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핀란드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
핀란드에서 석사 공부를 하면서 교육 컨설팅 스타트업 회사에서 두 달 동안 인턴으로 일을 했다. 핀란드에 관심이 있고 핀란드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아시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그마한 교육 컨설팅 스타트업이었다. 나는 마케팅팀 인턴으로 들어갔으며 한국 학생들에 대한 마케팅 전략, 한국 에이전시와의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블로그 작성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지만 주로 하는 업무는 홈페이지 한국어 번역이었다. 워낙 중국 학생들의 문의 및 수요가 높았기 때문에 정직원으로 중국 친구 한 명과 인턴 한 명이 일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마케팅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인도 쪽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고 싶었다. 비록 무급인 열정 페이일지라도.
핀란드에도 열정 페이가 존재했다. 두 달 동안의 짧은 인턴 기간은 무급이었다. 물론 어디에서, 어떤 인턴을 하는지에 따라 유급일 수도 있고 무급일 수도 있으니 본인이 잘 선택해서 결정하면 되지만, 핀란드에도 무급 인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긴 했다. 석사 과정에 인턴 과정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어서 어디에서든 인턴으로 일을 하고 그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아무튼 나는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기 직전에 인턴을 구하게 되어서 인턴을 깔끔하게 끝내고 독일에 가서 마지막 학기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무급이어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무급으로 일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번역비라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나 대신 분개했고, 핀란드인인 취업 멘토도 무급이면 너무 열심히 일할 필요 없고 적당히 일하라는 식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수업이 있는 날은 회사에 나가지 않고 학교에서 혹은 카페에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한 남자 직원은 오후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기도 했고, 일찍 퇴근하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일찍 출근해서 일을 했다. 모든 게 자유롭게 이루어졌지만 모든 사람이 자율적으로 정직하게 업무 시간을 잘 지키고 있었다.
몸이 찌뿌둥 해지는 오전 11시에는 다 같이 모여서 가벼운 스트레칭과 운동을 함께 한 후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점심도 각자 알아서 먹는 분위기였다. 자기 책상에서 간단히 먹고 바로 업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소파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도 강요하는 분위기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업무에 집중하며 보낼 수 있었다.
홈페이지 번역일이 지루해지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마케팅 팀장에게 제안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이 아이디어였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핀란드 3인방인 빌레, 빌푸, 사미와 함께 한국 학생들을 위한 핀란드 교육 홍보 영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핀란드인이었던 마케팅 팀장은 핀란드 3인방이 당연히 누구인지 몰랐고 그 세 명이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하냐며 처음에는 나의 아이디어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럴 만도. 그래서 방송을 보여주니 처음보다는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일단 컨택을 해보고 나서 3인방이 오케이 하면 이야기를 해 보자는 식이었다.
핀란드 3인방은 소셜 미디어로 한국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세 명 모두에게 대략적인 아이디어와 함께 무모하게 메시지를 보낸 후 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고맙게도 세 명 모두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 방송에 출연한 후 한국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감동적인 말과 함께... 그리고 너무나 고맙게도 세 명 모두 탐페레로 와 준다고 했다. 이렇게 섭외는 완료되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촬영 콘텐츠는 내가 혼자 만들 수 있었지만 나 혼자서 모든 것을 진행하기는 힘들어서 중국 친구가 촬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3인방에게 출연료를 포함해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었지만 작은 스타트업 회사라서 통 크게 지원을 해주지는 못했다. 결국 대표와 팀장과 회의 끝에 교통비, 점심, 간식 비용만 지원해주기로 했다.
아래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촬영 날은 날씨가 맑았지만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 엄청 추웠다. 야외 사우나 및 얼음물 입수 촬영이 있어서 이 날씨에도 괜찮을까 걱정이 됐다. 다들 아침 일찍부터 탐페레로 오느라 피곤하고 졸릴 것 같아서 사무실에서 부지런히 커피와 다과를 준비했다. 다들 도착해서 실제로 만나보니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떨렸다. 후광 효과 때문인가 티브이에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훤칠해 보였다.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내 소개를 하고 오늘 촬영 내용에 대해 알려주면서 잠시 수다를 떨었다.
탐페레에는 석사 및 교환 학생을 포함해 꽤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있는데, 나만 이들을 만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촬영 후 저녁에 이곳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만나는 건 어떻냐고 물어봤더니 세 명 모두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래서 단톡 방에 핀란드 3인방이 탐페레에 와 있다고 시간 되시는 분은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니 단톡 방이 난리가 났다. 이따 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드린 후 우리는 촬영을 시작했다.
이날의 날씨는 화창하고 쨍하니 춥고 눈이 많이 쌓여있어서 내가 참 좋아하는 핀란드의 날씨였다. 탐페레 시내를 돌아다니며 중국 친구와 미리 점찍어둔 장소에서 큰 문제없이 시내 촬영을 마쳤다. 밖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방송에 대한 뒷이야기와 방송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또 방송에 출연할 계획은 있는지 등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 친구도 방송을 보고 와서 궁금한 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야외 사우나로 갈 준비를 했다. 홍보 영상을 계획하면서 나와 중국 친구도 촬영 당일 같이 사우나를 할까 했으나 그날 아침 기온을 확인하고는 안 되겠다며 깔끔하게 포기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곳까지 오게 하고, 이 추운 날씨에 야외 사우나에 가서 얼음물에 입수를 해야 하는 3인방에게 나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겨울 얼음 수영을 즐기는 핀란드인 답게 세 명은 야외 사우나와 얼음물 수영을 즐기는 듯했고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끝으로 촬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추운 날씨에 사우나와 얼음물 입수를 하고 소주까지 마셔 몸이 노곤 노곤해진 3인방에게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주었다. 저녁때 한국 학생들과의 만남까지 시간이 약간 남았다고 하니 세 명 모두 라면을 먹고 잠시 꿀잠에 빠졌다. 라면을 맛있게 먹고 낮잠을 자는 모습이 어찌나 흐뭇하던지. 그 사이 나와 중국 친구는 그날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낮잠 후 기력을 회복한 이들과 함께 한국 학생들이 예약해 둔 장소로 향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고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핀란드 친구들도 몇 명 와 있었다. 다들 너무 반가워하면서 3인방과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설레고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다. 3인방도 사람들의 환영과 관심에 부끄러워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나는 잠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급 몰려오는 피곤함과 다음날 개인 일정으로 인해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나중에 물어보니 꽤 늦은 시간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남아있었다고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 꿈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끔씩 그때 찍은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참여해 준 빌레, 빌푸, 사미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전하고 싶다.
개인적인 사진은 올리기가 조심스러워서 그때 만들었던 홍보 동영상과 블로그 글을 올리면서 마무리할까 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QKJjaz18Ye4&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