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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Jul 22. 2019

핀란드에서 산다는 것

5월 말부터 핀란드와 스웨덴을 왕복하는 페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의 업무는 한국인 관광객 CS 업무이며 페리를 이용하는 한국분들에게 통역 및 전반적인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북유럽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매일 이렇게 많은 한국 관광객이 쏟아져 오는 줄은 몰랐다. 많을 때는 수백 명의 한국인을 상대하다 보면 입이 바짝바짝 마르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은 더더욱 많아서 같이 일하는 중국인 파트너는 나보다 훨씬 바쁘게 일한다. 이쯤 되면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이 페리를 먹여 살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주 고객은 핀란드인들이지만.

배에서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석양.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마치 페리를 관장하는 매니저급이라고 생각하고 엄청 자랑스러워하시는 분들, 한국에서 소중하게 가져오신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안겨주시는 분들,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 대부분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사실에 우선은 깜짝 놀라시고 그다음에는 자랑스러워하신다. 그리고 핀란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신다.


흔히 핀란드에서 사는 것이란 심심하고 지루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과 같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하루하루 다이내믹한 한국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문화적인 충격도 외로움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젖어들 수 있었다. 이건 핀란드라서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독일에 교환 학생을 가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핀란드에 왔을 때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자연, 사람, 그리고 편리함과 효율성에 있었던 것 같다.


풍부한 삼림과 많은 호수로 알려진 핀란드의 자연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처럼 웅장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꾸미지 않은 수수한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확실한 힐링을 제공한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사실 이것만으로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핀란드의 여름은 한여름에도 20도 정도의 적당히 시원한 기온과 햇살 쨍쨍한 날들이 계속되어, 해를 보기 힘든 어두운 겨울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던 핀란드인들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는 계절이다.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아 쨍쨍하고 맑은 시원한 날씨가 계속된다.

핀란드의 화창한 여름

반면 핀란드의 겨울은 매우 어둡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은 환하게 빛나는 겨울밤을 만들기도 한다. 10월부터 급격히 낮이 짧아지기 시작해 한겨울에는 오후 3시에 이미 깊은 밤처럼 어두워진다. 즐겁고 들뜨는 크리스마스 시즌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핀란드인들도 많이 있다. 나의 예전 핀란드 룸메이트는 햇살 대용 조명을 구입해 어두운 겨울밤을 그 조명을 쬐며 우울감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비타민 D는 필수이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는 핀란드의 겨울 또한 환하게 빛난다.

핀란드에서 가장 안도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핀란드인의 친절함에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핀란드인은 과묵하고, 수줍음이 많고, (엄청) 친절하며, 겸손하고, 소박하며 정직하다.

처음에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모를 때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너무 친절하게 최대한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들은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걸면 우선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고 나서는 엄청 유창한 영어로 알려주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내가 영어를 잘 못 해서 너한테 충분히 설명을 못 해줘서 미안해’라고 끝맺음을 한다. 나에겐 이미 엄청난 친절이었고 거의 완벽한 영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핀란드인은 과묵하다. 흔히 스몰 토크에 약하다고들 하며, 쉬는 시간을 가질 때도 각자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혼자 쉬는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래서 핀란드인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한다.

핀란드인이 한국인과 비슷한 한 가지 면모는 술이 들어가면 활발해지고 말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먼저 말을 거는 핀란드인은 대부분 술을 한 잔씩 걸친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행동하지 않으며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

핀란드인의 특징에 대해 재치있게 그려낸 Finnish Nightmares

편리한 시스템과 효율성 또한 핀란드에서 살기에 좋은 점이다. 흔히 유럽에 오면 느린 인터넷과 불편한 행정 업무 때문에 힘들다고들 하지만 핀란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의 행정 업무를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이용할 수 있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메일로 문의를 해도 그날이나 다음날 바로바로 답장을 보내주었으며 그 내용 또한 매우 친절하고 세부적이었다. 현금을 인출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으며 심지어 1유로 이하의 금액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편리한 생활을 하다가 독일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엄청난 문화 충격과 불편함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 대해서도 곧 글을 쓸 예정이다).


다행히 내가 운이 좋아서 이 모든 것이 수월했을 수도 있다. 이곳에서도 인종차별은 있으며 불쾌함과 억울함을 경험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곳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좀 더 존중한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물론 핀란드 전체 인구가 서울 인구의 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귀해서 소중하게 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사람에 대한 태도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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