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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May 29. 2019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 중요하다

이번 주에 졸업 신청을 했다. 논문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한가해진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 바로 서머 잡을 찾아서 당분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는데 그게 또 스트레스였다. 나름대로 여유 있는 성격이라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여유로운 삶을 찾아 이곳으로 와 있어도 마음이 괜히 조급하다.

이곳에서 2년 반 동안의 석사 과정은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하면 정말 순조롭고 평화롭게 지나갔다. 논문을 쓸 때도 나와의 싸움이었을 뿐 그 누구도 내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석사를 마쳤을 때 허리 디스크와 위염, 그리고 어딜 가서든 견딜 수 있겠다는 깡다구를 얻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삶의 질이었다.

처음에 핀란드에 왔을 때는 이곳에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 한국 음식을 거의 안 먹었고 별로 그립지도 않았다. 한국 화장품이나 제품 등을 보내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하고 이곳에서의 물건을 사용하며 적응하려고 했다. 한국에 가지도 않았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서른이 딱 되었을 때 결혼하기도 싫고 안 하기도 싫었던 것처럼 이곳에서 평생 산다는 생각이 안 들기도 하고 한국에 돌아가기도 싫은 어정쩡한 마음이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지금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 지금은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 그래서 뜬금없이 언니에게 문자로 먹고 싶은 밑반찬과 음식을 줄줄이 나열하기도 했다. 비싼 한식당에 가기도 하고 아시안 마켓에 가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격의 몇 배를 주고 한국 음식을 사 오기도 하지만 성이 안 찬다. 밑반찬 문화에서 벗어나 생활하다보니 이번에 한국에 가면 무엇보다도 먹고 싶은 것은 소박한 백반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잘 늘지 않는 핀란드어에 있기도 하다. 작년에 독일에 교환학생을 가서 독일어를 배웠을 때 독일어가 쉽게 느껴질 정도로 핀란드어는 생소하고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영어를 계속 쓰게 되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외국인을 보면 영어로 얘기하려고 하는 핀란드인 덕분에(?) 내 핀란드어는 좀처럼 늘지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서도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 완벽한 현지인이 될 수 없겠다는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국민들도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 언어가 서툰 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려면 정말 뛰어난 자신만의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매우 어렵다. 한국을 떠나며 한국과 관련된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한국과 관련된 일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도 해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일자리를 찾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낙천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도 한다.


이제 불혹이 가까워지는 나이인데 아직도 내 인생은 흔들거리기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외줄 타기와 같은 흔들리는 인생을 내가 선택했으니 흔들거리면서 살아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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