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폭력: "그래서 그게 돈이 돼?"
우리가 스스로를 '인적 자원'으로 격하하고, '상품'으로 취급하며,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통제하는 가장 일상적이고도 강력한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법이나 제도의 강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내면화한, 너무나 당연해서 감히 거부할 생각조차 못 했던, 단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돈이 돼?"
이 질문은 '효율'의 신이 휘두르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등장하는 순간, '따뜻한' 가치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처형당했습니다.
어린 시절, 별을 보며 우주를 꿈꾸던 아이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차가운 질문이 날아옵니다. "그거, 돈이 돼?" 아이의 '꿈'은 '숫자'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한 청년이 돈벌이와 상관없이,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위해 행동하려 합니다. 냉소적인 질문이 가로막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돈이 생겨?" 청년의 '신념'은 '숫자'의 논리 앞에서 조롱당합니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합니다. 현실적인 질문이 발목을 잡습니다. "그 그림, 팔리기는 해?" 예술가의 '혼'은 '숫자'의 저울 위에서 그 가치가 매겨집니다.
이 질문, "그래서 그게 돈이 돼?"라는 물음은, '효율'의 신이 허락한 유일한 질문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질문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또 다른 질문을 질식시키는 '독가스'였습니다.
바로 1장에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인간 고유의 질문, '왜(Why)'입니다.
'왜'라는 질문은 '의미'와 '가치'를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반면, "그게 돈이 돼?"라는 질문은 오직 '어떻게(How)'만을 묻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가?"
'효율'의 시스템은 '왜'라는 질문을 위험하게 여겼습니다.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왜' 사는지 묻는 사람은, '돈'을 버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치'를 따지는 사람은, '가격'이 높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미'를 찾는 사람은, '효율'이라는 맹목적인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효율'의 신은, '돈'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왜'라는 질문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게 돈이 돼?"라는, '어떻게'에 대한 집요한 질문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숫자의 폭력'입니다. 이 폭력은 우리의 삶을 두 가지 영역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첫째, '가치(Value)'가 '가격(Price)'에 무릎 꿇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가치' 있는 것들을 사랑했습니다. 진리, 아름다움, 선함, 사랑, 우정. 이것들은 값을 매길 수 없기에 '가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숫자의 폭력'은 이 모든 '가치' 있는 것들에게 '가격표'를 붙이도록 강요했습니다. "가치 있다고?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짜리인지 '숫자'로 증명해 봐."
이 강요 앞에서, '가치'는 '가격'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 '가격'이 비싼 삶을 욕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집, 비싼 차, 비싼 옷. 우리는 그것이 '가치' 있어서 원한 것이 아니라, 그저 '비싸기' 때문에 원했습니다. '비싼 가격표'는, '효율'의 시스템이 공인한 '성공'의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가치'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신념', 돈이 되지 않는 '예술', 돈이 되지 않는 '사랑'은... 그저 '철없는' 것, 혹은 '배부른' 소리가 되었습니다.
둘째, '행복'이 '숫자' 안에 갇혔습니다.
'어떻게(How)'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How much)' 가졌는가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는 '행복'마저 '통장 잔고'라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숫자'를 소유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이 믿음은 우리를 '효율'의 신전에 묶어두는 가장 강력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숫자'를 위해, '행복' 그 자체일 수 있었던 '삶의 과정'을 기꺼이 희생했습니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는 '따뜻함'을, 더 많은 '숫자'(야근 수당)와 맞바꾸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는 '설렘'을, 더 안정적인 '숫자'(월급)와 맞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행복'이 깃들어 있던 '지금, 여기'의 모든 순간을 불태웠습니다. 마치 '숫자'라는 이름의 사막 한가운데서,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순례자들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숫자의 폭력'은 우리의 '왜'를 제거하고, '가치'를 '가격'에 종속시켰으며, '행복'을 '숫자' 안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돈'이라는 척도가 지배하는, 거대하고 차가운 '효율'의 제국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완벽해 보였던 제국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숭배했던 '돈'이라는 척도, 그 자체가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척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효율'의 신, 그 자신이었습니다.