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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Apr 23. 2020

어서와 독일은 처음이지

에라스무스 교환학생의 추억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유럽 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를 통해 프랑스 학생이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 가서 다양한 국적의 여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그린 영화였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이해하기도 하는 왁자지껄하고 풋풋한 20대의 청춘들을 보여주는,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였다. 나는 워낙 개인주의자라서 영화 속의 그들처럼 여러 명이 함께 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다른 문화권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픈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에라스무스 교환학생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꿈은 20대가 아닌 무려 30대 후반에서야 실현되었다.

추억돋는 풋풋한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핀란드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에라스무스 교환학생도 슬슬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온 다양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게다가 에라스무스 교환학생 장학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학금도 받고 다른 문화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Why not? 장학금은 교환학생을 할 국가에 따라 다른데, 물가가 비싼 북유럽 쪽은 장학금이 더 많았고, 남유럽이나 동유럽 쪽은 장학금이 더 적었다. 내가 갔던 독일은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그런지 장학금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준비하는 과정은 꽤나 길었고(대부분이 기다림이었지만), 확정되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석사의 마지막 학기를 교환학생으로 보내기로 결심하고 우선은 학부 코디네이터를 찾아가 문의를 했다. 코디네이터는 우리 학부에서 교환학생이 가능한 몇몇 나라의 학교들을 보여주었는데, 유독 독일의 브레멘 대학교를 추천했다.

사실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별 매력을 느끼지도 않았다. 게다가 교환학생을 즐기려면 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날씨가 더 화창한 나라나, 영어를 더 공부할 수 있는 영국으로 가고 싶었다.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지원할 수 있었던 국가는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코디네이터는 특히 벨기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비자 절차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더 까다로우며 비자를 미리 신청하고 가야 하는데 아마 안 될 거라고 지원하지 말라는 식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는 벨기에가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한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아마 그래서 아시아인에게 까다롭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환학생은 최대 5곳을 지원할 수 있었는데, 우선 모교에서 1차로 승인을 받은 후 교환학생 학교에 2차로 지원해 최종 확인을 받는 형식이었다. 나는 내가 원했던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와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가 추천한 독일을 지원했는데 모교에서는 독일 브레멘 대학교로 승인을 해 주었다. 이쯤 되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지원만 하면 돼)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교환학생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독일의 브레멘 대학교에 지원을 했고 최종 확인을 받았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진행하면서 지도 교수에게도 교환학생에 관심이 있다고 미리 상의를 했고, 가기 전에 전공 필수 과목들을 이수해 두면 괜찮다는 답변을 듣고 전공 필수 과목들을 모두 이수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독일 브레멘이라는 도시로 향하게 되었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독일은 모든 것이 불편했다. 그리고 불친절했다.


알디에 가서 심카드를 샀다. 핀란드에서처럼 심카드만 끼우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권을 들고 우체국에 가서 본인 확인을 해야 한단다. 우체국에 가서 여권을 제시했는데 기계가 여권을 읽지를 못했다. 우체국 직원은 여권이 읽히지 않으니 영상 전화로 여권을 확인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려고 했더니 또 한국은 영상 전화로 확인 가능한 국가가 아니란다. 이 심카드를 쓰려면 우체국에서 확인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른 우체국에 다시 갔다. 여전히 여권이 읽히질 않았다. 그렇게 우체국을 다섯 군데 정도 돌고 나서 포기했다. 그래서 심카드는 같이 교환학생을 온 다른 나라 친구한테 주고 그냥 핀란드 전화번호를 썼다.


간단한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슈퍼마켓에 갔는데 직원이 계산하면서 뭐라고 한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고 간 상태라서 "Excuse me?"라고 했는데 여전히 독일어로 말한다. "I'm sorry but do you speak English?"라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여전히 무표정하게 독일어로 말하더니 한숨을 쉰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슈퍼마켓을 나왔다. 붙잡지 않는 것을 보니 다행히 별 일 아니었나 보다.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처럼 인터내셔널 한 큰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쓸데없이 불친절했다. 본인들이 오히려 "I'm sorry..." 하면서 영어로 유창하게 도와주던 쓸데없이 친절한 핀란드인 같은 사람들은 없었다.


핀란드 거주 허가증이 있었지만 나는 국적이 대한민국이었기에 90일 이상 거주하게 되면 독일에서의 거주 허가증이 또 필요했다. 대학교 내에 있는 BSU(Bremen Service Universität)에서 거주 허가증을 신청해야 했는데, 온라인 예약 같은 서비스는 없었으며 마냥 줄을 서서 대기표를 기다려야 했다. 대기표도 일찍 끊겨서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그날의 대기표를 받지 못하면 돌아가야 했다. 학기 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한 달 정도 후에 신청을 했는데, 먼저 거주 허가증을 받은 한 한국 동생은 9시에 문을 여는 사무실 앞에서 새벽 6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서 거주 허가증을 신청했다고 했다. 만약 미비된 서류가 있으면 단칼에 거절하고 그냥 돌려보냈다. 그러면 그 서류를 준비해서 다시 줄을 서서 대기표를 받고 신청을 해야 했다. 게다가 업무 시간도 너무 짧은 데다가(주 3일 근무에 2일은 오전 근무만) 직원들도 불친절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커녕 왜 이렇게 불친절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 북적대는 게 싫으면 온라인 예약을 받던지.

핀란드에서는 온라인으로 서류를 첨부해서 거주 허가증 신청을 한 후, 역시 온라인으로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서 그 시간에 맞춰서 서류 원본을 들고 가면 끝이었다. 직원들 또한 친절하고 융통성이 있어서 부족한 서류가 있어도 일단 그날 거주 허가 신청을 할 수 있고 부족한 서류는 나중에 추가로 제출하면 되었다.

거주 허가증 신청 대기표를 받으려고 추위에 떨면서 줄 서서 기다리는 학생들.


학생 식당은 핀란드에 비해 비싸고 너무 맛이 없었다. 그리고 캠퍼스 내에 여러 곳에 적당하게 배치되어 있어 혼잡함이 덜했던 핀란드 학교 식당들과는 달리 캠퍼스 안에 거대한 하나의 학생 식당만 있어서, 점심 시간에 온 학생들이 모인 그곳에서 밥을 먹으면 너무 시끄럽고 복잡해서 밥이 코고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핀란드 학생 식당은 2.6유로의 저렴한 가격에 메인 메뉴 + 밥이나 면 + 빵 최대 2조각 + 샐러드 + 음료 최대 2잔을 담을 수 있어 정말 배부르게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핀란드에 있을 때는 생활비를 아끼려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곤 했는데, 점심 한 끼만큼은 학생 식당에서 푸짐하게 식사를 했었다. 하지만 독일 학생 식당은 가격도 비쌌고 샐러드도 물도 따로 돈을 다 받았다. 그래서 학교 식당을 잘 가지 않았다. 맛도 없고 시끄럽고 비싸서.

독일 학생 식당 음식(좌)과 핀란드 학생 식당 음식(우)


현금과 종이.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정말 많았다. 아직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냥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금으로 탈세나 돈세탁이라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집주인 아저씨도 집세를 꼭 현금으로 달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다. 마트에 가면 카드로 결제하는 게 더 오래 걸린다. 기계가 느려서.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접촉이 덜한 카드로 결제해 달라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현금으로 접촉을 하면서 결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독일어 수업을 하는데 첫 수업 때 종이 사용료로 인 당 8유로 정도를 추가로(물론 현금으로!) 내야 했다. 선생님과 수업 내용은 정말 좋았지만 수업마다 불필요하게 종이를 낭비했다. 그냥 화면으로 띄우거나 화이트보드에 쓰고 지우면서 수업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일일이 다 종이에다가 펜으로 쓰면서 종이를 사용하고는 버리는 것 같았다. 다음 수업에 다시 사용하지도 않는 것 같아서 수업 내내 버려지는 종이 양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종강 후 피드백에 그걸 써서 제출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냥 화이트 보드에 다른 색깔로 쓰면 안돼나요.

이렇게 핀란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문화 충격을 독일에 와서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핀란드가 엄청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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