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가족이라는 걸 잊지 않도록
휴일 둘째 날에 엄마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찾아갔다. 침상에 누워계신 할머니를 깨워 안으며 인사를 했다. 다행히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날인지 나를 알아보시는 눈빛이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일 년 전이었던가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던 날이었다.
"할무이~ 저 왔어요."
"...누구요?"
잠에서 막 깬 할머니는 가족 누구도 알아보지 못 했다. 너무 놀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펑펑 터트리고 말았다. 할머니가 어떻게..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계속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노화로 인해 할머니의 기억도 청력도 점차 희미해져가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끔씩 스위치가 갑자기 켜지고 꺼지듯이 기억이 왔다 갔다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자식들 얼굴만은 잊지 않으셨기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당연히 겪게 될 일인데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다고 내가 너무 안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준비없이 맞닥들인 기억과의 이별.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추억이 증발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내 앞에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앉아 계신데도 생이별을 한 것만큼 마음이 힘들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할머니와 쭉 함께 살았다. 떨어져 있을 때는 매주 할머니를 찾아뵐 만큼 가까웠다. 내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장판 아래 꾸깃꾸깃 숨겨둔 쌈짓돈을 꺼내어 손사래를 치는 내 손에 꼭 쥐어주셨던 할머니. 손녀들 중에서도 나를 참 많이 예뻐하셨다. 늘 한없는 사랑의 눈빛을 보내주셨던 할머니가 마치 처음 본 낯선 사람인양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집으로 돌아와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있다는 핑계로 너무 오랜만에 온 것이 문제 아닐까. 그래서 얼굴을 잊으신 것 아닐까.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다.
늘 먼저 엄마에게 할머니 뵈러 가자고했던 그 말이 어느 순간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또 나를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그 두려운 순간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시 할머니를 찾아뵙기까지 한동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할머니 유리 왔어요"
그 이후로 나는 할머니를 찾아가면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먼저 말하며 인사를 하게 된다. 이제는 내가 가족이라는 것만 기억해주셔도 감사하지만 할머니가 절대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곁에 없을 때에도 나와 가족들을 기억하면서 외롭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실 수 있으실테니까.
할머니와 인사하는 법 2015.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