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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Jan 18. 2020

핀란드에서의 공부

누구도 태클 걸지 않는 자기와의 싸움

핀란드에서의 석사과정 공부가 어땠는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누구도 태클 걸지 않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너무 많은 부수적인 것들에 이리저리 치여서 치열하게 공부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공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을 내가 오롯이 다 조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느낌에 막막함도 있었다. 특히 논문을 완성할 때는.

핀란드의 교육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 공부를 해보니 교육의 질뿐만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참 잘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핀란드 학생들은 학생 신분을 늘려 석사 과정까지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학교 도서관.
2.6유로로 저렴한 학교 식당의 건강하고 푸짐한 식사.

그러나 어디든 완벽함은 없는 법. 공부를 해보니 학교, 학부, 전공, 교수에 따라 분위기도 사뭇 다르며 그에 따른 만족도도 매우 만족에서 매우 불만족까지 다양했다. 같이 석사 과정에 입학한 다른 전공의 한 친구는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며, 친구들끼리 핀란드의 우수한 교육은 아동 교육에만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핀란드에서의 공부는 자기가 얼마큼 이해하고 공부하고 공부하고 싶은지에 따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도 하고 별로 배우지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신물 나게 경험했던 암기 위주의 주입식 수업, 시험, 경쟁은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학 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과제는 보통  ‘Learning diary’를 제출한다. 단어 그대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일기를 쓰면서 그 날의 강의를 되새겨보는 방식이다. 가끔 정말 개인적인 일기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함정.


교수는 수업 전에 참고 문헌을 보내주는데, 이를 읽든 말든 본인의 재량에 달려 있다. 참고 문헌을 읽으면 수업의 이해도와 참여도가 높아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멍 때리기 일쑤다. 그래서 한참 주변 유럽 국가를 여행하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멍 때리는 날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식의 강의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수업이 끝난 후 내가 뭘 배운 건가 싶었고 요점만 머리에 쏙쏙 넣어주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그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바로 이 점이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역시 선진 교육이구나 싶었다.


수업은 보통 강의와 토론 및 발표, 질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내 전공은 조금 특이하게 문화, 음악, 공연, 저널리즘 분야의 다양한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조금은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흡수할 수 있었다. 특히 논문 세미나 시간에는 교수들이 다 모여서 학생들과 함께 논문 주제, 진행 방식 등에 대해 토론을 했는데, 교수들과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에 많은 영감을 얻고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것은, 동기 중 한 명인 영국 친구를 제외하고 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는 제2 외국어였기 때문이었다. 정작 모국어가 영어인 그 영국 친구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발표를 하거나 의견을 말할 때 엄청 긴장하고 떨어서 그 모습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교수님도 유창한 영어로 수업을 하다가 중간에 “이 단어가 영어로 뭐였더라?” 하며 우리에게 물어볼 때도 있었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만약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했다면 영어에 주눅이 들어서 엄청 쭈구리가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석사를 하면서 논문을 쓸 때 가장 스트레스였던 것은 부수적인 것들(교수 비위 맞추기, 예심 및 본심 장소 섭외, 다과 및 선물 준비 등등)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논문을 쓸 때는 지도 교수를 별로 만날 필요가 없었다. 초반에 논문 작업에 대한 가닥을 잡을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만날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독일에 머물면서 논문을 완성했는데, 교수와 이메일로 연락해 피드백을 받으면서 그곳에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원했던 쓸데없는 감정 소모 없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어서 훨씬 더 수월하게 느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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