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리 재즈 페스티벌의 운전사
핀란드로 간 후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나는 20대처럼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려 틈날 때마다 핀란드의 다른 도시들과 주변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고 다녔다. 식비와 생활비를 최대한 아끼고 아껴 그 돈은 여행으로 쓰고 다녔다. 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고 거의 매달 여행하는 나를 보고 한 친구는 내가 이러다 석사를 졸업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첫 번째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짐을 꾸려서 편도 티켓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을 세우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여행을 했다. 한 도시가 마음에 들면 좀 더 머물기도 하고, 별로다 싶으면 바로 다음 목적지를 궁리했다. 유럽 곳곳에 살고 있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떠돌다가 파리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나를 강타한 38도의 폭염 때문인지, 아니면 계속 저렴한 호스텔 생활에 지쳤는지,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파리의 풍경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느껴져서인지 이제는 내 집이 있는 조용하고 시원한 여름이 있는 핀란드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시원한 핀란드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차, '뽀리 재즈 페스티벌'에 자원봉사를 신청한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뽀리 재즈 페스티벌(Pori Jazz festival)'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뽀리 재즈 페스티벌'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로 1966년부터 매년 여름 핀란드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인 뽀리를 재즈 음악으로 가득 채우며 축제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 뽀리 재즈 페스티벌은 한국의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영감을 준 재즈 음악 페스티벌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페스티벌이 열리기 몇 달 전에 혼자 뽀리를 방문해 이 아기자기한 도시를 둘러보면서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 뽀리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기분 좋게 발을 감싸는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탁 트인 시원한 바다 풍경을 간직한 보물 같은 위떼리(Yyteri) 해변을 운 좋게 발견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여행에 정신이 팔려서 자원봉사 신청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페스티벌이 시작하기 불과 2주 전이라 늦었지만 부랴부랴 주최 측에 이메일을 보내서 물어보았다. 운 좋게도 아직 부족한 자원봉사 자리가 몇 개 있었고 나는 그중에 운전 자원봉사를 선택했다. 워낙에 여기저기 다니기 좋아하고 운전을 좋아하는 나에겐 딱 맞는 자리였다. 나는 2종 보통 면허를 소지하고 있어서 수동 차량은 운전하기 어려운데 혹시 괜찮냐고 하니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자원봉사 신청이 완료되었고 나는 'Kuljetus' 팀에서 운전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 자원봉사자들의 왓츠앱 그룹에 초대되었는데, 핀란드인이 아닌 외국인은 달랑 나 혼자였다. 핀란드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였기에 고맙게도 사람들은 나를 배려해서 최대한 영어를 사용해주었다.
뽀리에 도착한 후 처음에는 사무실에 들어가기도 약간 뻘쭘해서 괜히 공연장을 돌아다니곤 했지만, 나중에는 간식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무실에 머무르다 보니 사람들과 친해졌고, 사무실에 얼굴을 자주 내미니 팀장도 운전 스케줄을 계속 주었다. 처음에 낯을 가리던 사람들도 내가 신기한지 나중에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자원봉사자의 연령대가 높아서 놀라기도 했다. 그중에는 수십 년째 뽀리 재즈 페스티벌의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분은 나를 데리고 공연장 곳곳을 익숙하게 운전하면서, 주최 측 사람들과도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공연장 이곳저곳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분들은 대부분 뽀리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었는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뽀리 재즈 페스티벌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운전 자원봉사자들은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아티스트와 팀들을 헬싱키 공항에서 픽업해 호텔로 이동, 호텔에서 공연장까지 이동, 공연장 사이를 이동, 공연장에서 호텔까지 이동, 공연을 마친 후 다시 헬싱키 공항으로 이동할 때 운전을 담당했다. 아티스트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아주 유명한 아티스트들은 운전사를 따로 데려오거나 오래 자원봉사를 해오신 분들이 운전하는 듯했고, 나는 주로 세션팀, 무대 담당 팀의 이동을 담당했다. 뽀리는 작은 도시라 아티스트와 팀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숙소가 부족했고, 그래서 우리는 주변 도시인 뚜르꾸(Turku)나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인 땀뻬레(Tampere)의 호텔로 모셨다. 나는 땀뻬레에 살고 있어 그곳 지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땀뻬레의 호텔로 자주 이동했다. 밤늦게 운전해 도착하게 되면 자원봉사자들도 호텔에서 잘 수 있게끔 배려를 해 주었다. 그다음 날 호텔의 풍성한 조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다시 공연장으로 운전해 돌아갔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고 이동했다. 밤늦게 공연이 끝나고 뒷자리에서 피자와 술을 먹고 마시면서 시끌벅적하게 호텔로 돌아가던 밴드, 이른 아침 공연장으로 향하느라 약간의 긴장감 속에 뒷자리에서 조용하게 잠만 자던 세션팀, 뒤에 앉아도 되는데 굳이 운전 조수석에 앉아서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추파를 던졌던 짓궂은 댄서 아저씨 등.
공항으로 픽업하러 갈 때는 혼자만의 운전을 즐길 수도 있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핀란드의 시원하고 화창한 여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다. 교통 체증이 없으니 급할 것도 없었고 다들 안전하고 여유롭게 운전을 하니 운전하기도 참 편했다.
운전 스케줄이 없을 때면 공연장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에게 입장은 무료였다. 그 해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은 자미로콰이, 허비 행콕, 더 시네마틱 오케스트라, 그레이스 존스, 화이트 라이즈 등이 있었다. 티켓 없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장도 있어서 현지 주민들이나 티켓을 구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주최 측의 배려도 보였다. 그렇게 해서 작고 조용한 뽀리는 자연 속에 자리 잡은 공연장과 함께 많은 주민들의 도움 속에서 국제적인 아름다운 재즈 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자연과 운전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일주일간의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다.
쓰면서 보니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2018년에는 교환 학생 때문에 독일에 있었고, 2019년에는 크루즈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올해는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페스티벌이 취소가 되었다. 내년에는 다시 가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