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임 May 24. 2016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드라마 '또 오해영'을 보다가

가끔 드라마를 보다가 뇌리에 박히는 대사들이 있다. 특별히 대사가 철학적이거나 심오해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공감되는 말을 딱 했을 때가 그렇다. 나와 같은 생각이거나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이 TV에서 배우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그 대사가 참 주옥같다는 생각을 하며 몇 번이고 곱씹게 된다.


나는 집에 TV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는 않지만,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다. 지인들의 입소문 덕에 보게 된 tvN드라마 '또 오해영'.퇴근 후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뭐 재밌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1회와 5회밖에 보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중간에 이빨 빠진 내용을 챙겨봐야지 하고 태블릿으로 VOD 시청을 시작했다. 대충 만든 저녁을 떠먹으며 태블릿 앞에서 드라마에 점점 빠져 들어 보고있는데, 슬픔에 가득 찬 오해영이 툭 내뱉은 대사가 숟가락 질을 멈추게 했다. 시청을 끝내고 집 앞을 걷는 중에도 주옥 같았던 많은 대사 중 유독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랬다.


나도 그렇게 느꼈던 때가 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패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고, 백사장의 수많은 모래알 중에 하나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불완전할지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당장 나의 궤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가능성은 포기하지 않으며 살았던 내가, 그때엔 있었다. 백사장의 작은 모래알 일지라도 누군가 해야 하는 분야라면,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나의 소명이기를 바란다며 치열하게 방법을 찾아보던 내 모습은 이제 다 어디로 소멸해 버린걸까.


어쩌면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아니라, 내가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포기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하루하루가 괴로웠던 그 순간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느샌가 나는 그런 괴로움조차 느끼지 않고 무덤덤하게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로.


방향을 잃은 사람, 그러나 방향을 잃은 것 조차 모르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반복된 일상이 지겹다고 하면서 내가 바꾼 것은 무엇이 있었던가. 자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서 제대로 글을 쓴 날이 며칠이나 있었던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자고, 무엇을 배워보자고 하면서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는 내가 아니었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러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남과 비교하며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자신의 중심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 모습이 내가 그리던 행복한 삶일까,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인데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뜬금없이 드라마를 보다 나의 인생을 고민하게 하는 밤, '또 오해영'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온 드라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랏빛 하늘이 아니어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