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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Sep 04. 2016

할머니의 기억

떠나간 기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누워서 곤히 잠든 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그냥 잠을 자고 있는 얼굴인데도 기력이 쇠한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할머니 유리 왔어요. 슬며시 눈을 뜨더니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번지신다. 아이고 예쁘다. 어찌 이리 이쁘니. 스무살은 넘었겠네. 매번 찾아뵐 때마다 서른이 넘었는데 시집 못가서 어떡하냐고 구박하시던 할머니는 내 이름 내 얼굴 내 나이를 까맣게 잊으신 지 오래다. 기억이 왔다 갔다를 반복했어도 내가 손녀라는 것, 함께 온 중년 남자가 내 아버지라는 건 아셨는데 그마저도 지워진 것일까. 그래도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고 할머니께 웃어드렸다. 티비에서 가수들이 설특집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할머니도 노래 잘하잖아요. 두만강 푸른물에~ 즐겨부르시던 노래를 귓가에 들려드리니 웃으신다. 미음 한 그릇과 국물로된 반찬 뿐인 저녁 식사를 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의 도움 없이 쓱싹 비우는 걸 보니 아직 괜찮으시구나 마음이 조금 안도 되었다. 서울로 떠날 시간이되어 인사를 드리니, 누워있다가 앉겠다고 하시니 우리를 붙잡는 것 같았다. 조금 더 할머니와 있다가 꼭 안아드리고 인사를 드리니 '또.오.나'하고 온힘을 다 해 외치는 할머니. 하염없이 쳐다보는 그 얼굴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간호사님이 말씀해주시길, 이주 전쯤부터 평소와 많이 다르셨다고 했다. 식사에 그렇게 애착이 있던 할머니께서 얼마전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가 회복이 되었다고 했다. 옆 침대 할머니의 이불이 자기 것이라 우겨서 이불도 바꿔 드렸다고 했다. 기억이 달라진 걸까 심경이 달라진 것일까. 뭔가 달라진 것을 나도 느낀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할머니와 포옹을 하면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언제 일지 모를 그날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 조금 더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주어지길 기도하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더 슬프다.


2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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