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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가 Jan 19. 2020

얼마를 벌어야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성공에 관한 단상 (3)

  자기 계발서 서가의 표지는 매 시즌 변하지만 그 제목에 담긴 키워드는 수년이 지나도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블로그로 1000만  번다.'

'주식투자로 연봉 1 만들기'

'10 부자 나도 될 수 있다!'


언제부터일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세 가지 단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월 천만 원', '자산 십억'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월 천만 원을 벌고 연봉 일억 원을 넘어서고, 자산 십억 원을 모으면 스스로를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그 날이 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얼마를 벌어야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10억?


  내가 경험하고 생활한 국가들(한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경제적 성공의 기준치이자, 은퇴자금의 목표액은 대개 십억 원이었다. 영어로는 원 밀리언 달러. 해외 금융업계에서는 이를 투 콤마 클럽(Two Comma Club)이라 칭한다. 투 콤마($1,000,000)는 캐나다에서 PWM(개인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최저 위탁 금액이며, 많은 FP(재무설계사)들이 개인 재무목표로 설정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100억? 건물주?


  금융업계 사람들이 만나면 자주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대표님은 얼마 벌면 은퇴하실 건가요?"


  금융시장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우리들 역시 모두 꿈꾸는 은퇴의 시점이 있다. 이 은퇴의 시점은 '만 60세'와 같은 정년이 아니라 제각기 목표한 금액을 달성했을 때이며 스스로 평가했을 때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목표한 금액을 이루면 완전히 시장에서 떠나는 것을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 혹은 더 이상 정신적으로 시달리지 않는 선까지 운용자금을 줄이는 것으로 계획하는 분들도 다. 이때 '목표'에 대한 이상치는 제각기 다른데, 정말 가시적으로 '100억' '300억' 숫자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강남권 꼬마빌딩 매입'이라던지 '건물주'같은 다소 피상적인 목표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10억 원을 벌면, 건물주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신이 추구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 있는가? 아니라면, 그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암묵적인 기준 따르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연봉 1억 원 이상. 자산가치 10억 원 이상. 서울에 탁 트인 한강뷰 아파트와 페라리 포르토피노를 끌며 매일 아침 오늘은 오데마 피게를 찰까 파텍 필립을 찰까 (혹은 에르메스 백을 들까 샤넬 백을 들까) 고민하는 삶이 올바르고 정석적인 성공의 모습인 걸까.


위에서 묘사된 성공의 모습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성공했다'라고 사회에서 일컬어지는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공이 특별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하기에, 가진 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특별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뿐이다.



성공의 부수적 결과를 성공 자체로 착각하지 마라



  문제는 황금만능주의로는 쉽사리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졌을 때의 행복감은 아주 잠깐 스쳐갈 뿐이다. 이내 스스로를 쉽게 행복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에게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ion) 법칙이 적용된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의 만족감에 대한 기준치는 정량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변하며 점차 높아진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얻게 되더라도 기쁨은 이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 같은 것을 얻더라도 만족감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같은 수준의 만족을 얻으려면 더 많은 것을 추구해야만 한다. 본래 인간은 세상 모든 재물과 재화를 가져도 끊임없이 욕심 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을 지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사치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항상 본인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고민해보라. 고민만으론 깨달을 수 없다면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려 노력하라. 현대인들은 효율성의 노예라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방황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 도전과 경험 속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런 성장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을 배웠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성공의 그림을 쫓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본 세계를 재편하여 해석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 놓여진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그 답을 다른 이들로부터 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면 그 무엇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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