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비 온 뒤 진동하는 풀냄새에 이끌려
이끼로 덮인 나무 앞에 선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올라
소담히 달린 열매 똑 떼어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 건넨다
막 캐낸 덩이뿌리 툭툭 털어
숭덩 잘라 베어무니
단물이 왈칵 흘러
거드러 지게 누워
해넘이를 바라보다
지천에 깔린 깨끗한 버섯 몇 줌 쥐어 돌아가
이웃이 잡아온
반지르르 살 오른 물고기에 곁들여
두둑이 저녁배를 채운다
짙은 밤, 뿌려진 싸라기별을 보아도
빌 것은 없다
숲은 언제나 우릴 반기고
땅은 어미처럼 감싸 안으며
영혼은 또렷이 맴돌기에
내 마음 고요해
시간은 저 뒤에서 늦된 걸음으로
그림자 꼬리를 따라 걷는다
죽음은 사는 것만큼 당연하니
기쁨을 미루지도
어둠을 겁내지도 않아
사는 건 사는 것일 뿐
돋을볕에 움츠리지 않는다
풍요의 기억에 닿아다오
종의 비극이 오늘 앞에 서기 전에
'사피엔스'를 읽으며 4만 년 전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호모 사피엔스로 살고 있는 나를 떠올려봤다. 그녀도 시를 쓰고 있었다. 아등바등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는 나와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정착해 밭을 일구기로 한 사피엔스의 선택이 인류의 풍요에 종말을 고한 비극의 시작임을 깨달아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원초적 슬픔에 휩싸이곤 했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퇴근길, 1분 1초를 다투며 숨이 넘어갈 듯 뛰어야 하는 현실.
매일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외로이 분투하며 아이를 돌볼 일은 없으며 온갖 성인병의 위협과 지독한 다이어트의 굴레에서 벗어난. 무엇보다 남보다 뒤처질까 내가 가진 것이 무너지지 않을까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4만 년 전의 그녀가 부러웠다.
종의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해 오늘도 하루를 쪼개고 쪼개 시를 쓴다. 소외, 가난, 고립, 차별, 굶주림도 함께 가져온 이 거짓 풍요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풍요로움을 꿈꿔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