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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Sep 21. 2019

탐페레 부심

핀란드 도시 이야기

처음에 핀란드 학교를 지원할 때 세 도시의 대학교 한 곳씩 지원했었다. 첫 번째는 핀란드 남서쪽에 위치한, 핀란드의 이전 수도이자 가장 오래된 도시인 투르쿠(Turku). 두 번째는 핀란드 중부에 있는 학생 도시인 이름도 뭔가 학구적인 위바스퀼라(Jyväskylä). 마지막은 내가 선택한 핀란드 제2의 도시인 탐페레(Tampere).


운이 좋게도 지원한 학교 세 곳에서 모두 합격 소식을 받았고 그때부터 복에 겨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핀란드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학교 랭킹도 확인해보고 학교 커리큘럼도 확인해보고 각 도시에 대해서도 찾아본 후, 결국 위바스퀼라와 탐페레 두 곳 중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분야는 문화 정책과 예술인 복지 쪽이었는데, 위바스퀼라 대학교에는 사회 과학 학부에 ‘문화 정책’ 석사 과정이 있었고, 탐페레 대학교에는 커뮤니케이션 학부에 ‘문화 연구’ 석사 과정이 있었다. 사실 두 곳 중에서 더 심도 있게 공부하기에는 위바스퀼라 대학교가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나에겐 너무 빡빡하게 느껴졌다. 반면에 음악, 공연 등 예술 쪽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처음 생기는 과정이라서 뭔가 부족한 커리큘럼이지만 신선할 것 같은 탐페레 대학교에 더 마음이 끌려서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그러나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위바스퀼라 대학교를 선택할 것 같다. 게다가 탐페레에 있는 세 개의 대학교가 통합되면서 이 과정이 사라져 버려 나는 이 전공의 최초이자 마지막 학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탐페레는 핀란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만약 다른 도시에서 공부를 했다면 그 도시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싼 집값에도 불구하고 수도인 헬싱키에서 사는 것을 꿈꾸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탐페레에 사는 것을 꿈꾼다.

탐페레는 두 개의 바다 같은 호수인 퓌하야르비(Pyhäjärvi)와 내시야르비(Näsijärvi) 사이에 포근하게 자리 잡은 도시이다. 핀란드 내륙 지방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로 호수를 이용한 수력 발전이 원동력이다. 공업 도시, 노동자 도시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고 하며, 레닌이 머물면서 1905년 혁명을 준비했던 곳이기도 해서 생뚱맞아 보이지만 탐페레에는 ‘레닌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핀란드의 대표적인 만화 캐릭터인 ‘무민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탐페레를 사랑하는 이유는 역시 아름다운 자연에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 곳이 있는데, 바로 피스팔라(Pispala), 퓌니키(Pyynikki), 그리고 라우하니에미(Raihaniemi)이다.


<피스팔라(Pispala)>

몇몇 친구들에게 나는 ‘피스팔라 성애자’라고 불린다. 그만큼 내가 사랑하고 자주 찾는 곳인데, 심지어 비가 엄청 퍼붓는 날에도 이곳에 와서 혼자 멍을 때리다가 홀딱 젖어 돌아간 적도 있다. 나는 주로 혼자 생각을 정리하거나 명상의 시간이 필요할 때 이곳을 찾곤 한다. 탁 트인 호수의 전망과 경사진 언덕에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피스팔라의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를 않는다. 친구들이 탐페레를 방문할 때면 첫 번째로 데려가는 곳이 이곳인데 다들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한다. 친구들과 함께 올 때면 이곳에 있는 ‘피스팔라 카페(Pispala cafe)’에서 맛있는 브런치를 즐기기도 한다.

피스팔라는 탐페레가 공업 도시로 발전할 때 공장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집들로 인해 나중에는 많은 예술인들이 이곳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달동네였던 곳이 힙한 예술의 성지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인지 탐페레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인기가 많은 이곳의 집값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혼자 멍때리기 좋은 피스팔라 언덕

<퓌니키(Pyynikki)>

피스팔라에서 시내 쪽으로 슬슬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퓌니키 지역은 탐페레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퓌니키 타워가 있는 곳이다. 퓌니키 타워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역시나 탁 트인 경관으로 전망대에 올라가면 결코 실망하지 않는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특히 1층 카페에서 파는 뭉끼(munkki)라는 도넛은 중독성 있는 맛을 가지고 있어서 달달한 도넛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매 주말마다 이곳에 가서 뭉끼와 커피 한 잔을 즐기곤 한다. 하지만 예전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주말에는 타워 밖까지 긴 줄의 행렬을 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만 받던 입장료(2유로)를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퓌니키 타워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아름답고 차분한 숲 속으로 들어가 산책을 즐긴다. 숲 속을 거닐고 있으면 진정으로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며, 여름에는 이곳에서 블루베리와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채취한 블루베리와 버섯은 그다음 해 여름까지 다양한 요리에 사용한다.

퓌니키 타워(좌)와 중독성 있는 뭉끼(우)

<라우하니에미(Rauhaniemi)>

세 곳 중에 탐페레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라우하니에미는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야외 사우나로 유명한 곳이다. 겨울에는 운이 좋으면 이곳에서 오로라를 볼 수도 있고, 해질 무렵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석양과 호수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근처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날씨가 좋은 날에는 꼭 일몰을 보러 가곤 했다.

겨울에는 얼음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핀란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고 아마도 시도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얼음 호수에 들어갔다가 유유히 나오는 핀란드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호수에 들어가서 꺅꺅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거의 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여유롭게 사우나를 즐기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몸을 호수에 담그며 수영을 즐기는 핀란드인을 보면 이 사람들은 고민이나 걱정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아름다운 라우하니에미의 호숫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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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오로라를 찾아 떠난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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