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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이방인 Sep 19. 2020

크리스마스를 핀란드 산타 마을에서

핀란드 라플란드 여행 ①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11월 중순~12월 초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함께 길고 어두운 겨울밤을 화려하게 밝히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은 크리스마스 전에 모두 끝나며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무것도 없는 썰렁하고 조용한 날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당일이나 크리스마스이브 혹은 그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가게들은 문을 일찍 닫거나 아예 닫으며 버스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 없이 유럽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매우 쓸쓸한 날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처음에 이런 점을 몰랐다. 하지만 뭔가 그냥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쎄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찾아보며 생각을 해보다가 산타 마을이 있는 로바니에미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로바니에미는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주에 있는 도시로 산타 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인 헬싱키에서는 8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탐페레에서는 700km 정도 떨어져 있어 핀란드 내에서도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북극권에서 6km 정도 떨어진 핀란드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살았던 탐페레에서도 가끔 오로라를 봤다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라플란드를 여행하기 전까지 본 적은 없었다. 오로라 앱을 깔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밤마다 호숫가에 가서 확인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게으르기도 했고 오로라를 기필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라플란드 여행에서 나는 정말로 아름답고 황홀한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로바니에미로 가장 빠르고 편하게 가는 방법은 핀란드 내에서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기차를 타고 가서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것이 좋지만,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는 약간 급하게 여행을 결심했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가격이 너무 비쌀 것 같아서 'Timetravels'라는 여행사의 여행 상품을 이용했다. 교통, 숙소가 포함된 기본 가격에 허스키 사파리 체험, 순록 농장 방문 등을 추가 비용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단체 여행의 느낌이 강하고 숙소는 다인실이며 여행객의 80% 정도가 중국인이라 이곳이 핀란드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수도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핀란드 북쪽을 훑어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예산이 충분하다면 비행기를 타고 와서 차를 렌트하고 이글루 호텔에서 머무는 것이 훨씬 낫다.




여행은 야간 버스를 타고 로바니에미로 향하면서 시작되었다. 헬싱키에서 출발한 버스가 탐페레에 도착했을 때 버스는 거의 꽉 차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 먹을거리를 산 후 로바니에미까지 밤새 꼬박 달린 후 일출 속에 로바니에미에 도착했다. 밤새 버스의 좁은 좌석에 몸을 구긴 채로 이동하니 도착할 때쯤 되니 이미 몸이 만신창이었다. 다음에 갈 때는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저 멀리 어슴푸레 햇살이 보일 때쯤 로바니에미에 도착했다.

  

악티쿰(Arktikum)

정신없는 몸과 마음을 일으키며 도착한 악티쿰(Arktikum)은 로바니에미에 있는 자연과학 박물관이다. 북극 센터(Arctic Center)와 라플란드 지역 박물관(Regional Museum of Lapland)으로 이루어져 있어 북극권 및 라플란드의 자연, 문화 및 역사에 관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건물 자체도 아름다운데 박물관에 들어서면 쭉 뻗은 복도와 위로 반원형의 유리 천장이 시원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건축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니 덴마크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로 172m에 달하는 긴 유리 통로는 "북쪽으로 향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며 실제로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북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박물관 안에는 북극권의 생물 및 날씨, 오로라 등에 관한 전시와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으며, 라플란드의 사미족에 관한 문화와 의상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고 박물관 분위기도 참 좋았고 신비로운 북극권과 라플란드에 관한 전시가 흥미로웠다.


아름다운 악티쿰의 실내외.

    

산타 마을(Santa Claus Village)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방문해서인지 산타 마을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도착하자마자 산타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성수기라 그런지 대기줄이 정말 길었다. 어찌 됐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직원에게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산타 마을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이런 패키지여행 같으니라고. 고민하다가 여기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다 보내고 산타 마을을 둘러보지 못할 것 같아 산타와의 사진 촬영을 포기했다. 저 안에 있는 산타는 진짜 산타가 아닌걸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나와서 산타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2시간 동안 둘러보기에는 산타 마을이 또 그리 크진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방문했던 악티쿰은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산타 마을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아마도 기대가 커서 그랬던 것도 있는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기분은 물씬 풍겼지만 기념품 가게들은 너무 올드해서 이곳에서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기념품 가게들을 천천히 둘러본 후 산타 우체국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소중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기억이 안 난다. 언제부터 산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매년 기다려진다.


방문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산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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