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
2. 이사
그렇게 집안에 어둠이 들어섰을 때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사업 실패의 여파로 매년 힘들어진
우리 가족은 내가 3학년이 되던 해
옆 동네로 이사를 했다.
이사했던 당일,
큰누나의 울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사 당일, 나와 작은 누나는 주방 싱크대 위에 설치된 작은 티비가 너무 신기해서
채널을 돌려보며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큰누나는 하루 종일 방안에 들어가 숨죽인 채 눈물 흘리고 있었다.
나와 작은 누나는
큰 누나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망해서 이사 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우리들에게 세상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세상의 시간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갔다.
아빠는 다시 일을 구해야 했고,
집안일만 하던 엄마는 이제 사회로 나가야 했다.
큰누나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상처받아도 혼자 묵묵히 버텨야 했다.
작은누나는 자신이 뭘 잘하는지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들고 우울하고 지친 우리들의 시간.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은 포기했을지 몰라도
서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 시간들을 버틴 것 같다.
집안 상황이 이런데도 나는 항상 밝은 아이였다.
어른들한테 실망도 하고
슬퍼하는 가족들 보면 분노가 일어나지만,
학교에 가면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상황을 티 낸 적이 없다.
집안 상황은 집안 상황이고, 학교생활은 학교 생활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힘들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 나름대로의 독립을 이행했고, 나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했다.
예를 들면, 친구들이 PC방이나 만화방에 가자고 할 때
항상 거절을 하고 집 가는 길에 500원짜리 컵 떡볶이를 사 먹는 게 내 일상 루트였고,
집에 가면 떡볶이를 안 먹은 척 누나들한테 배고프다고 간식 만들어 달라고 한 게 내 소소한 행복이었다.
또한, 학교 끝나고 가끔 엄마랑 만나서 순댓국을 사 먹곤 했는데,
그때 엄마와 함께 먹었던 순댓국 맛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당시 엄마에게,
나는 친구이자 위로자였다고 한다.
집안이 어려워질 때,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엄마는
나와 순댓국을 먹으며 수다 떠는 게 소소한 위로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도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랑 순댓국을 먹으러 가곤 하는데,
엄마는 웃기게도 그렇게 힘들던 시절 나와 같이 먹었던 순댓국이 가장 맛있었다고 하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당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가족들의 아픔을 보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지만,
가족들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항상 같이 있어주고, 수다 떨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 같다.
참 웃기게도 집이 망했는데, 나에게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더 소중하고 행복으로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