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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Jun 13. 2018

우리동네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배가 불러 산책 겸 동네를 걸었다. 이사 온 지 세 달이 다 되었는데 주변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당장 밥먹고는 살아야 하니 야채를 파는 슈퍼 한 곳은 위치를 알아놓고 단골로 다녔지만, 집 앞이라고는 운동하러 불광천을 다녀오는 게 전부였으니 아직 동네를 잘 알 턱이 없다.


오늘은 어떤 길이 집으로 이어지는지 내가 모르는 어떤 가게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처음 가보는 골목을 이리저리 배회해 본다. 빌라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겨 길이 헷갈리지만 코너를 돌면 우리 집이 나올 것 같으니 어두워도 무섭지는 않다. 방송국이 많아 주거지보다는 상가에 가까웠던 이전 동네보다는 확실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우리 동네는 신기하게도 슈퍼가 참 많다. 한두 블록을 지나면 슈퍼마켓 옆에 또 슈퍼마켓이다. 이렇게 많아서 장사가 될까. 쓸데없이 걱정이다. 주택가라서 그렇겠지. 어디가 싼 지 다음에 가봐야지.


밤 열시가 넘었는데도 문을 닫지 않은 가게들이 많아 골목에 생기기 돈다. 이십 년은 족히 지났을 것 같은 허름한 간판의 문방구, 문은 활짝 열어놨는데 손님 한 명 없이 주인만 지키고 있는 복권 가게, 단돈 1천 원이라 적힌 노가리 호프집, 그리고 어느 동네든 빠질 수 없는 만남의 장소, 치킨집도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그만 구멍가게에 들렀다. 다 떨어진 생수도 사고 맥주도 한 캔 샀다. 아저씨가 4천 원이라고 하신다. 쭈뼛쭈뼛 지갑을 살펴보다가 평소 잘 안 쓰는 현금을 내밀었다. 새로 온 이 동네에서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우리동네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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