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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가 Jul 27. 2019

월 40억 버는 보람튜브는 정의롭지 못한 걸까?

성공에 관한 단상 (2)

  고등학교 삼 학년 무렵 입시를 앞둔 친구들은 대개 치열한 삶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졌지만 그것은 실은 자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의지가 없기에 가장 쉬운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들 앞에는 분명 더 빠르고 쉽게 갈 수도 있는 지름길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머나먼 구부러진 산길을 돌아가는 길을 이미 달려 나가고 있었기에 그런 사회적 구조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마저 어쩔 수 없이 다수에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법 많은 수의 친구들은 앞에 있는 남들을 따라가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상한 곳에 빠져 길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때때로 이상한 길로 방향을 튼 아이들 중 극히 일부는 운 좋게도 지름길을 발견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상한 길의 막다른 곳은 사회의 밑바닥이었고 그곳에 한번 당도하게 되면 정상적인 길을 느리지만 올바르게 걸어간 아이들을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사회가 지시하는 길이 비록 불필요한 노력을 동반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을 알 지언정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필 중인 소설 中 발췌>

  


월 40억 버는 보람튜브는 정의롭지 못한 걸까?

  

  '월 수입 40억 원', '95억 원 상당 강남 빌딩 매입'의 주인공. 키즈 유튜브 채널 '보람튜브'가 국민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이를 아동학대라 부르며 청와대에 제재를 청원했고, 고작 6살 배기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영상으로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며 이를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의 분노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기인합니다. 이제 고작 6살인 아이가 아주 어린 나이에 일반적으로는 로또가 아니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금액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자연스레 자신의 생을 한탄하며 시기와 질투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질투가 정도를 넘으면 분노가 되고 그것이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고까지 생각이 닿습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한 자본시장에 대한 논리 자체를 전면부정하며 사회를 대상으로 자신의 하소연을 하는 셈입니다.


왜 이들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성취한 것인지 조차 잘 인지하지 못할 나이의 어린아이를 욕하며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성공이라고 외치게 되었을까요? 이는 단순히 보아 일반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성취를 이룬 어린아이에 대한 질투가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오랫동안 일구어온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이들의 고통스러운 절규일지도 모릅니다.




  보람튜브의 건물 매입 소식이 기사화되고 점점 퍼져나가자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거나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사회의 정해진 규범대로 충실히 살아온 올바른 이들입니다. 어릴 때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살아왔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좋은 기업에 취직해야 잘 살 수 있다 믿으며 버티어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사회의 암묵적인 성공 방정식이 존재했고 그것을 올바르게 따르지 않으면 도태된 인간이 되어버릴 것으로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보람튜브의 성공을, 그들이 배우고 믿고 따라온 길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룩한 성취를 보니, 명 받은 대로 묵묵히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삶이 한없이 불행하게 느껴집니다. 사회는 정해진 코스를 강요해왔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쳐왔는데, 정해진 코스를 충실히 따른 본인이 오히려 낙오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깊이 믿어온 무언가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때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세상을 상대로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부정하고 삶을 비관한다고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존재했던 성공 방정식은 지금 시대의 절대적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보람튜브의 성공이 정의롭지 못하다 생각된다면 그것은 안정성만을 추구하며 소속감에 가능성을 제한해버린 자신의 한계를 탓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상식적이고 저급한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생각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트렌드를 기민하게 읽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에 붙잡혀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을 동조주의(Conformism)라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이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 둘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년 무언가 개혁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의 본질은 수십 년간 변한 게 없습니다. 사회는 아이들에게 정해진 길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를 배척하려 애씁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사회가 지정한 숭고한 길을 올바르게 따라가도 실은 아무것도 확실히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목도해도 여전히 모두가 가는 길을 따라 걷는 편이 안정적이라 생각합니다. 부나비들은 앞의 나비가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면서도 불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기 마련입니다.


부나비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조금 더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학교나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 본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질적인 개성과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 자신만의 콘텐츠와 브랜드가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회의 거짓된 규율과 동조주의로부터 도망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과거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일은 편합니다. 비록 그것이 불필요한 노력을 동반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더라도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많으니 안정감과 소속감의 철창 속에서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휩쓸려가는 삶의 관성에 익숙해지면 멈추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내면의 목소리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길을 택하거나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때,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에 의문을 품을 때 진정한 성공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철창 밖으로 벗어나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믿을 때 기회는 당신을 찾아옵니다.







성공에 관한 단상 (1) "아무렇게나 노력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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