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인생을 살았나- 회상

과거의 나

by 익명의 작가

나는 일화 기억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내가 겪었던 일들로부터 배운 것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과거에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줄 것이다.

내 과거로부터 왜 내가 '나'다워 질 수 있었는지

왜 '나'답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거슬러 내가 아주 어렸을 때로 올라간다.

내가 7살이 되던 해까지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건물 2층에서

아빠는 돈가스 가게를 운영했었다.

아빠가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던 시기가 우리 가족에겐 가장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돈가스 가게의 분위기, 냄새가 생생히 기억나는 것 같다.

아빠가 팔았던 돈가스의 소스가 기가 막혔었는데.

돈가스 말고도 소시지 야채볶음과

구석 한편에 쌓여있던 수많은 LP판들이

아직도 나와 누나들의 추억 속에 깊이 자리 잡아있다.


누나들과 함께 손잡고 놀러 갔던

아빠의 작은 돈가스 가게와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의 작은형 그러니까 나에게는 둘째 큰아빠가 아빠에게 동업을 제안했는데,

그 당시 아빠는 작은 형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의지했기 때문에,

바로 돈가스 가게를 접고 동업 제안을 수락했다.

그때 당시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경기도 외곽 시골마을에

버섯을 생산해서 팔자는 작은형의 말을 믿고

시골로 내려간 우리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셨다.


처음에는 희망찬 사업이었으나, 점차 둘째 형은 일을 하지 않았고

우리 아빠만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셔야 했다.

버섯을 생산하는 업무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을 아빠가 겪으셨을 공포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는 동업이라 했지만, 등기에 아빠를 올려놓지 않아

우리 가족은 돈과 시간만 투자하고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권리만 남아버렸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달 나오는 돈이 없는 데다

모은 돈도 다 투자했기 때문에

점차 빚만 늘어갔다.


아빠가 시골에 내려가 계신 날동안

엄마는 방 안에 앉아 혼자 울고 계셨다.

나는 매우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때부터 인생이란 무엇인지

원래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뇌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어려워지고 있던 해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엄마가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엄마가 이일을 하게 된 계기도

둘째 큰엄마가 어려운 상황에 네가 일이라도 하라며 소개를 해줬기 때문인데,

자신들 때문에 우리 집이 어려워졌는데도

하나의 죄책감 따위는 없는 큰아빠와 큰엄마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인간에 대한 악함에 치가 떨리곤 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엄마는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엄청 고생을 많이 했다.

텃세가 심해서인지 어린 내가 봐도

다른 사람들은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엄마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청소하고

음식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엄마가 면접 없이 소개로 들어와서 미워서 괴롭혔다고 하더라)


지하에서 음식을 하고

바로 2층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는 엄마의 모습.

나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한 뒤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서는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웃고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엄마만 계속해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계단을 닦고 신발장을 정리했다.

나는 화가 너무 났다. 공감능력이 뛰어나서인지 엄마를 사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의 분노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잘 울지 않는 아이였는데,

그날 엄청 울었다.

선생님들이 다 와서 왜 그러냐고 말릴 만큼 크게 울었고,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말하기로는 선생님께 엄마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여기서 일 할 수 없다 판단했고 바로 그 일을 그만두셨다.


내가 어린 나이에도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분노와 씁쓸함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들에게 실망했다.

둘째 큰아빠와 큰엄마는 책임감이 없었고, 양심이 없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더 우리 엄마 아빠에게 상처만 줬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감정에 치우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른이 아니었다.

어른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7살 때 나이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족한 어른들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은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또한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가 착해서 그들에게 당했다기보다는

착하고 선한 엄마를 이용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이 더 싫었기 때문에,

내가 나의 가치관을 옳게 가지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사건들로부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생각의 성숙함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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