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게 만든 한 마디
처음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먹빛 호수 앞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낡은 배를 띄울까
심연에 웅크린 닻을 건져 올릴까
건널 수 없어서
손을 뻗어도 가닿질 않아서
저 너머, 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호수의 짙은 슬픔을 끌어안던 날
물 녘에 서있는 이를 만났다
그가 모난 돌 하나를 집어 들자
발아래 무겁게 고인 습기가 흔들린다
그의 손을 떠난 돌이 둔탁하게 공기를 가르고
차디찬 물의 껍질을 깨자
마침내 호수의 잔잔함에 안긴다
나는 그가 만든 동그라미가 무한히 자라며
내게 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떨어진 눈물이 박힌
내 작은 동그라미에 이내 덧대어졌다
세상의 끝에서부터 고요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퇴근길 우연히 한강 작가가 아들을 위해 쓴 시를 낭독하는 영상을 보고 느닷없이 고이는 눈물에 '아, 나는 이런 것을 동경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안희연 시인의 시구를 보고 마음이 하루 종일 동했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사치처럼 느껴지던, 고된 일상에서 어느 날 자잘한 인연으로 가끔씩 연락을 이어가던 친구에게 '라이프 코칭'을 제안받게 되었다.
마침 중대한 결정을 할 것도 있고 나이가 들수록 온전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느꼈기에 옳다쿠나 나는 약속을 잡고 친구와 아주 긴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 흔한 충고 하나 없는, 나 혼자 떠드는 이상한 코칭이었지만 그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시'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화 중 카피라이터로 살며 가장 즐거웠던 작업 중에 어린이재단과 협업했던 건을 꼽았는데 당시 아이들의 삐뚤빼뚤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고 상상하며 그에 맞는 동시를 짓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얘기하면서 니 표정이 제일 행복해 보인 거 아니?"
아니, 전혀 몰랐다.
안 그래도 부끄럽지만 내심 시를 쓰고 싶었다 말했고, 그는 시를 써서 보여달라 했다. 헤어질 땐 달력을 펼쳐 시를 전해 받을 날짜까지 집요하게 받아냈다.
내 글은 항상 그랬다.
물건을 팔기 위해 거짓된 과장을 덕지덕지 입고 나섰다가 조용히 사라지거나, 메모장에서 끄적이다 '제목 없음'이란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 너덜한 사색의 조각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는 글은 생명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한때 나는 머릿속에 부유하는 이야기들이 나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혀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극작가, 동화작가. 모양은 바뀌었지만 이야기를 짓는 작가가 되고 싶다 결심한 중학생 이후로 쭉 그래왔다.
하지만 삶의 무게는 '쓰지 않으면 우울함이 밀려오는 병'을 단박에 싹 낫게 해 줬다. 그렇게 시를 쓰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주변에서 그 어느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나 시를 쓰고 있어'라는 말이 '나 요즘 드라마 하나 보고 있어'라는 말보다 훨씬 파급력이 약했다.
하지만 나의 시는 외로움을 먹을수록 더 잘 자라났다.
마침내 첫 시를 친구에게 보낸 날. 그가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짜릿한 감정에 하루가 들떴다. 그의 추진력으로 나는 몇 편의 시를 연달아 쓰게 되었고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브런치 작가라는 길에 들어서버렸다.
이 시는 나에게 시쓰기를 권했던, 조용히 이글에도 좋아요를 누를 그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세상이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의 삶 역시 팍팍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공명하기 위해, 책 하나쯤 남길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연결하기 위해 하루의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고 부지런히 호수로 나가 돌을 던지는 사람이다.
"넌 꼭 써야만 되는 사람이야. 그동안 어떻게 참았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아무 것도 할 수없어 매일 울고 있던 나에게 번진 그의 작은 파문이 세상의 끝으로 날 데려다줄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그동안 보잘 것 없는 설익은 시를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가 당신에게 닿아 오늘도 제가 이렇게 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