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사람을 만났을까?
분명 사회생활도 오래 했고, 사람에 대한 기준선도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이 되면서 사람의 인성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대신, 경제적 조건을 최소한으로 봤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했다.
지금 나이가 되면서 결혼을 한 사람도 있고, 이혼을 한 사람, 독신도 있다. 그래서 최대한 헤어지지 않을 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조금 덜 벌어도 집에 일찍 들어와서 저녁을 같이 먹을 것, 공부하는 사람, 음주가무를 멀리하고, 골프 치지 않는 남자라는 조건에 딱 맞았다.
사람을 만나면서 특별한 재미는 없지만 일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부분이 좋았다. 그 재미없음이 어쩌면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줄 동아줄이라고 믿었다.
만나고 한참이 지나서 너구리아저씨의 집 안의 재산, 즉 어머니 재산을 말했다. 결국 아파트 한 채는 받을 건데, 지금 증여세 낼 현금이 없다고. 그렇게 본인 부모님이 얼마나 여유 있는 중산층인지를 뽐냈다. 이 조건이 이 사람이 많은 소개를 받는 이유였다.
또 본인은 어떤 교수 라인이고, 몇 년만 있으면 교수로 임용이 될 거라고 말했다. 같이 산학에 있는 번번이 교수 임용에 탈락하는 선배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이제 나이가 너무 많고… 교수는 45세가 되면 내 차례가 될 거라고.
그렇게 본인을 자랑했다.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났고, 교수가 될 시기가 되었다. 연구소장인 교수님이 앞으로 4~5년 뒤에 자리가 나면, 그 자리는 네 거라고 했다나. 그때는 나이가 오십이 된다.
곰아저씨가 비웃던 그 선배도 사 년 전, 오십쯤이었다. 아마도 이 분 역시 그런 희망고문을 오래 받았겠지. 그리고 본인보다 후배인 A는 이미 이년 전에 대구에 교수 임용이 되었다.
즉, 지금 시기가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는데… 본인이 한 말은 본인만 잊고 있었다. 교수가 되기 너무 늦은 나이.
물론 부모님의 부동산 자산과 연금은 진짜였다. 다만 사기로 모두 날렸지만…
그렇게 물려받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두 분이 연금으로 살아가실 수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김여사의 아들이었다.
인문학 강사 겸 관련 프로젝트 진행자라는 포장지와는 다르게 대출, 카드론, 도박, 친구와 지인에게 돈 빌려서 여기저기 돌고 돌리는 막장 인생이라는 것은..... 조금도 예측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고를 치는 와중에도 저녁 일곱 시가 되기 전에 집에 들어왔고, 주말도 집에 있고 전형적인 집돌이였기에 오랜 기간 모르고 살았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티셔츠 한 장도 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늘 저녁 메뉴를 투정하고, 해외여행 가고 싶다고 철없이 떠드는 너구리아저씨는 도대체 왜 큰돈이 필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