷 표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
탄생과 죽음, 기념하고 기억하는 방법, 납골당과 묘지 안장•••
성지순례는 꼭 해외로 떠나 먼 곳을 다녀와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지역에 갔을 때 궁금했던 곳에서 미사를 드리거나, 또 그곳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알려고 하면- 이미 그곳이 순례지가 되는 것, 아닐까?
대구에서는 죽음을 생각하기 좋다
대구에서 이렇게,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도심 한복판에 가톨릭 대학교 캠퍼스가 있고, 그 가운데 신학대학과 성직자 묘원이 가까이에 있다.
신학생으로 공부하고 미래에 신부가 위해 나아가는 이들이 본인보다 훨씬 먼저 신부가 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곁에 두고 있다니!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하며, 내가 타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지, 좀 더 고민하며 오늘에 보다 집중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대구 일정 내내 챙겨 다닌 『라틴어 수업』의 책 속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대구는, 단순히 덥기만 한 곳이 아니다. 걷고, 사색하며, 삶에 대해, 자신의 종교 또는 우리가 각자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 보다 성찰할 수 있게 하는 도시다.
-추천 시기: 가톨릭에는 1년 12달, 각기 다른 의미가 있다. 그중 5월은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달.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장미가 가득 피어나 죽음이 그저 쓸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때에 찾아보자
-음악: Remember Me, 영화 <COCO> OST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코코.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경험을 할지, 그저 두렵고 슬픔에 빠져있기보다 이런 영화 한 편으로도 노래와 풍경 등에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
파리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또는 빈 소년 합창단의 노래. 종교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 대구이니, 그레고리안 성가도 좋고, 이런 합창단의 노래를 들어도 좋겠다.
-책: 《라틴어 수업》, 한동일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한동일 교수의 강의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이 책에선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등의 옛 문장은 물론 다양한 생각을 일깨운다.
-챙기세요: 눈부신 대구에서 선글라스와 손수건이 그렇게 필요했다. 울컥울컥, 눈물 나는 순간을 통해 눈이 부시는 삶을 한 번 더 살게 하는 도시다.
“죽음이 우리의 확실한 미래에요. 모든 인생에 있어서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죽음) 하나는 확실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삶에 있어서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살 것이냐 결국엔 이것인 거 같아요”
•• <다큐 3일> 마지막 부분, 성직자 묘원에서의 인터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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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을 어떤 한 가지 주제를 찾아, 느슨히 다니는 여행기를 쓰고 있었고, 원고가 마감된 후에 코로나 등의 이유로 여행서 출간의 어려움으로, 계약 해지한 후 몇 개월이 흘렀다.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시기 동안 국내를 향한 시선, 나의 관점 등을 키워가며 원고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성모당 앞에 가고 싶어 지고, 고해성사가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